난 염치 없는 여자가 싫다.
자기의 웃음이 타인에게 기쁨을 줄 수 있으므로
자기는 웃음으로 노고를 대신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여자가 싫고,
무엇보다도 자기 유리할 때에만 아전인수하며 공정함을 모르는 여자가 싫다.
하지만 그게 내가 여성을 혐오한다는 뜻은 아니다.
나는 그저 구체적으로 저런 생각과 행동을 하는 여자가 싫을 뿐이다.
요즘 인터넷을 볼 때 가장 싫은 건 인터넷 논쟁을 보면 볼수록 남자VS여자의 프레임에 갇히게 된다는 것이다.
이 프레임에서는 싫어하는 속성, 이를테면 염치없다는 속성을 여성 전체의 속성으로 규정하고
거기에 일부 예외적인 '개념녀'라는 구멍을 만들어 둔다.
이 프레임에서 개별 여성에겐 두가지 선택지가 주어진다.
개념없는 보통 여자가 되느냐, 개념있는 예외자가 되느냐.
남자VS여자의 프레임에선 여자를 강하게 공격하면 할수록 개념녀는 결벽증적인 것이 되어간다.
여자가 크게 잘못된 존재라고 공격하는 수위를 높이려면 대부분의 여자가 잘못된 존재이고 개념녀는 소수 예외가 되어야 하므로, 개념녀로 구분되는 문턱은 점점 더 높아진다.
죄를 물어 값을 치르게 하는 것의 기본은 고립시키는 것이다.
고립시키려면 가장 염치없는 태도를 갖는 사람들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묘사해서 지정해야 한다.
대상이 두리뭉실해질수록 고립에서 멀어진다.
그런데 이 남자VS여자의 구도에선 '대부분의 여자'가 죄인이기 때문에 개념녀가 소수자로 고립된다.
혹시 누구라도 세상의 절반을 상대로 '고립시켜서 죄를 물어서 값을 치르게 하겠다'라는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남자VS여자의 프레임은 염치없는 여자에게 여성의 대표자 지위를 주고, 세상의 절반을 고립시킨다는 건 불가능하기에 아이러니하게도 결과적으로 염치없는 여자에게 면죄부를 준다.
곰순이와 함께 하다보면 이런 걸 느낀다.
염치없는 사람은 주위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 그리고 보통 주위 사람중에는 이성보다 동성이 많다.
염치없는 여자는 살아오면서 기껏해야 몇명의 남자에게 피해를 주지만 그 수십배는 되는 여자들에게 피해를 준다.
염치없는 여자는 남자보다도 주로 곰순이와 여자들의 인생에 스트레스를 준다.
곰순이도 당연히 그 사실을 안다. '저런 여우 타입은 나랑 안맞는 스타일'임을 알고, 얽히지 않도록 조심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곰순이가 자기를 '예외적인 개념녀'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세상엔 유난히 염치없는 사람들이 있고 자기는 그들과는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할 뿐이다.
내가 아는 곰순이는 인터넷을 안하기 때문에 저 남자VS여자의 프레임에서 자유롭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저 프레임에 갇혀서 '여자'를 욕하는 사람을 자꾸 접한다면 기분나빠질 것이고 그 프레임 안에서 싸움을 상대하게 될 것이다. (이게 아니면 스스로를 '난 여자답지 않은 여자니까 여자 공격하는 것에 기분나쁠 필요 없지'라고 소외시켜야 한다.)
그러면 염치없는 여자의 죄를 곰순이가 막아줘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난 특히 이게 싫다.
'여자들'에 대한 공격의 주장을 곰순이가 '그 주장은 틀렸다'라고 막아야 하는 상황이 된다.
염치없는 여자와 싸잡아 묶인 자신을 위해서.
난 개인적으로 남자VS여자의 프레임의 기원은 페미니즘 투쟁의 프레임이었고
여기에 반발하여 그 프레임 안에서 싸움이 붙은 결과
현재 만연한 여성혐오증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
여성혐오증의 선두에 소위 꼴페미로 비하되는 페미니즘이 있다는 게 그 근거다.
하지만 기원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남자VS여자의 프레임에 빠져서 여자를 공격하는 자도,
남자VS여자의 프레임에 빠져서 여자라는 집단에 자기를 이입하여 행동하는 자도 싫다.
그들의 행동은 내가 싫어하는 염치없는 자를 보호하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자기의 웃음이 타인에게 기쁨을 줄 수 있으므로
자기는 웃음으로 노고를 대신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여자가 싫고,
무엇보다도 자기 유리할 때에만 아전인수하며 공정함을 모르는 여자가 싫다.
하지만 그게 내가 여성을 혐오한다는 뜻은 아니다.
나는 그저 구체적으로 저런 생각과 행동을 하는 여자가 싫을 뿐이다.
요즘 인터넷을 볼 때 가장 싫은 건 인터넷 논쟁을 보면 볼수록 남자VS여자의 프레임에 갇히게 된다는 것이다.
이 프레임에서는 싫어하는 속성, 이를테면 염치없다는 속성을 여성 전체의 속성으로 규정하고
거기에 일부 예외적인 '개념녀'라는 구멍을 만들어 둔다.
이 프레임에서 개별 여성에겐 두가지 선택지가 주어진다.
개념없는 보통 여자가 되느냐, 개념있는 예외자가 되느냐.
남자VS여자의 프레임에선 여자를 강하게 공격하면 할수록 개념녀는 결벽증적인 것이 되어간다.
여자가 크게 잘못된 존재라고 공격하는 수위를 높이려면 대부분의 여자가 잘못된 존재이고 개념녀는 소수 예외가 되어야 하므로, 개념녀로 구분되는 문턱은 점점 더 높아진다.
죄를 물어 값을 치르게 하는 것의 기본은 고립시키는 것이다.
고립시키려면 가장 염치없는 태도를 갖는 사람들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묘사해서 지정해야 한다.
대상이 두리뭉실해질수록 고립에서 멀어진다.
그런데 이 남자VS여자의 구도에선 '대부분의 여자'가 죄인이기 때문에 개념녀가 소수자로 고립된다.
혹시 누구라도 세상의 절반을 상대로 '고립시켜서 죄를 물어서 값을 치르게 하겠다'라는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남자VS여자의 프레임은 염치없는 여자에게 여성의 대표자 지위를 주고, 세상의 절반을 고립시킨다는 건 불가능하기에 아이러니하게도 결과적으로 염치없는 여자에게 면죄부를 준다.
곰순이와 함께 하다보면 이런 걸 느낀다.
염치없는 사람은 주위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 그리고 보통 주위 사람중에는 이성보다 동성이 많다.
염치없는 여자는 살아오면서 기껏해야 몇명의 남자에게 피해를 주지만 그 수십배는 되는 여자들에게 피해를 준다.
염치없는 여자는 남자보다도 주로 곰순이와 여자들의 인생에 스트레스를 준다.
곰순이도 당연히 그 사실을 안다. '저런 여우 타입은 나랑 안맞는 스타일'임을 알고, 얽히지 않도록 조심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곰순이가 자기를 '예외적인 개념녀'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세상엔 유난히 염치없는 사람들이 있고 자기는 그들과는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할 뿐이다.
내가 아는 곰순이는 인터넷을 안하기 때문에 저 남자VS여자의 프레임에서 자유롭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저 프레임에 갇혀서 '여자'를 욕하는 사람을 자꾸 접한다면 기분나빠질 것이고 그 프레임 안에서 싸움을 상대하게 될 것이다. (이게 아니면 스스로를 '난 여자답지 않은 여자니까 여자 공격하는 것에 기분나쁠 필요 없지'라고 소외시켜야 한다.)
그러면 염치없는 여자의 죄를 곰순이가 막아줘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난 특히 이게 싫다.
'여자들'에 대한 공격의 주장을 곰순이가 '그 주장은 틀렸다'라고 막아야 하는 상황이 된다.
염치없는 여자와 싸잡아 묶인 자신을 위해서.
난 개인적으로 남자VS여자의 프레임의 기원은 페미니즘 투쟁의 프레임이었고
여기에 반발하여 그 프레임 안에서 싸움이 붙은 결과
현재 만연한 여성혐오증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
여성혐오증의 선두에 소위 꼴페미로 비하되는 페미니즘이 있다는 게 그 근거다.
하지만 기원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남자VS여자의 프레임에 빠져서 여자를 공격하는 자도,
남자VS여자의 프레임에 빠져서 여자라는 집단에 자기를 이입하여 행동하는 자도 싫다.
그들의 행동은 내가 싫어하는 염치없는 자를 보호하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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