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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는 상대적인 면이 있다. 시대는 물론이고 입장에 따라 상대적인 폭이 크다.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라지만 동시에 입장차의 균형점을 고려한 정의다. 법은 그 시대 그 사회의 다양한 입장차를 가늠하여 균형을 잡아놓은 정의로 볼 수 있다. 법치를 신뢰하는 국가에서 법의 전체를 조망한다면 세부적으로는 이리 삐죽 저리 삐죽 튀어나온 구석이 있을지라도 평균적으로는 여러 입장들 사이로 균형잡힌 지점에 법률의 선이 그려져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정의를 행동의 이유로 내세우며 활동하는 자들은 자기 입장에서의 정의를 이유로 범죄마저 저지르더라.
'우리의 목적은 큰 정의에 있으므로 과정의 범죄는 정당화된다' 라는 식이다. 그 핑계가 워낙 좋아서 독재하는 곳에서 정의 타령을 유난히 많이 한다.
정의 타령 하는 자들이 그 과정에서 절도 사기 고문 폭행 살인 정당화 하는 일은 역사적으로 너무나 흔하다. 그리고 그 인과와 선후의 관계는 양방향인 것 같다.
정의를 미래 목적으로 내세워 두면 현재 눈 앞의 범죄를 눈가림할 수 있다는 노하우를 배운 김에 이용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자기 주관적인 관점에서의 정의를 이유로 균형점의 정의를 침범해 버리는 것일 수도 있는 것 같다.
즉 고의거나, 미필적고의거나.
정의 타령하는 자가 위선자라는 클리셰는 이렇게 완성된다. 일견 정의롭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면 더 정의로운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나 실제로는 애매한 미세조정에 만족하지 못하고 자기 입장에 치우친 정의감으로 실상은 불의인 걸 내질러 버린 후 그 결과가 단순 불의랑 똑같더라는 이상하고 당연한 현실을 체험하고 나면 알고 이용하는 위선자 혹은 '정의를 위한 건데 **가 대수냐' 하는 독선자가 되는 거다.

Posted by 노크노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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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이나 예측은 아무나 한다. 아무나가 아무 말이나 할 수 있다. 다만 그것이 현실에서 들어맞느냐에서 차이가 난다.

그런데 현실에 드러나는 것은 미래일이다. 역할 분담이 일어나곤 하는 것까지 감안하면 말하는 사람과 실행은 시간적으로도 멀고 다른 사람이 할 일이기 일쑤다.

올바른 판단이든 되도 않는 헛소리든 실행 전까지는 오로지 청자의 평가로만 가치가 매겨진다.
그런데 현실 예측이란 굉장히 어려운 것이다. 어떤 생각이 현실에서 어떻게 동작하는지는 높은 수준의 청자여야 겨우 겉핥기를 할 수 있고 전문가여도 종종 빗나간다. 일반적인 사람은 감도 못잡고 틀린다. 라고 하면 엘리트주의자라고 욕하는 추세지만 이를테면 투자는 고작 산다 판다 두가지 선택지만 놓고도 대부분의 사람은 잃는다. 전문가조차 현실 예측을 종종 틀린다.
시간적으로도 멀고 다른 사람이 할 일이기 일쑤인데 현재 평가하기는 어렵다면 선동가가 등장한다. 어차피 진실은 멀고 청자 일반은 평가 역량이 없으니 올바른 소리나 완전 헛소리나 현재 시점에선 동등하다는 계산이 나오는 거다.

두명이 동의한 헛소리가 한명이 동의한 혜안보다 당장은 더 옳은 것이 된다. 권위 해체 시대이자 모두가 발언을 쏟아내는 sns 시대라서 이런 현상이 강화된다. 실행 성공을 위해선 올바른 판단이 극히 중요한 것 분명한데 그 올바른 판단의 권위라는 게 파고 들어가 보면 잘 모르는 사람들이 잘 모르고 하는 지지로 이루어져 있곤 한다는 약점을 공략하는 사기꾼이 늘어난다.

역할 분담하는 사회다 보니 생각과 말로 일하는 역할들이 있다.
현실에 구현하기엔 완전히 헛소리인데 오직 사람을 속이는 데에만 역량이 있는 거짓말을 사용하는지 여부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

Posted by 노크노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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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hm8F4k6yOic?si=t1UQ36RBl2WVy_Rt

임대인이 전세 서류를 조작하여 HUG 주택도시보증보험공사를 상대로 사기를 치면 임차인은 HUG가 속았는지는 모르고 보증보험을 믿었다가 전세보증금을 날린다.

https://longlive.tistory.com/m/1083

후진적인 부동산 거래 시스템을 이용한 부동산 매매사기 및 전세사기법

https://youtu.be/wWwpcnkVG2M?si=9LDG08EsAEo5feEX 매매 사기법.사기꾼이 집을 팜. 피해자가 사면서 등기부등본 보니까 문제 없어서 삼. 알고보니 사기꾼이 등기소에 위조서류를 제출해서 등기소를 속였음.

longlive.tistory.com

먼저 쓴 글에도 있듯이
등기소를 속여도 뚫리고
동사무소를 속여도 뚫리고
HUG를 속여도 뚫린다.
후진적인 부동산 거래 시스템이 문제다.
해킹 기술은 계속 발전하는데 발 맞춰야 할 보안 시스템은 발전하지 않아서 구멍이 뻥 뚫린 상태다.

Posted by 노크노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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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wWwpcnkVG2M?si=9LDG08EsAEo5feEX

매매 사기법.
사기꾼이 집을 팜. 피해자가 사면서 등기부등본 보니까 문제 없어서 삼.
알고보니 사기꾼이 등기소에 위조서류를 제출해서 등기소를 속였음.
등기소가 속은 상태로 진품 등기등본을 내놓았으나 사실은 부동산 담보로 대출을 해서 빚이 걸린 집인 상태였음.
대법원까지 가서 나온 판결이 '피해자는 은행에게 그 집에 걸린 빚을 갚아라. 피해자는 사기꾼에게 민사소송 걸어라.'
위조한 사기꾼은 돈 없다하고 끝.

https://youtu.be/2RHbvH0sR1Y?si=Xnjio8uRuNNN0iqM

이건 전세사기법. 피해입은 전세세입자는 어느날 자고 일어나보니 자기가 다른 동네로 전입되어 있고 (위조 신분증으로 동사무소 속임) 자기 살던 집은 빈집이 되어서 즉시 선순위 담보 걸리면서 전세보증금이 증발하고 끝.

후진적 거래 시스템 방치에 분노가 차오른다.
주식시장처럼 예탁결제원을 만들어서 전자거래 시스템을 만들어야지 대체 무슨 후진적인 시스템으로 무정부상태마냥 사기 난립을 방치하는건지 모르겠다.
이건 시스템이 후진 문제라서 피해자가 안 속도록 방비할 방법이 없다. (저 사건에서는 심지어 대출을 준 은행조차도 자기네 쪽에서 근저당을 잡고 있는 줄 뒤늦게 알았다. 피해자가 동일 은행에 주택 담보 대출을 신청해서 대출 받았다가 갚을 때까지도 은행은 중복으로 대출을 준 걸 모르고 있었다가 나중에 알고 근저당 복구 소송을 건다.)
부동산 권리보험이 싯가 3억당 15.3만원 정도라고 하니 15억이면 76.5만원 정도 내고 보험 드는게 그나마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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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노크노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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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의 임대료 연 5% 상승 상한은 빨리 없애야 한다.
건물값은 임대료의 수익률 역산으로 결정되므로 월세 조금 깎아주면 건물값이 크게 깎이는데, 월세를 한번 내리면 올리지 못하게 하니까 내리는 손해가 너무 커서 내리질 않는다. 정상적으로는 코로나, 물가, 금리 등 상황 안좋을 때 공실 나느니 좀 깎아주는게 이익인 선에서 임대료가 유연하게 움직여서 상생하다가 상황 좋아지면 쭉 올라서 회복하는 식이어야 하는데 건물 가격이 유연하게 휘지를 못하게 하니까 버티다가 부러지기만 한다. 언제 부러지는가 하면 그 지역 자영업자가 다 망해 나간 후에 부러진다. 중심가일수록 자영업 시도해 보려는 대기자들이 있으므로 외곽지부터 자영업자 대기자까지 전멸 후에 건물 가격 부러지는, 즉 매매가 이루어지면서 가격이 내려가는 게 아니라 매매가 없는 상태에서 호가가 의미를 상실해서 폭락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그게 지금이다. 그래서 예전에 조물주 위에 건물주 칭송 나오던 상가 건물이 이제는 조용해진거다. 대신 한강 아파트로 돈이 옮겨가서 중심가 한강뷰 아파트가 주변지역과 키맞춤 없이 기형적으로 폭등하는 거고.
상가 가격이 부러지건 한강뷰에 거품이 끼건 말건이 중요한 게 아니라 진짜 문제는 차라리 공실로 둘지언정 임대료를 내릴 수 없는 구조로 만들어서 자영업을 다 죽이는 내수 경제 광역 데미지를 주고 있다는 거다.
임대업은 예전에 손빼서 나랑 직접적으로 상관이 없지만 자영업자 멸망 기사 볼때마다 생각한다. 상가 임대차 보호법은 즉시 없애야 한다. 자영업이 어려우니 보호법을 없애라는 게 말이 되느냐는 식으로 호도하기 딱 좋은 정치적 소재지만 다 죽어가는 지금 임대료 올릴 걱정 따위 할 때도 아닐 뿐더러 그 부작용으로 내리질 못한다는 걸 생각해야 한다. 저 악법은 제목이 보호지 효과가 보호가 아니다.

Posted by 노크노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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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 전세 사기가 극성이다.
전세 사기 때문에 월세로 바꾸는 추세랜다.

자본이 없는 청년층이 자산을 모아서 어려운 상황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빌라전세가 필수적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큰 도움을 준다고 생각한다.
먼저 전세와 월세를 비교해보자. 월세는 전세보다 얼마나 비쌀까?
전세와 월세는 둘 다 집값의 미래 상승익 및 하락 위험을 버리고 실사용 가치만을 반영하는 가격으로 시장에서 결정되고 그 후엔 전월세 전환율을 거쳐 가격이 조정된다.

전월세 전환율 추이를 검색해보면 첨부한 표와 같다.

이 두 값의 합이 전환율이다.
2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가 세입자가 전세로 지출하는 금액인데 이건 기준금리랑 크게 차이 안나므로
2020년 9월엔 전세 지출 0.5일때 월세 지출은 2.5가 되어서 월세가 전세보다 5배 비싼돈을 지불하는 셈이 된다.
23년 1월 기준으로는 전세 지출이 3.5일때 월세 지출은 5.5로 1.57배 정도 월세가 비싼 상태가 되었다. 향후 기준금리가 중금리 수준으로 낮아진다면 한 2배 정도 차이가 되지 않을까.

어쨌거나 전세가 더 유리하다. 이유는 시장에서 자본에 의한 진입 장벽 때문일 것이다. 전세는 전세보증금이 크므로 진입장벽이 되어서 세입자 시장 경쟁의 풀이 제한되므로 전세가 유리하게 결정된다. 월세는 집주인이 전세금 만큼을 자기 돈으로 더 채워서 공급해야 하므로 공급자 입장에서의 진입 장벽이 되어 집주인에게 유리하게 결정된다. 그 결과가 전세보다 5배까지도 비싼 월세가 된다.
따라서 재산 모으려면 전세가 훨씬 유리하다.

나랑 연애하던 학생시절 학비와 생활비를 자기가 마련해야 했던 아내는 형제들끼리 알바 열심히 해서 돈모아서 월세 탈출하고 빌라 지하방 반지하방 거쳐서 지상에서 전세 살다가 결혼했다.
학벌 덕으로 고액 알바 여러개 하고 장학금 받는 등의 유리한 조건이 있었으니까 가능했기도 하지만 어릴 때 돈 모아서 전세로 전환하는 것이 주효한 전략이었던 건 분명하다. 이 과정에서 전세사기 위험을 겪기도 했다. 전세금보다 선순위 대출을 집주인이 안 갚고 경매 넘기는 게 이익이어서 전세금 떼일 위기였다가 경매가 반복 유찰되면서 선순위 대출금보다 가격이 낮아지니까 차라리 갚는 게 낫겠다고 갚아서 전세금이 보존되는 고생을 했었다.
가난한 청년층이 살 길 찾아 노력하는 과정에 전세사기 만나면 일생의 노력이 좌절된다. 전세 사기의 위험 때문에 두어배 비싼 월세를 살아야 한다는 것도 과중하다. 성실하고 똑똑한 사람이 어려움을 헤쳐 나가려는 노력이 좌절되는 세상에서는 노력할 동기가 없어진다. 빌라 전세 사기는 제거되어야 한다.

내 입장으로 돌아와서 봐도 부동산 계약은 너무 후진적이다. 주식처럼 위탁 결제 제도 도입해서 전산화 해야 한다. 이 시대에 전산화가 안돼서 등기소에서 종이장 들고 돌아다닌다는 게 말이 안된다. 빌라건 뭐건 전세건 매매건 부동산 거래 하려면 사기가 아닌지 신경써야 할게 너무 많다. 전산화 된다면 빌라 전세 사기뿐 아니라 부동산 거래의 문제점들 다 소거될 것이다. 사기가 두려워서 거래가 위축될 때 해결책은 시스템이지 않겠는가.


Posted by 노크노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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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네이버 웹툰 송곳을 봤다.
http://comic.naver.com/webtoon/detail.nhn?titleId=602922&no=14&weekday=tue

"어차피 몇년 지나면 입장 바뀔 거 지금은 그냥 져줘요. 가드 꽉 잠그고 대가리 팍 숙이고."
웹툰 송곳 1-13화에서 부장과 갈등을 빚는 주인공 이수인에게 조언자 김과장은 권투에 비유해서 '기다려라'고 말해준다.
그리고 주인공 이수인은 그런 김과장의 조언에 대해
'지겹다. 강제된 선택지에 시시한 통찰을 덧칠해서 마치 새로운 답인양 떠들어대는 어른인 척 하는 어른들의 하나 마나한 조언들'이라고 평한다.
이 다음화인 1-14화에서 이수인은 자기 직계 보스인 점장에게 철저하게 당하고, 잘난척 조언하던 김과장을 향해 '이제 어떡할까요? 이제 뭘하면 됩니까?'라는 시선을 날린다.
김과장은 말 못하고 외면한다.

내가 웹툰 송곳을 본 것은 아래 글을 쓴 바로 다음 날이었다.
[이 글의 댓글로 달음] http://longlive.tistory.com/599#comment13308977
만화속 김과장이 해준 권투 얘기는 그 전날 내가 했던 조언과 완전히 같은 말이었다.
'괜히 빤한 밑천 내밀어봤자 소용없으면 그런게 쌓여서 점점 더 똥이 되고 점점 더 차별의 피해자가 됩니다. 모르겠으면 기다려요. 항상 쎈 사람 없습니다.'
'일단 내 직속 보스는 무조건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해요. 가령 대학원생이 교수님이 싫은데 까는 법 같은 건 전 모릅니다.'

나는 '조언자 김과장'의 눈을 통해 주인공 이수인을 봤다.
김과장은 부조리의 음지를 피해가는 법을 말하고 있었고
이수인은 부조리의 한복판에 스스로 들어가서 부조리를 없애는 법을 찾고 있었다.
추구하는 바가 다른 김과장의 조언은 이수인에겐 '지겹다. 하나마나한 조언들'이 되었다.
하지만 의문이다.
이수인이 옳을까?

부조리에 빠지나 물에 빠지나 위험에 빠진 사람의 행동은 유사하다.
부조리를 물웅덩이에 비유해보자.
물에 빠져 죽는 일을 피하기 위한 방법은 다음과 같다.
-물에 빠지지 않도록 웅덩이를 피해가는 방법
-물에 빠졌을 때 거기서 빠져죽지 않고 헤엄쳐 나오는 방법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는 방법
-웅덩이를 매꾸거나 주위에 철책을 쳐서 위험을 예방하는 방법
이 방법들은 각각 서로 다르다.
발밑에 웅덩이를 살피며 걷는 방법을 빠진 다음에 헤엄쳐 나올 때 쓸 수 없고,
철책을 쳐 위험을 예방하는 방법으로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할 수 없다.
이수인은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기 위해 자기가 물에 뛰어든 후 그 안에서 사람도 구하고 물웅덩이도 없애버리는 방법을 찾고 있다.
그래서 그에겐 웅덩이를 피해가는 방법이 지겹고, 시시하다.
하지만 과연 그게 맞는 노력인가.
회의적이다.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할 때엔 '섣불리 들어가지 말고 줄을 던지거나, 뒤로 돌아가서 때려서 기절시키고 뒷머리채를 잡고 끌고 나오라'는 규범이 있다.
구조자의 안전과 빠진 사람의 생명을 위해 그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물에 빠진 사람이 안타깝다고 적절한 방법을 따르지 않고 뛰어들기만 하면 같이 빠져 죽는다.
규범은 '수영을 잘하는 사람 조차도 물에 빠진 사람이 본능적으로 휘두르는 손에 맞거나 혹은 붙잡고 놓지 않아서 구하려다 빠져죽을 수 있다'고 말한다.
누군가 "네 혈육이 빠졌다면 침착하게 밧줄이나 찾고 있겠느냐"고 지적한다면, 그 말이 사실일 것이다.
남이니까 침착하지 혈육이 빠지면 이성을 잃고 뛰어드는 것이 인지상정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가장 올바른 방법으로서 규범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냥 뛰어들면 둘 다 죽는다. 규범은 도덕의 문제가 아니다. 더 나은 기술의 문제다.

물웅덩이 대신 부조리를 대입해도 같다.
당장 물에 빠진 사람 구하는 것과 위험한 웅덩이를 예방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인 것처럼
부조리를 없애는 방법으로 당장 부조리에 빠져 있는 사람을 구할 수 없고
부조리에 빠져있는 사람을 구하는 방법으로 부조리 자체를 없앨 수도 없다.
이수인은 저 두가지중 무엇을 더 하고 싶었던 걸까?

이수인 같은 사람들이 있다.
평소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잘 친해지지도 못하면서 올바르지 않다는 것 앞에서 묻혀지내지 못하는 류의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작중 이수인은 '친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뛰어드는 게 아니라, 반대로 '부조리로부터 구하기 위해서 그들과 친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
작중 이수인의 스승격인 노무사는 '당신이 구한 사람은 이상적인 피해자가 아니라 냄새나는 그저 사람'이라는 것을 알라고 가르친다.
난 그런 이수인에게 '당신은 뭘 하고 싶은 거냐'고 묻고 싶다.
"당신은 잘 친해지지도 못하는 눈 앞의 남을 불행으로부터 구하고 싶은 겁니까?
아니면 세상에 이런 부당한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참을 수 없는 겁니까?"

이수인이 원한 것이 사람을 구하는 것인지 부조리를 없애는 것인지 명시되어 있지는 않으나
만약 그가 원한 것이 부조리를 없애는 것이라면 그는 자기 의도와 다른 행동을 하고 있다.
위험 예방을 위해 웅덩이를 없애거나 철책을 치거나 구명조끼를 비치하는 건 웅덩이 바깥에서 할 수 있는 일이지 빠져있는 피해자가 할 일이 아니다.
물에 빠진 사람이 할 일은 살아서 나가는 거고, 물에 빠졌는데 나오지 않으면 빠져 죽기나 할 뿐이다.
부조리에 빠진 채로 부조리를 예방한다는 건 무모한 생각이다.

웹툰 송곳은 이렇게 말한다.
'분명 하나쯤 뚫고 나온다.
가장 앞에서 가장 날카롭다가
가장 먼저 부숴져 버리고 마는
그런 송곳같은 인간이.'
송곳의 세계에서 이것은 슬픔인 동시에 희망의 메세지다.
'참지 못한 의인이 일어설 것이다. 분노한 의인들이 세상을 바꿀 것이다. 그 의인들은 죽을테지만...'이므로. 그래서 그것은 희망인 동시에 비애의 메세지가 된다.
하지만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러 들어간 의인들의 시체로 강이 매꿔질지도 모른다는 꿈은 희망을 가장한 절망에 불과하다.
이렇게 송곳을 하나씩 부숴먹으면 희망은 없다.

송곳 1-7화에서 이수인은 자기를 다독여준 훈육관을 두고 '그는 어쩌면 가장 교활한 형태의 체제 수호자 였을지도 모른다'고 회상한다.
폭발해야 할 압력을 살살 달래서 조금씩 빼줌으로써 체제가 유지되도록 해주는 존재는 역설적으로 악을 계속되게 해주는 존재가 아니냐는 의미에서 '교활한'이라는 표현을 썼다.
주인공이 투사가 되기 위해 피해자가 되기를 자청하는 웹툰 송곳에서 체제란 부조리를 비호하는 원흉처럼 그려진다.
이 관점에선 투쟁으로 체제를 깨면 부조리가 없어지기라도 할 것만 같다.
하지만 사람이 체제와 조직없이 살 수 없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조직 없는 개인은 다른 조직에 더 힘든 조건으로 흡수될 뿐 결코 '조직없는 개인'을 유지할 수 없다.
그래서 조직이 깨지지 않도록 유지하는 문제는 어지간한 부조리보다도 중요한 생존의 문제가 된다.
부조리한 체제를 비호하는 기득권이란 말은 잘못된 구도를 만들었다. 조직에서 생존을 조달하는 모든 개인은 자기 조직이 깨지면 잃을 게 많다.
부조리를 고치겠다며 체제를 위협하면 처음엔 잃을 게 없을 줄 알고 우호적이던 개인들이 투쟁이 구체적이 될수록 점점 더 잃을 게 있는 기득권으로서의 자신을 발견한다.
적의 적을 늘리고 내 편을 늘려야 할 싸움에서 그런 모든 개인을 적으로 돌린 채로는 그 어떤 좋은 의도라도 성공할 수 없다.

그래서 기다려야 한다.
약할때 앞에서 싸우다 지지 마라.
지금 뛰어들면 운이 좋아서 특별한 한 사람을 구할 수는 있어도
그걸로 불특정한 사람을 위해 부조리를 고치는 것을 기대하진 마라.
당장은 부조리에 빠지지 않기 위해 발밑을 조심하고
운이 나빠 한발 빠졌다면 더 빠지지 말고 헤어나올 길을 찾아라.
기다리면서 내 편을 늘리고 기다리면서 내 적의 적을 늘려라.
내가 상대하는 적은 이상적으로 절대적인 힘을 가진 자가 아니다. 성급히 자포자기해서 몸을 던지지 마라.
기다리면 힘이 길러지고 힘이 길러지면 내 힘과의 균형이동으로 인해 없던 기회조차도 만들어진다.

약하면 기다려라. 가드 꽉 잠그고. 되도 않는 잽 날리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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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노크노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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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때 높으신 분들이 와서 강연하는 강좌가 있었다.
삼성전자 사장님이셨던가... 자본주의 사회의 고랩 찍으신 분께서 오셔서 이런 얘기를 하셨다.

사원은 회사에 있을때에만 회사생각을 한다.
사장은 잠들기 직전까지 회사생각을 한다.
오너는 자는 순간에도 회사생각을 한다.

당시 강연하실때의 말씀은 '그 정도 하니까 오너 자리를 유지한다'라는 뉘앙스가 담겨 있었던 것 같다.
어쨌거나 사실은 사실이다. 내 것이 되어 주인의식이 발휘되면 일 앞에 밤낮이 없어지고
반대로 내것이 아니면 어떻게든 농땡이 칠 궁리부터 하게 된다.

사업을 한다고 생각해보자.
제일 힘든게 사람 쓰는 거다. 비싼 인건비 주고 일 시켜 놓으면, 내가 하면 금방 해치우고 다른 것 할 것 같은 일을 가지고 부지하세월을 끈다. 단지 시간만이 아니라 일하는 태도 전반에 걸쳐 말 그대로 남의 일 하듯 일하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시켜서 일하는 사람의 생산성은 시키는 사람의 눈으로 보기엔 답답하기 그지없다.

바꿔 말하면 이게 이 체제의 현주소다.
근무지에 발목잡혀 시간 때우며 빈둥대는 거래봤자 제대로 작정하고 놀러가는 것에 비하면 논다고도 할 수 없는 것일텐데도
이 사회의 가히 대부분이라고 할만한 사람들이 최선의 동기부여가 되지 않은 상태로
일하면서도 일하지 않고 놀지만 놀지 못한다.

그리고 이 장면에 과거 먼나라 이웃나라에 묘사된 공산주의 사회가 오버랩된다.
모두가 공동 주인인 사회에서 누구도 주인의식을 발휘하지 않아서 다함께 태만해졌다던 만화속 서술은
소수가 주인인 사회에서 다수가 주인의식을 발휘하지 않아서 대체로 태만해졌다는 지금의 묘사와 결과적으로 비슷하다.
주인의식을 개인의 미덕으로 강요하는 것은 의미없는 일이다.
그게 누구나 갖고 싶을 만한 것이었다면 누구나 갖기 위해 욕심을 부렸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인의식을 욕심내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면 그건 사회구조의 문제다.

주인의식을 가지고 자기 사업을 하기가 너무 난해해서 고용된 안정성을 달콤하게 여기게 된 사회.
주인의식을 가지고 자기 가게를 일궈놨더니 높아진 부가가치를 건물주가 지대로서 거둬가는 사회.
그래서 결국 주인의식을 탐내지 않는 편이 기대소득이 높아져버린, 모두가 낮은 생산성으로 빈둥거리는 사회.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제대로 일하지도 못하는 채 허비되는 수 많은 사람들의 낮은 생산성만큼
우리는 모두 가난할 것이고 힘겨울 것이며 또 불행할 것이다.

지나친 분배가 동기부여를 막아서 생산성을 죽였던 사회가 있었다. 지금 그 반대편 끝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세상을 분배받지 못하고 주인의식을 발휘할 동기를 찾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체제의 수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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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노크노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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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살고 싶어하지 않는 동네가 있었어요.
길은 오르막에다 험하고, 쓰레기가 굴러서 냄새나며, 밤이면 쓰레기 더미를 파먹는 동물들이 울부짖어서 잠도 잘 수 없는 곳이었어요.
여느 날처럼 집 앞에 쓰레기를 내다 버리는 어머니에게 아이가 말했어요.
"우리 동네는 우리가 아껴줘야 하지 않아요?"
이 생각은 아이의 부모님을 통해 온 동네 주민들에게로 퍼져나갔어요.
"우리 동네는 우리가 가꿉시다"
거리를 청소하고, 쓰레기는 치우는 날짜를 정해서 버리고, 노상 방뇨를 하지 않고, 벽에는 예쁜 벽화를 그렸어요.
그렇게 모두가 매일 매일 열심히 노력하자 동네는 점점 살기 좋은 곳이 되었어요.
아이는 자기의 우리동네가 자랑스러웠어요.
아이의 우리동네는 더 이상 아무도 살고 싶어하지 않는 동네가 아니었어요.
그 동네에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생겨났어요.
집주인도 포기했던 집들이 가격이 올라갔고 몇몇은 비싸게 팔았대요.
그 집에 살기 위한 월세가 올라갔어요.
예전 동네 주민들은 더 이상 그곳에 살 수 없었어요.
아이도 그렇게 남의 집에서 쫓겨났답니다.

회사에 들어가 시키는 일만 하던 아저씨가 있었어요.
아저씨는 '내 일'을 하고 싶었어요.
고용되어 명령받은 남의 일 해주는 게 아닌 내 일, 내 사업을 하고 싶었어요.
아저씨는 가게를 차리고 열심히 일 했어요.
아저씨는 자다가도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달려 나갔어요.
밤낮없이 일했지만 내 일이라고 생각하니 힘이 났어요.
말로 다 하기 어려운 노력을 쏟아 키운 가게를 아저씨는 내 생명과도 같다고 말하곤 했어요.
가게는 점점 번창했어요. 멀리서도 가게를 찾아오는 손님들이 늘어났어요.
가게세 재계약을 해야하는 시점이 왔어요.
건물주가 가게세를 다섯배로 올려달라고 했어요.
옆 건물주는 여덟배도 불렀다고 해요.
아저씨는 가게를 문닫고 나가야 하게 됐어요. 그래서 당연히 빚더미에 올랐지요.
아저씨는 자기가 그때까지 열심히 했던 일이 '내 일'이 아니라 남의 것을 대신 꾸며주는 남의 일을 한 것이었단 걸 알았답니다.

그 날도 학교에선 선생님이 병아리같은 아이들을 상대로 수업을 하고 있었어요.
"공산주의가 왜 망했는지 아니?"
"저 알아요. 공산주의는 일을 열심히 해도 모두가 똑같이 나눠갖으니까 모두가 게을러져서 망한거에요"
"참 잘했어요~ 내가 한 만큼 갖을 수 있으니까 더욱 열심히 노력하는 것, 이런 걸 주인의식이라고 한단다.
주인의식이 없으면 망하게 되는 거에요. 다들 알았죠?" "네-"
그렇지만 자기 가게를 차리고 일하는 사람의 주인의식 조차도 자기 꾀에 자기가 속은 게 되는 지금
주인의식을 갖고 싶은 사람은 세상에 몇명 없었어요.
사람들에게 주인의식을 갖도록 만드는 자본주의의 장점은 이젠 온데간데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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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안84의 노병가를 보고 있자니 생각이 많아진다.

조직이 없는 개인은 조직에 흡수된다.
때문에 생존의 단위는 조직이다.
그러나 조직도 무소불위의 개체가 아니다.
조직도 외압에 시달리고, 개체로서 생존하기 위해선 다른 조직과의 경쟁에 도태되지 않아야 하며,
조직의 상사에게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

조직이 생존하기 위해선 안으로는 조직이 자생할 수 있는 생활의 룰이 돌아가야 하며 밖으로는 임무 수행이 효율적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조직은 깨진다. 처음엔 압박을 받는 정도이다가 그걸로 안되면 조직의 통솔자를 더 잘 닥달할 수 있는 사람으로 바꿀 것이고 그래도 안되면 조직을 와해시켜서 다른 조직에 흡수시킬 것이다. 와해된 조직의 구성원들은 타 조직에서 더 작은 지분과 권리를 가지고 더욱 괴로워진다. 조직이 깨지는 건 생존의 문제다.

조직의 행동을 결정하는 판단의 과정은 민주적인 브레인 스토밍이 되는 경우도 있고 독재자의 독단이 되는 경우도 있으나
어쨌건 조직은 단일 개체로서 중구난방이 아닌 판단을 내려야 한다.
판단 내려진 명령과 지시를 팔다리는 빠릿하게 수행할 수 있어야 하며
세대교체되는 신입들을 교육해서 조직의 구조를 유지해야 한다.
노병가에서 묘사하는 의경 부대 구조는 이런 식이더라.
팔다리를 쓰는 일을 하지 않는 열외. (판단자+판단자가 일 시켜먹기 부담스러운 급들)
실무를 챙기는 책임을 지는 '챙'.
그 밑으로 팔다리가 되어 일을 하는 배식이나... 막내들.
수직 구조의 조직에서 팔다리가 "빠지지 않게" 관리하는 것은 챙의 몫이다.
그리고 그 이하의 구성원들은 각자 자기 후임들을 교육시켜서 이 구조속에 넣는다.
이 수직구조에서 하극상이 중간관리자를 깨버리면, 조직의 유지와 보수는 이루어지지 못하고 조직은 깨진다.
조직이 깨지고 나면 개인은 살아남지 못하기에 이는 생존의 문제가 된다.
생존의 문제는 종종 선악보다도 중요한 것이 된다.

작중에 김명호라는 사람이 나온다. 위로 인정받고 아래로 관대한 엘리트다.
김명호가 실세가 되었을때 그는 후임들을 힘들게 하는 온갖 악습들을 파격적으로 해체한다.
짬 안돼서 잠 못자고 고생하는 후임들 재우기, 고참이라고 막내들에게 근무 전가하지 못하게 하기, 1-2분만에 씻고 나와야 했던 후임들 여유있게 씻고 나올 시간 주기... 다른 고참들의 불만도 자기 세력으로 "닥치게 하고" 조직내 부조리를 일소한다.
그런 김명호가 두번 심하게 화낸다.
하나는 하극상이다.
권투하다 군대온 이준희는 고참의 부당한 명령에 고참 둘을 때려눕힌다.
그 때 김명호는 이준희를 집중적으로 찍어누른다.
이준희가 사과를 하건 뉘우치건 받아주지 않으며 그가 완전히 조직에 굴복할 때까지 압박한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 이준희가 조직의 구조에 완전히 순응했을 때,
김명호는 이준희를 하극상과 정반대의 입장인 조직의 구조를 수호하는 역할로서 힘을 쓰게 한다.
김명호는 왜 이준희를 찍어눌렀을까. 난 그 이유가 이렇게 보였다.
이준희가 가한 힘의 방향은 조직을 와해시키는 방향이다.
이준희가 자기가 때려눕힌 중간급을 대신해서 조직을 유지하는 일과 교육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이준희의 힘의 방향은 힘이 충분하다고 할 경우 조직을 와해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는 근본적으로는 그 조직이 경직된 수직구조인 탓이다.
이런 구조의 조직에선 아래로부터 부조리를 바로잡고자 하는 노력 조차도 곧바로 조직을 깨버리는 방향의 힘이 되어 버린다.
그러나 소대 외부의 구조가 여전히 군대인 이상은, 안에서 하극상을 용납하면 그 내무반이 '빠져서' '나가리되고'(수족이 판단에 따라 움직이지 않아 성과가 떨어지고 조직 윗선으로부터 나쁜 평가를 받아서) 외압에 시달리다가 와해되는 결과가 된다.
때문에 이준희의 하극상이 부조리에 대한 저항이며 옳다고 할 지라도
그 힘의 방향이 조직을 깨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는 한은 저지시킬 수 밖에 없다.
한편 노병가에 장기 병가자가 자기에게 인사 안하는 후임을 갈군 건에 대해서 병가자를 까는 에피소드가 나온다.
이 경우에는 병가자를 깨는 것이 조직 운영에 아무 지장을 주지 않는다. 힘의 방향이 조직을 깨는 방향이 아닌 경우다.

김명호가 화를 내는 다른 한 번의 사건은 타 조직과의 경쟁에서 공개적으로 낙오되었을 때다.
중대가 자기 구역에서 타 중대와의 경쟁에서 공개적으로 낙오되었을 때 김명호는 절대 터치 않던, 그래서 자기가 갈구면 "미쳤나봨ㅋㅋ"라고 답하던 자기 바로 아래 기수를 때리며 온 조직을 빡시게 굴리기 시작한다.
경쟁 조직과의 경쟁에서 밀리면 그 조직은 외압을 받게 된다. 조직이 윗선에서 가해지는 외압의 초기에 대응을 흡족하게 하지 못하면 외압은 점점 더 구체적이 되고 조직은 점점 더 각박해진다. 통솔자를 압박하고-그래도 안되면 통솔자를 더 각박하게 운영할 사람으로 바꾸고-그래도 안되면 조직을 개편하는 식으로.
결국 김명호가 화를 낸 두가지 일은
선악의 맥락에서 보자면 일관성이 없으나
조직에 위협이 되는 방향의 힘에 대하여 조직을 보호하고자 하는 생존의 맥락으로 해석할 때엔 일관성이 있다.

노병가를 보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했다.
나는 아주 개인주의적인 사람이다.
지금도 아주 개인주의적인 조직에 속해있다.
나는 조직을 위해 내 영역을 헌신하는 것에 익숙치 않다.
나랑 아주 친했던 내 이전 상사는 아주 개인주의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더 큰 조직이 우리 조직에 헌신을 요구할 때 아래를 쪼는 게 아니라 외압에 맞서는 사람이었다.
그러다 그는 다소 눈밖에 났고, 그는 다른 종류의 자리를 제안받아 이동하였으며, 그의 자리는 우리 조직내의 다른 사람에게 넘겨졌다.
새로운 내 상사가 된 사람은 이전 상사보다는 덜 개인주의적인 사람이다.
정확히는 그 자신도 우리 조직의 일원이었기에 개인주의적인 속내를 가지고 있으나 그러다가 눈밖에 난 선례를 염두에 둬서라도 외부를 상대로 개인주의적인 생각을 드러내는 것을 대단히 기피하고 있다.
만약 바뀐 사람인 그가 우리 조직으로부터 만족스런 성과를 이끌어 내지 못한다면 그 다음엔 조직 외부에서 낙하산인사를 붙이는 방법이 있다. 그렇게해서 분위기 쇄신 하라고(쪼라고) 외부인사를 불러오면 그는 개인주의적인 조직을 갈아엎으려는 방향으로 움직이겠지.
내가 개인주의적으로 살기 위해선 내가 몸담고 있는 개인주의적인 조직을 보호해야 한다. 내 조직이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며 그것을 염두에 둔 헌신이 필요하다면 근시안적으로 헌신을 아끼기 보다는 수행해야 한다.

과거에 내가 상명하복을 거스르고 위를 깐 게 두세명 정도 있다.
당시엔 내 성질 못이겨 거스른 것 뿐이었다.
'이 자를 완전히 묻어 죽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궁리했지
그 하극상 비슷한 것이 내 미래에 어떻게 작용할지는 모르는 채였고
그래서 이래도 내가 장차 괜찮을 건지 모르겠다는 불안감이 있었다.
지금도 과정에 불과하지만 어떻게 내가 여태 무사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를 알 것 같다.
정치적인 교섭은 물론이고 하극상조차도
그것이 성공하려면 조직의 존속을 위협하지 않는 방향으로 힘의 방향을 잡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사안의 선악도 중요한 명분이지만 조직 유지는 생존이라는 중요한 명분을 기본적으로 깔고 간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

이제 중간급인 나는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이번에 나이차가 좀 나는 사람들을 여럿 뽑았다.
이들에게 잡다한 것들을 알려주는 것은 귀찮은 일이고 꼭 내가 해야 할 일도 아니지만,
친절하게 알려주려고 하다 보니 내게 물어보는 사람이 늘어났다.
이게 단지 귀찮은 일이 늘어나는 것 뿐인가 생각했었으나 노병가를 보면서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이 조직의 생활과 상식을 나를 통해 교육하는 것은 나에게 이롭다.
이전과 똑같이 개인주의적으로 행동할 지라도
중간급인 나는 '개인주의적인 조직을 보호함으로써 개인주의적으로 행동할 터전을 보존한다'라는 관점을 유지해야 한다.
나한테 뭐라 할 사람 없는 만큼 자유롭게 행동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나 혼자 개인주의적으로 행동하고 조직에 대한 헌신을 비웃으면 나는 후배에게 나만 '빠진' 선배가 될 뿐이며 그 결과는 나를 조직의 중심에서 밀어낼 것이다.
개인주의적인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 구성원에게 너무 헌신을 요구하지 않는, 그러면서도 나 스스로도 따르는(적어도 내가 가르친 룰을 내가 무시하지 않는)
지속이 가능한 룰을 가르쳐주는 관계를 유지할 때 그 관계는 내게 수평/수직적 정치 관계에 있어 큰 힘이 될 것이다.

흔히 사회의 부조리를 밑에서 고칠 것이냐 올라가서 고칠 것이냐, 라는 말을 한다.
동시에 '올라가서 고치면 된다는 생각은 일견 쉬워보이지만 올라가는 과정에서 조직에 동화되기 때문에 올라가서는 고치지 못한다'라는 말을 한다.
그러나 부조리를 고치고자 하는 정의감에서 비롯된 하극상이건/내 한 몸 편하겠다는 사사로운 뺑끼에서 비롯된 하극상이건,
그 힘의 방향이 조직을 깨는 방향이면 그것은 결국 생존에 대한 위협을 하는 셈이 된다.
하극상조차도 그것이 성공하려면 조직의 존속을 위협하지 않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은
누군가를 깨기 위해선 그 깨고 난 자리를 매울 수 있어야 성공한다는 것이며
이는 내가 내 자리에 매울 수 없는 관계를 만들어 놓을수록 유리한 입지를 접하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노병가를 보면서
부조리를 고치는 데에 성공하기 위해서도, 내 일신에 이익을 위해서도 조직 규모에서 판단하는 관점을 갖는 것은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조직에서 발생하는 부조리에 대해
생존이라는 강력한 명분을 적대시 한 방향에서
조직의 입장을 염두에 두지 않은 채 부조리를 개선 하려 한다면
그 개선은 성공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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