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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는 과학혁명의 구조 요약이다. 사례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예시로 소개된 사례들을 가급적 빼놓지 않고 정리했다.

~~~~~~~~~~ 과학혁명의 구조 요약 ~~~~~~~~~~~

패러다임을 기준으로 본 학문의 모습은 다음과 같다.
초기 - 무작위적 사실 수집으로 시작한다. 그러다가 다수의 패러다임들이 등장하여 서로 경쟁하고 수정하다가 통합 공유되는 패러다임이 출현한다. 패러다임 장악이 일어나는 시기 까지가 학문 발생의 초기다. 이러한 학문의 발생 과정은 수학처럼 최초의 패러다임이 계속 지속되거나, 생화학처럼 이미 성숙기인 학문들끼리 결합하여 발생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역사적으로 전형적인 방식이라고 쿤이 수집한 사례들은 말한다.
예시 : 운동연구는 아르키메데스에서 패러다임 통합. 광학은 뉴턴, 전기는 프랭클린, 열은 블랙, 화학은 보일과 부르하베에서 패러다임 통합. 유전학은 최초의 패러다임 장악이 근래에 나타났으며 사회과학은 어느 부분이 패러다임을 얼마나 장악했는지가 아직 미결과제로 남아있다. (쿤의 시대까지는 그랬다. 사회과학이 패러다임 통합이 일어나지 못한 상태라는 것이 주목할 만하다.)
비록 알려진 모든 현상을 다 설명하지는 못하더라도, 경쟁 패러다임들을 압도할 설득력을 갖추기만 하면 초기 패러다임 장악은 일어난다.

중기- 패러다임 장악이 된 상태의 학문 활동을 normal science 라고 부르며 정상과학이라고 번역한다. 이렇게 부르는 이유는 패러다임 장악이 일어난 후의 학문 활동이 우리가 인식하는 과학 활동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한 분야를 명백히 과학이라고 선언할 만한 기준은 패러다임의 통일이었다.'라는 게 쿤의 주장.
패러다임 장악 후의 단계인 normal science 활동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공유된 패러다임에 맞춰서 사실 수집 활동이 이루어지고, 이론 명료화 작업이 방향성이 뚜렷한 형태로 진행된다.
패러다임 장악 이후 사실 수집 활동은 크게 세 가지에 국한된다.
첫째, 패러다임의 토대가 된 사례를 최대한 정밀하게 재확인하기이다. 즉 '뭐뭐는 어떤 것이다'라는 패러다임을 탄생시킨 사례를 정밀하게 재확인해서  '뭐뭐가 정말 어떤 것이 맞나?' 확인하는 것이다. 이로서 패러다임은 무엇을 의미 있는 현상으로 치고 무엇을 별로 중요하지 않은 현상으로 칠 것 인지를 결정한다.
둘째, 그때까지는 알려져 있지 않았으나 패러다임을 통해 예측되는 사례를 찾아서 확인.
'뭐뭐가 어떤 것이라면, 저거는 이렇게 되겠네?'하는 추정을 확인하는 작업이다.
실재로는 이론이 그때까지 밝혀지지 않았던 사실의 예측 가능성을 제시하는 경우는 별로 많지 않다.
셋째, 이론의 명료화 작업이다. 패러다임을 더욱 더 명료화 하는 사례를 수집한다. 즉 중력 가속도나 줄의 계수등의 측정작업이 이에 해당한다. 이 작업은 정성적인 패러다임을 정량적인 것으로 만드는 실험의 고안등을 포함한다. '뭐뭐가 어떤 것이라는 건 분명하고 그 안의 계수 등이 정확히 어떤 값인지?'하는 작업이다.
이것들은 모두 퍼즐 풀이 작업의 형태를 갖는다. 퍼즐이란 '답이 있는 것으로 가정 되는 문제'를 뜻한다. 때문에 과학자의 학문 활동은 패러다임이 옳다는 가정 하에 답이 있을 것으로 추정 되는 문제들을 푸는 작업이라는 성격을 갖는다. normal science 단계에서는 '답은 있으나 여태까지 아무도 풀지 못했던 퍼즐을 풀어낸 뛰어난 퍼즐 풀이자'가 뛰어한 학자로 평가 받는다.
원래는 인간이 과학에 흥미를 느끼는 이유들은 퍼즐 풀이 외에도 여러가지가 있다.
가령 유용성에의 욕구나/새로운 영역을 탐사하는 경이감/질서를 찾아내려는 희망/이미 정립된 지식을 시험하려는 충동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정규 연구 활동에 종사하는 과학자의 경우 거의 모든 경우에 오로지 퍼즐 풀이 만이 가치를 갖는다. 과학 활동의 가치는 얼마나 어려운 퍼즐을 풀어낸 것이냐에 따라 학계의 평가를 받지 유용성 여부에 의해 평가받지 않는다. (라고 쿤은 주장.)
퍼즐 풀이의 성격을 갖는 normal science는 과학 지식의 범위와 정확성의 '꾸준한 확장'이라는 목표에 성공적인 활동이다. '검증된 앎을 치밀하게 쌓아 올라가는 것'이라는 학문 연구의 보편적인 이미지는 정확히 normal science 활동에 맞추어져 있다. (학문의 이미지가 normal science에 맞춰져 있을 때, 과학이야말로 가장 정확한 학문 중의 학문으로서 자리매김 된다.)
normal science 단계의 과학자들은 새로운 이론의 창안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또 패러다임에 안 맞는 종류의 새로운 현상에 주의를 환기시키려 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새로운 현상은 보이지 않는 셈치고 새로운 이론도 외면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단지 패러다임의 명료화를 지향한다.
정상 과학의 정확한 측정 작업이 패러다임을 명료화하는 작업으로서 수행되는 것이기 때문에 해당되는 패러다임의 기반 위에서 수행된 것이 아닌 측정은 수치 측정조차도 사실과 다른 값으로 기록되기 일쑤다. 이는 여러 패러다임의 경우에서 발견되는데 가령 돌턴의 배수비례법칙의 예시를 들면 이렇다.
배수비례법칙은 탄소무게1과 결합할 수 있는 산소무게는 1.3 또는 2.6 뿐이라는 것, 즉 탄소 한개와 산소 한개가 결합하거나 또는 탄소 한개와 산소 두개가 결합하는 것만이 가능하지 탄소 한개와 산소 1.5개가 결합하는 건 불가능 하다는 법칙이다.
돌턴이 처음 그의 이론을 확인할 데이터를 찾아 화학 문건들을 뒤질 때 그는 이론에 맞는 몇 가지와 이론에 맞지 않는 여러 기록들도 발견해야 했다.
심한 경우 구리의 산화물 두 가지에 대한 프루스트의 측정은 이론치인 2:1과 달리 1.47:1 이라는 값을 얻고 있었다. 프루스트는 당대의 충분히 훌륭한 실험학자 였으나, 어느 실험에나 상존하는 오차를 패러다임의 도움 없이 조절한다는 건 이런 결과를 가져온다. 돌턴의 배수비례법칙은 그 후 거의 한 세대에 걸쳐 재 실험을 통해 데이터 변경 작업을 거쳐야 했으며 이런 수치 데이터의 변화는 패러다임 전환 시에 전형적이다.

혁명기 - 패러다임에 들어맞지 않는 '이상 현상'을 발견하면서 혁명기가 시작된다. 이때 발견이란 개념 자체를 분명히 해야 한다. 발견은 보는 것과 다르다. 발견은 그게 무엇인지 알고 보는 것이다. 현상이 기록된다 해도 그것이 무엇인지 인식해야 현상이 발견되는 것이다. 패러다임에서 벗어나는 현상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는 때가 이상 현상이 발견되는 때이다. 이상 현상은 기존 패러다임이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이 확실한 현상이다. 패러다임에서 벗어난 현상이 확실한지는, 패러다임이 예측하는 결과를 정확히 알 때에야 비로소 확실해진다.
정상과학이 심화되고 정밀해질수록 이상 현상을 발견하는 지표도 민감해진다.
이로써, 비록 정상과학이 새로운 현상 발견을 지향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패러다임 수정을 유도해낸다.
패러다임의 위기는 퍼즐 풀이 활동의 붕괴가 핵심이다. 패러다임이 옳다면 답이 있기 마련인 퍼즐들이 답이 나오지 않는 것이 시작이다. 이러면 답이 안 나오는 이유를 해석하고 답을 내기 위해서 이론을 조금씩 수정하는데, 답이 안 나오는 상황이 여러가지 문제에서 나타나면 이상 현상을 여기서 막은 수정안이 저기서 막은 수정안과 상충하는 상황이 생긴다.
정상 과학의 위기 상황이다. 이런 상황을 코페르니쿠스는 '각기 서로 다른 화가가 모델의 각 부위를 제각각 그려서 손 발등은 뛰어나게 잘 그렸으나 합치면 도저히 한 사람이 될 수 없는 괴물'이라고 묘사했다.
실례로는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나오기 전 천동설의 상황/라부아지에의 산소 발견 이전의 프로지스톤 이론/ 맥스웰 전자기 이론이 나오기까지 뉴턴의 에테르 이론 등을 들 수 있다.
이제 위기에 대한 반응을 살펴보면, 비록 구 패러다임이 반증되는 현상이 발견된다 하더라도, 그것을 대체할 새로운 패러다임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절대로 구 패러다임은 폐기 되지 않는다.
(학문의 초기 패러다임 장악 시에 패러다임이 알려진 자연의 모든 문제를 설명하지 못해도 경쟁 패러다임을 압도하는 설득력만 가지면 채택된다는 것을 상기해보면, 패러다임의 선택은 패러다임 간의 싸움으로 이루어지지 자연 현상과의 싸움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구 패러다임이 자연과 일치하지 않는 것이 발견된다 하더라도 새 패러다임과의 비교를 통해 대신 선택할 이론이 마련되기 전까지는 역사적으로 한번도 구 패러다임은 폐기된 적이 없다.
이유는 대안 없는 패러다임 포기는 과학 자체를 포기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설령 몇몇 학자 개인이 '이 학문의 패러다임은 완전 엉망진창이다'라고 생각해서 대안 없이 패러다임을 폐기해버린다 해도, 그건 그가 그 학문에서 손을 뗀다는 의미가 되지 (포기하지 않는 학자가 남아 있는 한) 학문이 소멸한다는 의미가 되진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상 현상이 발견되어도 모든 학자가 그 학문을 다 포기해버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상 현상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
1, 기다리면 해결되는 경우.
2, 보다 진보된 도구를 지닌 다음 세대로 미뤄지는 경우.
3, 패러다임을 위기 상황으로 내모는 이상 현상.
1번 경우에 대해 예시하면 : 오차는 항상 있기 마련이고 때로는 확연한 오차조차도 기다리면 해결되기도 한다. 뉴턴의 원래 계산 이후 60년동안 달이 지구에 가장 가까워지는 근지점의 예측치가 관찰값의 절반뿐이었으나, 뉴턴의 역제곱 법칙의 수정에 대한 제안은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실제로 기다림 끝에 1750년 클레로에 의해서 그간의 수학적 적용이 잘못이었음이 증명되었다. 이런 상황은 '사소한 실수도 있을 법하지 않은' 경우에 조차도 나타난다. 그래서 관측이 어긋나는 것이 학계에서 심각한 반증 사례로 항상 인정되지는 않는다.
그럼 언제 이상 현상이 패러다임을 위협하는 3번의 것이 되는가?
이에 대해 쿤은 일반적인 법칙을 찾아내지 못했다고 말한다.

정상 과학의 이상 현상은 긴 시간에 걸쳐 관찰되고, 이상 현상은 계속 누적된다.
게다가 후에 대안이 되는 패러다임들은 완전히 새롭게 태어나는 게 아니라 과거에 존재했던 이론들의 수정 증보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시 : -상대성이론의 공간과 운동의 상대성은 라이프니츠등의 자연과학자들에게 논리적으로 알려져 있는 개념이었고 그들은 뉴턴주의를 상대론적으로 비판했었다.
-지동설은 기원전 3세기에 아리스타코스에 의해서 이미 제안 되었었다. 그러나 학설 중의 하나였을 뿐 천동설이 틀리고 지동설이 옳다는 실험적 근거를 마련할 수 없었던 시기였기 때문에 아리스타코스의 이론은 훗날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에 밀려야 했다.
-17세기 레,훅,메이오에 의해 진전된 '대기로부터의 흡수를 통한 연소 이론'도 당시 관심을 끌지 못했다. 훗날 플로지스톤 이론에 위기 상황이 오고 라부아지에에 의한 산소 흡수 설이 나온 후에야 과거에 저런 이론이 있었다는 걸 상기하게 된다.
패러다임 전환은 기존 패러다임의 위기 상황에서만 일어난다는 얘기다. 위기 이전에 구상되는 이론은 설령 옳다고 해도 무시된다. 구 패러다임으로 모두 설명이 되는 현상들을 분석하여 만든 새 패러다임은 설령 옳은 이론이더라도 선택되지 않는다.

어느 개인이 데이터에 질서를 부여하여 새로운 패러다임을 어떻게 고안하는 가의 문제는 불가해하다고 쿤은 말한다. 그리고 거의 예외 없이 이 새로운 패러다임의 창출자는 아주 젊거나 그 분야를 새롭게 접하여 기존 패러다임에 사고방식이 고정되지 않은 사람이다.
또한 아인슈타인의 사고 실험이나 슈뢰딩거의 고양이 같은 분석적 사고 실험은 위기 시기에 나타나는 특징이다.

마침내 양립 불가능한 신 패러다임에 의해 구 패러다임은 부정된다. 이를 과학 혁명이라고 한다. 이전의 패러다임이 부정된다는 사실은 '학문은 검증된 지식을 착실히 쌓아 올라온 것'이라는 일반적인 이미지와 다르다. 왜 패러다임 혁명은 과거의 지식을 부정했다는 자취를 남기지 않을까?
뉴턴역학은 상대성이론의 특수한 경우로서 여전히 가치를 갖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종종 뉴턴역학이 부정되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곤 한다.
그런데 만약 뉴턴 역학이 부정된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이때의 뉴턴역학은 강체의 속도가 빛보다 느린 경우에 대해서만 한정되어 정립된 이론이라는 말이 된다. 그러나 패러다임은 아직 관측되지 않은 전방위의 현상에 대해 적용된다는 전제 하에 기능한다. 뉴턴 역학이 상대성 이론에 의해 부정 되었다고 하는 이유는, 상대성 이론 이전에 모든 과학자들이 뉴턴 역학은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물체에 대해서도 옳다고 생각 했기 때문이다.
이는 모든 종류의 구 패러다임에 적용된다. 관측되지 않은 현상은 예외라고 한다면 패러다임은 관측된 적 없는 사실에 대해 새로운 퍼즐을 제공할 수 없고 과학은 더 이상 연구를 할 수 없다.
심지어 패러다임은 전혀 다른 분야에 까지 보편 적용 되는 것으로 다루어지는 경향이 있다.
이때 패러다임의 영향성은 해당 과학 뿐 아니라 세계를 보는 관점 자체를 바꾼다.
뉴턴 역학이 상대성 이론에 의해 부정된 이후에도 마치 부정된 적 없이 처음부터 '상대성 이론의 특수한 경우'로서의 가치를 갖고 탐구된 것처럼 보이듯이, 과학 혁명은 많은 경우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패러다임 전환이 한번 이루어지고 나면 모든 교과서가 새로운 패러다임에 의해 쓰이기 때문이다.
또한 과학의 '검증된 새로운 지식의 축적적 발전'이라는 이미지는 대다수의 학자가 normal science의 퍼즐 풀이 과정에 종사하고 패러다임 전환에 참여하는 인원은 극소수이기 때문이다.

과학 혁명이 지나가면 과학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가지고 또다시 normal science로서 기능한다.
과학은 여타 학문에 비해 '지속적인 발전'이라는 특징을 갖는다.
과학의 방법론은 어떻게 해서 그렇게 지속적 발전을 이루는가?
'패러다임 장악으로서 normal science가 되고 나면 normal science 중에는 퍼즐 풀이를 통해 축적적인 발전을 한다. 그러다가 패러다임 전환이 오면 과거의 패러다임이 부정 되는데, 이때 패러다임 간의 경쟁을 통해 구 패러다임을 이기고 새로운 것이 오는 것이므로 평가자들에게는 '발전'일 수 밖에 없는 것이 된다'고 쿤은 말한다. 그래서 '특정한 지고의 생물에 접근하는 것이 아닌 단지 환경에 더 잘 적용했을 뿐인 진화가 발전으로 보이듯, 학문도 절대 진리에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단지 <발전으로 보일 수 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에 발전이다>'라고 말한다.
쿤의 이 해석은 탐탁치 않게 보인다.

Posted by 노크노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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