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버랜드를 갔다.
아이들과 아내랑은 처음이었다.
수십년전 기억들이 났다.
간판만 남은 헬리바이크는 국민학생때 아버지랑 탄 적이 있다. 놀이기구 보단 운동기구에 가까운 모노레일 바이크를 힘들게 저어가던 아버지는 회전 구간에서 차체가 레일 밖으로 나가버릴 듯한 풍경에 크게 소리 질렀었다.
22년전에 소개팅한 여자애와 아마존 익스프레스 탔던 기억이 났다.
신입생으로 들어온 똑똑하고 예쁘고 착한 애를 동문 후배 통해 소개받았다. 한두번인가 만나고 둘이 에버랜드에 갔다.
비오는 날이었다.
그 애가 우산 안가져왔다고 해서 내가 가져온 우산 한개를 같이 쓰고 비오는 에버랜드를 거닐었다.
예쁜 애랑 작은 우산 하나 같이 쓰고 꼭 붙어서 다니는 게 좋았다.
어차피 젖은 거 아마존을 탔다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완전히 젖었다. 나오는 길에 옷 말리는 대형 선풍기가 있었다. 초여름 경이었는지 춥지는 않았다. 옷 말리는 동안 내 젖은 얼굴을 닦아주려고 그 애가 손수건을 꺼내느라 핸드백을 여는데 안에 접는 우산이 들어 있는 게 보였다. 못본척 했다. 그 애가 "비오는 날도 좋네요"라고 했다. 그린라이트 -그땐 그런 표현 없었지만- 에 기분이 좋았다.
사귐까진 이어지지 않았다. 몇번인가 만나다 깨끗하게 이별했다.
그로부터 한두해 지나 지금 아내를 만났을 땐 여전히 어릴때라 요소요소에서 징징징 지극히 찌질했는데
그 애랑은 지금 돌아봐도 잘 만나다 잘 헤어진 것 같다.
사랑이라서 찌질했고 사랑이 아니라서 깔끔했지만 그렇더라도 풋풋한 시절의 기억은 좋다.
수십년 만에 온 에버랜드에서 어린 시절 그린라이트가 깜빡깜빡 들어왔던 그 썸이 기억났다.
아이들 노는 동안 줄 밖에서 아내와 있는데
아내가 아이들이 커가는 게 너무 아쉽다며 셋째 갖고 싶다는 얘기를 했다.
과거에 가 있던 마음이 그 말에 미래로 롤러코스터를 탔다가 급히 현재로 돌아왔다. 셋째는 힘들것 같아. 롤러코스터 아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