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2병이라는 말 자체가 일본에서 건너온 걸로 알고 있다.
그런데 이젠 일본에선 대2병이 비웃음 거리라고 한다.
이하는 일명 대2병의 특징이다.
-카페 분위기를 좋아한다.
-미술관을 들락거리기를 좋아하지만 미술은 잘 모른다.
-SNS등에서 사회문제등 거대 테마에 대한 주장을 하며 의식있는 사람인 척한다.
-시인이 된다
-하루키 등의 감성적인 문학에 빠진다
-고작 몇살 차이 안나는 고등학생을 두고 젊다는 표현을 쓴다
-수첩을 보며 스케줄 관리를 열심히 한다.
중2병을 비웃는 분위기에 이어 대2병을 비웃는 농담이 유행한다는 걸로 봐서
일본은 미숙한 열정을 비웃는 분위기인가보다.
그런데 이건 그 사회가 열정이 성과를 내지 못하는 불행한 사회라는 의미다.
중2건 대2건 그 사이의 고교시절 사춘기건, 본질은 같다.
숙련되지 않았으나 에너지 넘치는 열정으로 가치를 찾는 시기.
열정은 이리 저리 뻗어나가는 힘이다. 많은 방향으로 뻗치고 그러면서 의미 있는 것을 찾아낸다.
그러다 '내가 찾은 의미는 이거다' 하는 것이 나오면 그때가서 널려놓았던 문어발을 거두어 들이고 그 가치에 몰두한다.
열정이 시에 뻗을 수 있다. 미숙한 시인이 된다.
열정이 문학에 뻗을 수 있다. 미숙한 문인이 된다.
열정이 사회현상에 뻗을 수 있다. 역시 지나고 보면 미숙한 열정으로 남는다.
지나고 보면 이 의미를 찾는 활동은 하나같이 미숙하고 그래서 낯부끄럽다.
그런데 그걸 비웃는 사람은 그 존재 자체가 부끄럽다.
그동안 너는 무엇을 찾았는고?
가치를 찾는 미숙한 열정이 성과를 내는 모습이 보이면
그 사회에선 미숙한 열정이 비웃음 거리가 되지 않는다.
수영을 하는 사람이 있는 사회에서는 수영 못하는 사람이 수영 초보가 아푸아푸 거리는 모습을 비웃지 못하는 것과 같다.
즉 일본에서 미숙한 열정이 비웃음 거리가 되는 분위기가 있다는 것은
그 사회에서 열정이 성과를 거두는 모습을 거의 볼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너는 무엇을 찾았는고?' 라는 질문에 '어차피 아무도 아무것도 찾지 못했잖아. 나는 미숙한 모습이나마 보이지 않았으니 내가 낫지'라고 말한다는 것을 뜻한다.
가치를 찾는 열정이 성과를 내지 못하는 사회는 불행하다.
욕망은 순간적인 충동과 장기적인 꿈으로 구분 가능한데,
충동을 달성하여 얻는 행복감은 순간 치솟았다가 단시간 안에 급격히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 버리는 특징을 보인다.
즉 충동 충족은 인생의 행복도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
그래서 행복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거의 전적으로 '가치를 찾고, 꿈을 꾸고, 그것을 추구하는' 것에 의해 좌우된다.
그런데 이 활동이 거의 대부분 실패하는 사회가 있다고 한다면 그 사회는 행복도가 낮을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중2병'이니 '대2병'이니 하며 미숙한 열정이 비웃음 거리인 일본은 상당히 불행한 사회일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그런데 사실 여기까지 오면 이미 추정이 아니다.
생존을 보장하는 경제수준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행복도는 특이할 정도로 낮은 사회라고, 각종 조사 결과가 말하고 있다.
아장아장 미숙한 걸음걸이를 남기지 않기 위해선 걸음마를 떼지 않는 것 밖에는 도리가 없다.
아기의 걸음마를 가장 비웃는 사람이 누구냐면, 4살바기다.
걸음마 뗀 아이에게 뒤뚱거리는 아기 동영상 보여주면 '깔깔깔 걸음마도 못해서 넘어져 바보 ㅎ깔깔깔' 하고 너무 재밌어 한다.
그나마 4살바기가 4살바기의 마음으로 웃은거라면 깜찍한건데
서른 네살바기가 4살바기의 마음으로 비웃는 것이기라도 하는 날엔 끔찍한게 된다.
나잇살 먹고 미숙한 열정을 비웃으면 끔찍한 사람이 된다.
미숙을 비웃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이 나이까지 많아버리면,
그건 이룬 것 없이 공허하고 불행한 인생을 자백하는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젠 일본에선 대2병이 비웃음 거리라고 한다.
이하는 일명 대2병의 특징이다.
-카페 분위기를 좋아한다.
-미술관을 들락거리기를 좋아하지만 미술은 잘 모른다.
-SNS등에서 사회문제등 거대 테마에 대한 주장을 하며 의식있는 사람인 척한다.
-시인이 된다
-하루키 등의 감성적인 문학에 빠진다
-고작 몇살 차이 안나는 고등학생을 두고 젊다는 표현을 쓴다
-수첩을 보며 스케줄 관리를 열심히 한다.
중2병을 비웃는 분위기에 이어 대2병을 비웃는 농담이 유행한다는 걸로 봐서
일본은 미숙한 열정을 비웃는 분위기인가보다.
그런데 이건 그 사회가 열정이 성과를 내지 못하는 불행한 사회라는 의미다.
중2건 대2건 그 사이의 고교시절 사춘기건, 본질은 같다.
숙련되지 않았으나 에너지 넘치는 열정으로 가치를 찾는 시기.
열정은 이리 저리 뻗어나가는 힘이다. 많은 방향으로 뻗치고 그러면서 의미 있는 것을 찾아낸다.
그러다 '내가 찾은 의미는 이거다' 하는 것이 나오면 그때가서 널려놓았던 문어발을 거두어 들이고 그 가치에 몰두한다.
열정이 시에 뻗을 수 있다. 미숙한 시인이 된다.
열정이 문학에 뻗을 수 있다. 미숙한 문인이 된다.
열정이 사회현상에 뻗을 수 있다. 역시 지나고 보면 미숙한 열정으로 남는다.
지나고 보면 이 의미를 찾는 활동은 하나같이 미숙하고 그래서 낯부끄럽다.
그런데 그걸 비웃는 사람은 그 존재 자체가 부끄럽다.
그동안 너는 무엇을 찾았는고?
가치를 찾는 미숙한 열정이 성과를 내는 모습이 보이면
그 사회에선 미숙한 열정이 비웃음 거리가 되지 않는다.
수영을 하는 사람이 있는 사회에서는 수영 못하는 사람이 수영 초보가 아푸아푸 거리는 모습을 비웃지 못하는 것과 같다.
즉 일본에서 미숙한 열정이 비웃음 거리가 되는 분위기가 있다는 것은
그 사회에서 열정이 성과를 거두는 모습을 거의 볼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너는 무엇을 찾았는고?' 라는 질문에 '어차피 아무도 아무것도 찾지 못했잖아. 나는 미숙한 모습이나마 보이지 않았으니 내가 낫지'라고 말한다는 것을 뜻한다.
가치를 찾는 열정이 성과를 내지 못하는 사회는 불행하다.
욕망은 순간적인 충동과 장기적인 꿈으로 구분 가능한데,
충동을 달성하여 얻는 행복감은 순간 치솟았다가 단시간 안에 급격히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 버리는 특징을 보인다.
즉 충동 충족은 인생의 행복도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
그래서 행복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거의 전적으로 '가치를 찾고, 꿈을 꾸고, 그것을 추구하는' 것에 의해 좌우된다.
그런데 이 활동이 거의 대부분 실패하는 사회가 있다고 한다면 그 사회는 행복도가 낮을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중2병'이니 '대2병'이니 하며 미숙한 열정이 비웃음 거리인 일본은 상당히 불행한 사회일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그런데 사실 여기까지 오면 이미 추정이 아니다.
생존을 보장하는 경제수준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행복도는 특이할 정도로 낮은 사회라고, 각종 조사 결과가 말하고 있다.
아장아장 미숙한 걸음걸이를 남기지 않기 위해선 걸음마를 떼지 않는 것 밖에는 도리가 없다.
아기의 걸음마를 가장 비웃는 사람이 누구냐면, 4살바기다.
걸음마 뗀 아이에게 뒤뚱거리는 아기 동영상 보여주면 '깔깔깔 걸음마도 못해서 넘어져 바보 ㅎ깔깔깔' 하고 너무 재밌어 한다.
그나마 4살바기가 4살바기의 마음으로 웃은거라면 깜찍한건데
서른 네살바기가 4살바기의 마음으로 비웃는 것이기라도 하는 날엔 끔찍한게 된다.
나잇살 먹고 미숙한 열정을 비웃으면 끔찍한 사람이 된다.
미숙을 비웃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이 나이까지 많아버리면,
그건 이룬 것 없이 공허하고 불행한 인생을 자백하는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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