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면 할수록 설령 더 나은 것을 보더라도 바꾸고 싶어하지 않는다.
못생긴 강아지처럼 생긴 자기 세살 아이를 유투브의 인형같은 아이랑 바꾸고 싶은가 생각해보라.
자식만 그런게 아니다.
연인을 다른 잘난 여자와 바꾸고 싶은 것은 사랑이 부족해서다.
당신 인생을 다른 인생과 바꾸고 싶은 것은 사랑이 부족해서다.
사랑하면 고유해지고 고유한 것은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더 잘난 자신(사춘기에 발동), 더 잘난 연인(오춘기에 발동), 더 잘난 가족(애 낳고 발동)을 탐내는 것을 상쇄하는 것은 사랑의 문제다.
내가 애를 사랑하면 남의 집 천재소년으로 바꾸고 싶지 않다.
내가 아내를 사랑하면 남의 잘난 여자가 탐나는 마음이 가라앉는다.
내가 내 삶을 사랑하면 타인의 삶이 탐나지 않는다.
그리고 사랑의 부족은 인생의 존재 의의를 흔든다.
무엇이 행복한가?
나는 가족이 웃는 모습이 행복하다.
내 행복의 정체가 타인의 행복이라는 건 순환 논리처럼 이상하지만 실제로 이게 삶의 이유 대부분이라 빼놓고 행복을 논하기 어렵다.
이건 특별히 가족적이어서가 아니다.
수리남 사이비 교주 겸 살인마 겸 마약왕인 대악당이 돈으로 유혹하는 대사가 "그 돈이면 와이프가 어떤 차를 타고 아이들이 어떤 학교를 다닐지"다.
악마 같이 벌어도 쓰고 싶은 곳은 가족의 행복이란 거다.
극한 예시로 설령 섹스에 미친 남자라도 삽입감 좋은 목석보단 리액션을 즐길 것이다.
이건 선함이나 이타성 때문이 아니라 유전자에 새겨진 마약 버튼 같다.
사랑이 부족해지면 이 마약버튼이 잘 동작하지 않게 된다.
고독에 취약한 사회적 동물로 진화한 인간의 두뇌는 결코 단독으로 고통의 총량을 능가하는 기쁨을 생산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쉽게 각종 자극에 익숙해지고 학습이 끝난 두뇌는 즐거운 일이 줄어든다. 어릴때 재밌던 것들이 어지간히 익숙해진 나이에 이르러 이 성향이 더 강해지고 있다.
이젠 게임도 안한다. 여행, 미식, 수집, 내 즐거움을 직접 타게팅하는 종류의 재화는 거의 흥미를 잃었다.
'어디가서 뭘 먹이면 좋아할까?' 어떻게 하면 그들이 좋아하는 것을 내가 볼까 라는 간접 타게팅이 더 잘 동작하고 있다.
퇴근 길에 딸기 케이크를 사왔던 날 난 케이크 같은 건 전혀 좋아하지 않는데 공부하는 아이들과 아내 옆에서 기웃거리며 '언제 먹지? 좋아하면 좋겠다'하고 있었다.
딸기 케이크 맛 따위는 아무리 훌륭한 맛이어도 허무한 감각일 수 있으나 그것이 타인의 기쁨을 거쳐 오면 맛 이상의 의미가 된다.
사랑의 부족은 비교로 느끼는 상대적인 고통으로도
스스로 느끼는 절대적인 즐거움으로도 나타나는 바,
사랑함으로써 군집생물인 인간의 비교에 의한 고통을 가라앉히고 역시 군집생물이기에 느끼는 즐거움이 잘 동작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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