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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의 존재의의는 효율성에 있다.
인문학과 종교는 같은 주제에 대한 서로 다른 접근인데, 인문학은 아래로부터 쌓아올라가는 방식이고 종교는 위에서부터 하달되는 가르침이다.
그런데 가르침(교육)이 존재하는 이유는 효율성 때문이다. 가르침 없이 연구해서 도달하는 데에 시간이 너무 걸리기 때문에 가르침을 행한다.
종교는 가르침이고, 따라서 그 존재의의는 효율성을 위함이다.
쌓아올라온 앎은 탐구자가 이미 알려진 지식을 이해할 때 올바른 이해를 할 역량이 보장되지만, 하달되는 가르침은 배우는 사람의 역량이 보장되지 않는다.
그래서 올바른 가르침 조차도 하달과정에서의 오해는 발생하곤 하며 이는 정밀성을 갉아먹는다.
종교는 본질적으로 효율성을 위해 정밀성을 희생하는 구조다.

이를 배경으로 하는 가치판단은 상반될 수 있다.
효율성이 존재의의이므로 효율성을 강화해야한다는 기독교식 가치 판단도 가능할 것이며
'(어차피 정확히 알지 못하는 배우는 자들끼리) 불교의 법을 다투지 말라'는 불교식 가치판단도 가능할 것이다.
어느 쪽이든, 종교가 정밀성에 한계를 가지며 효율성을 위해 존재한다는 내용은 전제해 둠이 옳다.
Posted by 노크노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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