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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애들 버릇없다'라는 말은 이집트 피라미드에도 나온댄다.
항상 있어온 증언이지만, 동시에 '수천년간 계속 버릇 없어졌으면 지금은 지옥이게?' '더 영악해졌다는 증거는?'등으로 얘기하면서 사실무근인 없는 현상일거라고들 얘기한다.
항상 관찰되어온 것이 과연 없는 현상일까?

이래라 저래라 지시한게 안 따르면 큰일나는 진짜 중요하고 타당한 것이면 훈육이라고 하지만
이래라 저래라 했는데 그게 안 따라도 큰일나는게 아니고 자유의지만 구속하는 불필요한 간섭이면 잔소리라고 한다.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앎의 차이가 작을수록 지시는 잔소리가 되기 쉽다.

천년전에는 세상이 별로 빠르게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어른은 한번 배운 것을 마르고 닳도록 써먹을 수 있었고
쌓은 지식을 가지고 조직적으로 통찰력을 발휘해서 아이보다 훨씬 더 지혜로울 수 있었다.
그런데 세상이 빠르게 변하게 되면 어차피 새로운 문물을 새로 배워야 하는 아이 입장에서는 배우는 난이도가 똑같지만
자꾸 바뀌는 걸 따라가야 하는 어른 입장에선 자꾸만 새로 배워야 해서 난이도가 대폭 올라간다.
현대의 어른은 바뀌는 세상의 신문물을 따라가는 데에 아이만도 못하기 일쑤다.
세상이 빠르게 변할수록 아이와 어른간 앎의 간격은 좁아질 것이다.
역사 전반에 걸쳐 세상은 점점 더 빠르게 발전해왔고 아이와 어른간 앎의 간격은 점점 더 좁아져 왔다.

앎의 격차가 클수록 하라는 대로 안하면 큰일 날 가능성이 크다.
앎의 격차가 작을수록 하라는 대로 안하고 자기 뜻대로 해도 큰일 날 가능성이 작아진다.
앎의 격차가 작은 사람 간 일수록 이래라 저래라 지시하는 말이 쓸데없이 내 자유의지만 구속하는 잔소리가 되는 비율이 커진다.

과거 : 애와 어른의 앎 격차 큼.
현재 : 애와 어른의 앎 격차 작아짐.

잘못될 가능성의 크고 작음은 자기 경험이나 주위를 보다 보면 알게 된다.
먼 과거엔 어른 말(혹은 어른 말의 총체인 관습이나 터부) 좀 안듣더니 죽는 애가 나오는 일이 더 많았을 거다. 사람들은 그걸 보며 자랐을 거다.
좀 더 나중 시대엔 어른 말 안들었더니 장기적으로 인생 망치는 경우를 보며 자라난 사람 수가 지금보다 더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어른과 애의 앎의 격차가 작아지면, 애 입장에서 어른의 지시가 안 따라도 큰일 안나는 쓸데없는 잔소리가 되어간다.
점점 더 어른이나 관습이 지시하는 대로 안해도 별 큰일이 안나는 걸 보며 자라는 사람의 수가 늘어나게 된다.
그럴수록 어른의 지시를 불신하게 된다. 터부나 통념에 대해서도 의심하고 범하는 수가 늘어나게 된다.
즉 고분고분하게 따르지 않게 된다. 이것을 어른의 관점에서 보면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어진다'.

'버릇없다'는 표현은 같은 태도 중에서도 부정적인 면만을 묘사하는 표현이라서 공정한 표현은 아니다.
'범하면 큰일 나는 걸로 알려져서 행동하는 사람이 알아서 조심하던 터부 같은 규범을 넘나드는 행동'들을 흔히 버릇없는 행동이라고 하는데
이건 양면성이 있다.
어긴 규범이 지켜져야 할 타당한 이유가 있는건데 불신하고 어겨버리면 '싸가지 없음'~'반인륜 악인' 사이 정도로 평가된다.
하지만 한편으로 똥권위 앞에 쓸데없이 전전긍긍하던 것이나 혹은 무지해서 막연히 두려워하던 것을 넘어버린 게 되면
이는 통쾌한 용기 내지는 패기 정도로 표현된다.
수천년간 계속 '버릇없어진' 이면에선 실제로 점점 더 '터부나 통념을 깨고 자기 생각대로 행동하는 경향'이 강해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수천년에 걸쳐 반복된 '요즘 애들 버릇없다'라는 증언은 아예 사실무근인 말이 아니라
실제로 있는 현상을 어른 관점에서 진술한 것이 아닐까?
수천년 동안 점점 더 빨라져 온 변화 속도가 => 아이와 어른간의 앎의 격차를 점점 더 줄이고 => 지시가 필요없는 잔소리가 되는 비율이 늘어나면서 =>
점점 더 기존의 관습이나 어른의 지시에 고분고분하지 않은 아이들이 늘어나게 된 것이라면
세상은 실제로 점점 더 버릇없어져 왔다.

이 맥락안에서 대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무턱대고 방임하여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을 수는 없다. 적정한 수준의 지시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세상의 변화속도가 빨라지는 것, 그로인해 애와 어른의 앎의 간격이 줄어드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상이다.
이 상황에서 본인이 들었던 것과 동일한 수준으로 아이에게 지시와 간섭을 한다면
아이를 향한 내 지시는 나를 향했던 내 부모의 지시보다도 좀 더 필요없는 잔소리가 되는 비율이 높아질 것이다.
(아마도 전 세대에 걸쳐 항상 그래왔을 것이다. 부모는 자기가 자라며 들었던 만큼의 지시와 간섭을 하고, 그게 자식에겐 좀 더 지나친 간섭이 된다.)
이를 인식하는 것이 해법의 시작이다.
법적/사회적으로는, 과거에 비해 유년기가 늘어나고 있는 것은 이 현상에 상충하는 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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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노크노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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