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삼성전자는 회사의 투자가 직원 성과급보다 선순위를 가지고 있다. 번 돈에서 주식을 사거나(인수합병) 부동산을 사면(공장증설) 직원 줄 돈이 안 남았다는 이유로 안 줄 수 있다. (가령 어떤 회사처럼 비트코인에 투자해도 직원 줄 돈 없다고 안 줄 수도 있다.) 직원과의 계약관계에서 직원의 몫이 투자보다 후순위라는 건 회사가 직원 몫을 일방적으로 결정 가능하다는 뜻이다. 오른쪽 주머니의 돈은 나눠 가질 것인데 왼쪽 주머니로 옮겨 넣으면 네 몫이 없는 것이 된다니 부조리하다.
성과급 산정식 투명화가 노사갈등의 핵심이다.
명분은 노조에 있다.
원래 사람이 모이면 뜻이 변질되기 쉬운데도 불구하고 노조의 요구사항은 성과급 산정식 투명화가 핵심이다.
인지상정상 중간에 자기들만의 특혜와 보상 요구가 강조되는 쪽으로 변할 수도 있었는데 아직까진 그러지 않았다.
성과급 산정식 투명화만 놓고 봤을 때 명분은 노조에게 있다.
주식회사가 벌어들인 돈에는 대주주 소액주주 근로자등 이해관계자들의 정당한 몫이 있다. 회사의 돈이 다 대주주의 것이 아닌데 대주주가 소액주주의 권리를 무시하고 자기 유리한대로 돈을 운용하면 경영권 남용이듯이, 불명확한 계약으로 근로자의 몫을 경영자 편한대로 정하면 권리침해고 잘못이다.
바로 이런 대주주와 경영진의 권리남용 때문에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세계구급 최악이 된거다. 이런 식으로 경영진이 대주주의 이익에만 충성하는 것은 자본주의 가치조차 손상시키는 유명한 한국 특유의 고질병이다.
'회장님의 상속세 때문에 삼성물산에 일감 몰아주기로 돈을 옮기기 위하여 공장 건설 투자를 과도하게 하고 그 결과 삼성물산은 호실적이 나오는데 삼성전자는 직원 성과급이 안나올 정도로 소액주주와 직원등을 포함한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져버리고 있는 것이 아닌지 정황적으로 의심이 되므로 성과급의 책정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달라'라고 하면 성과급 투명화의 명분은 자본주의적 정의에 비추어 봐도 완벽히 노조의 것이다.
하지만 싸움은 정의로 이겨지지 않는다. 그 정당한 명분이 회사 밖 여론을 움직이기는 커녕 전달되는데에 조차 실패했다. 여론의 지원 없이 내부의 힘으로 겨뤄보기엔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힘의 크기는 명확히 알아야 한다.
가령 현금흐름이 여유롭지 않은 회사에서는 물건 팔아서 다음 생산할 재료 준비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수주사업에서 고객사의 납기 일정을 어기면 위약금과 고객 신뢰가 흔들려서 다음 수주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다. 이런 조건들 하에서의 파업은 회사를 도산시킬 수도 있기 때문에 경영진을 강하게 흔들 수 있다. 회사는 도산하기 싫으면 노조의 요구를 들어주게 된다. 요구가 돈내놔이든, 파업기간중의 파손 불법행위에 손배 걸지 않는다이든, 다시 파업 맞지 않기 위해선 회사는 들어줄 수 밖에 없다. 파업은 전쟁이고 파업 승리는 회사 목에 칼을 들이미는 행위다. 그렇기 때문에 회사는 라인을 정지시키려는 파업을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삼성전자는 저런 회사들이 갖는 어려움의 완전 반대쪽에 있다. 시총1위의 덩치에 재무상태도 탄탄하다. 현금흐름은 너무 풍족하고 이익을 내는 주력인 메모리는 수주 납기를 맞추는 산업이 아니라 재고를 축적하는 산업이며 파업자를 대신해 투입할 인력도 넘치게 많다. 이 조건에서 생산직 천명 정도의 파업은 '그들의 동료를 피곤하게 한다'는 이상의 선을 넘지 못한다. 회사가 파업에 굴복하는 선례를 남길 이유가 단 하나도 없다.
게다가 본래 성과급 투명화 요구는 연구개발직에서 커진 여론이다. 근래 노조가 폭발적으로 세를 불린 것은 반도체 부문 사무직의 불만 여론이 중심이었다. 그런데 이 사무직들은 자율출근제에다 업무도 상시 자리 지키는 업무가 아니라서 교대근무하며 라인을 지키는 생산직에 비하면 파업의 의미가 별로 없다. 이 상태에서 노조가 생산라인에 타격을 주기를 목표라고 하고 무기한 파업을 했다. 이 무기한 파업에는 사무직이 거의 참여하지 않았다. 결국 생산직 중심의 파업이 되었다. 핵심 세력이 동참하지 않은 파업을 한 셈이다. 안 그래도 작은 힘이 더 작아졌다. 게다가 생산직 중심의 라인 파업으로 승리하면 파업을 할 수 있는 생산직의 입김이 세지게 되는데, 사무직 기준으로는 삼성전자가 '가장 좋은 곳'에서 '좋은 곳들 중의 하나'로 격하되는 중이지만 주로 고졸인 생산직 기준으로는 여전히 '비교할 수 없는 가장 좋은 직장'인 상태라서 여기서 더 좋은 대우를 해 줄 이유가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합의해줄 가능성이 없다.
이 파업이 회사에 위협적인 피해를 줄 가능성은 낮고
피해를 주더라도 그로인해 회사가 굴복할 가능성은 아예 0이다.
오히려 생산 설비를 24시간 지키라고 고용한 인원이 설비 중지를 기도했다는 점에서 생산직에 대한 회사의 신뢰가 손상되는 직원쪽 피해가 생긴다. 파업은 전쟁이다. 전쟁에 지면 처형되거나 포로가 된다. 파업을 이유로 해고하는 게 불법이라고 생각하겠지만 합법의 선 안에서 얼마든지 처형 가능하다. 근태 전산 기록 뒤져서 '근무 시간 중 출문한 기록 있는데 왜 제외시간 넣지 않았는지 해명하라' 하면 개인은 기억 못해서 해명 못한다. 이를 이유로 근태 부정 징계 해고 하면 부당 해고 무효 소송 걸겠지만 그 상태로 재판 끌면 말려서 죽게 할 수 있다. 이런 식의 도구가 사측에겐 얼마든지 많다.
그 결과 현재, 삼성전자는 파업을 거의 전적으로 무시하고 있다. 교섭을 하기는 하나본데 백기 투항할 기회를 준다 수준의 교섭으로 보인다.
반도체 부문 직원수 7.5만명 중에 3.5만명이 노조에 가입했다고 한다. 파업은 무마하더라도 삼성전자 입장에서 이 수치는 불만의 척도로서 위협적이다.
경쟁사가 있는 회사 입장에서도 인력을 마냥 싸게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라서 인력 이탈을 막기 위해서 24년 PS는 35%~40% 정도는 내 줄 것이다. 소액주주에 대해서도 초과 성과에 대해 경영진이 이익의 상방을 막아 놓고 '이 정도면 만족해라' 하는 정도의 분배를 한다는 것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유발하는 요인이라는 점과 유사하다.
명분은 노조에게 있으나 명분을 여론전에 활용하지도 못했고 힘의 크기도 회사가 압도적인 상황에서 회사가 양보할 수 없는 방향으로 충돌했다. 파업은 이미 실패했다고 봐도 좋으며 지는 전쟁을 건 사람들은 축출될 것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아마도 이런 것이 아닐까 추측한다. 노조 집행부가 고졸 생산직으로서 대졸 사무직의 이해관계를 대변하지 못한다는 사퇴 압박을 받았는데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 생산직 중심의 파업을 한 것 같다. 7월 8일 월요일까진 유기한 파업으로 불만인원들의 머리수를 보여주는 방식이었는데 이때까지는 사무직의 참여도가 높았다. (사실상 이때까지는 파업이라기 보다는 시위)
이후 무기한 파업을 하면서 생산직 중심이 되었는데, 실력행사가 아니라 공론화에 집중해서 파업 보다는 간헐적 시위를 반복하면서 참여인원을 늘려 나가는 것을 보여줬다면 사무직 참여도를 잃지 않았을 것이고 회사도 무시하기 어려웠을 것이며 어차피 인력 이탈을 막기 위해 올해는 35% 이상의 ps를 줘야 하는 상황에서 그 공이 노조에게 있다는 선전도 할 수 있었을 것 같다.
생산직에겐 여전히 가장 좋은 직장이라는 점이 오히려 이직할 곳이 없는 상황을 만들어서 생산직을 더 적극적으로 만든 것도 같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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