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112024  이전 다음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전화영어로 잡담하다가 이런 얘길 했다.
딸이 꿈이 아이돌 이라고 맨날 거울 앞에서 춤추고
거울에 빠질 것 처럼 들여다 보느라 숙제 안하고
다음날 queen bee가 되고 싶은 것 외엔 아무 생각 없어 보이는데
딸이 미래에 먹고살 돈을 벌 수 있어야 해서 내버려 둘수는 없다고. 아마 딸 관점에선 아빠는 '그러면 미래에 먹고 살기 힘들어' 같은 말만 하는 머리 속에 돈만 든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다고.

그런데 그렇지만도 않나보다.
딸이 학교 선생님이랑 이런 얘기를 했댄다.
선생님이 "행복은 돈이 전부가 아니니까~"라고 했더니
아이들이 "돈 많으면 행복하고 돈 없으면 불행한데 돈이 행복 아니에요?"라고 물었다.
선생님이 "선생님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지금은 도덕 시간이니까 돈이 행복이 아니라는 얘기를 하자"라고 했댄다.
요즘 애들 발랑 까져서 뭣도 모르면서 황금추종자가 됐나보다.
이런 말하는 딸에게 "네가 늦게 자고 떼쓰면 돈에는 변화가 없는데 행복은 변하는데?"라고 말했다.

흔히 학벌을 얻는 이유는 좋은 직업을 얻기 위해서라 하고
좋은 직업을 얻는 이유는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라 하고
돈을 많이 버는 이유는 (미녀나 사랑이나 사치품을 사서) 행복을 사기 위해서라 한다.
이건 각각의 과제를 요소로 환원해서 선결과제화 하는 것 같다.
목표 자체에 집중하지 않고 환원시킨 것 중 눈에 띄는 한 두 요소를 선결점으로 삼아 집중하는 이런 인식엔 맹점이 있다. 필요조건은 충분조건이 아니다. 세상은 여러가지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이 인식으로 목표가 손에 닿지 않으면 선결점을 탓하게 된다.
'행복하려면 (먹고 살) 돈이 필요해. 행복하지 않은 것은 돈이 충분치 않기 때문이야.'라는 생각을 할텐데 사실은 돈은 이미 됐고 다른 걸 신경써야 하는 상황이기 쉽다. 대상이 돈이건 성공이건 행복이건 여자건 사랑이건 건강이건 마찬가지다. 행복도 성공도 일종의 건강과 같다. 영양실조 걸렸을 때 고봉밥만 퍼먹으면 낫는 게 아니라 영양실조 걸린 비만이 된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것은 생존이다. 생존은 중요한 것이지만 충족되고 나면 다른 것이 중요해진다. 이제 건강, 아이나 어른의 엇나감 등을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식이 엇나가는 걸 돈으로 때우려 하면 돈이 무한정 들고도 해결이 안된다.
사치품의 만족감은 생리적인 max를 친 후 역치와 한계 효용 올라가서 결국 별 효용 없다. 만족감 가불에 불과하다.
생존을 산 이후의 돈은 그저 점수에 불과하다. 비디오게임도 경험치건 점수건 무언가를 얻기 위해 한다. 그건 가상의 포인트고 돈은 그나마 한발 더 현실에 가까운 생산적인 득점이라서 게임보다는 재밌다. 하지만, 돈이 해결할 수 있는 현실 문제는 이미 해결한 후라서 더이상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하고 내가 이 게임을 잘 하고 있다는 지표만 되는 게임 포인트일 뿐이다.

사람은 한순간에 죽을 수 있고 행복은 쉽게 깨질 수 있다.
코로나 시즌 무렵에 장인어른 쓰러지셨을 때나
코로나로 직장이 휘청일때나
아이가 엇나갈 때
삶이 흔들리는 느낌이었다.
다 좋아도 가족중 환자가 있으면 삶이 고단해진다. 다른 것 완벽해도 애나 어른 하나가 엇나가면 불행해진다. 다 좋은데 사랑만 식어도 불행해진다. 어느 한 요소만 잘못 되어도 행복이 혹은 삶이 흔들린다. 얼짱 몸짱 완벽한 육체여도 어느 한 요소만 잘못 되어도 건강이 혹은 목숨이 흔들리는 것처럼. 환원된 일부 요소를 인생의 만능키처럼 생각하기엔 삶에는 돌봐야 할 것들이 여러가지다. 성공의 요소 환원 과정에서 놓치거나 외곡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성공하기 전에 성공의 요소를 다 알기란 불가능해서 일것이다.

대학가고 머리속에 여자 생각만 가득했던 적도 있었다.
투자 배우며 돈 생각만 가득했던 적도 있었다.
그런 때 선결과제를 생각하진 않았다.
대신 목표에 집중했다. 무수한 시행착오를 하는 과정에서 능숙해지고 당면한 필요 능력을 갖추는 방식으로 접근했었다.
요즘 흔한 방침은 환원된 선결 과제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보인다. 사랑은 미모, 미모는 돈, 돈은 직업, 환원 재환원하고 '나 정도면 이 정도에'라는 가격을 파악해서 준비한 후 실패없이 성공을 원하는 것처럼 보인다. 시작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는데 성공하고 나서 시작하려 하는 것 같다.

한국의 요즘 세대는 특히 극단적으로 돈에 집착한다는 평가가 있다. (딸 하는 거 보면 남의 일인양 말할 상황도 아니다.) 경제적 이유로 결혼과 출산을 포기할 정도면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굶주릴 땐 음식의 양이 행복의 양이니까. 그러나 실제론 음식의 양은 행복의 요소일 뿐이다.
심지어 행복조차도 바람직한 삶의 한 요소일 뿐이라 행복하기 위해 살면 공허하다. 의미를 잃는다면, 단지 한 요소에 과몰입해서 행복에 절여진 삶이 좋은 삶은 아니다.
요소 환원하여 실패를 피하려하기 보단 살면서 하나씩 풀어나가는 것이 가능한 길이리라.
어떻게 이끌면 딸이 알아들을까. 더 생각해봐야겠다.

Posted by 노크노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