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가 있는 사람들 간에 교육에 대한 문제는 특히 민감하다.
바야흐로 2차전인가.
부모가 공부를 잘 했으면 자녀가 공부를 잘할까?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저학력자 부모를 둔 천재 자녀'의 사례가 적지 않고
'고소득 전문직인데 자기 주위 전문직들 자녀들중 인서울 대학도 드물다'라는 증언도 종종 들린다.
하지만 논지를 분명히 해보면 정답은 상식으로 잘 알려진 문제다.
논지는, '지능이 유전되는가'/'성공이 선천팩터로 좌우되는가'이다.
정답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 지능은 유전된다. 그 구속력은 양친이 다 클 때 자녀가 클 확률 정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소수의 격세유전이 있을뿐이다.
- 성과는 선천 팩터만으로 좌우되지 않는다. 후천 팩터(교육, 노력, 운)에 크게 좌우된다.
여기서 성과란 공부 성적~사회적 성공까지 모든 성과를 의미한다.
위 두 참인 명제하에서 '성공한 양친 아래 무능한 자식 많더라'는 말도 참이 되고 (양친의 성공이 후천 요인으로 인한 것일 경우와 자식의 무능이 역시 후천 요인으로 인한 것일 경우 발생)
'양친 머리 좋으면 자녀 머리 좋더라'라는 말도 참이 된다.
그러나 이건 이쪽도 저쪽도 다 옳다는 어중간한 말은 아니다.
가령 '공부는 타고나는 건데(후천 팩터 무시) 머리는 부모 안 닮는다(유전 부정)' 라고 하면 전혀 틀리다.
후천 팩터는 크게 세가지다.
-당사자의 몫인 노력
-타인의 몫인 교육
-하늘의 몫인 운
이중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은 교육이다.
자식이 공부를 잘 하게 하려면 어떤 교육을 해야 할까?
그래서 내 자녀를 위한 학습력 강화 훈련 커리큘럼을 짜봤다.
학습력의 본질은 '배운 것을/이해해서/내면화하고/써먹는 능력'이다.
각각 집중/이해/사고/응용력으로 불린다.
최초의 훈련은 어린아이때 자체적으로 시작하기 마련이다.
어린아이의 '왜?' 연발은 학습 능력의 기초 훈련이며
성심껏 답해주는 것은 강력한 훈련이 될 것이다.
이 과정에는 집중해서 관찰하고-현상을 이해하고-생각해서-응용하는 과정이 모두 담겨 있다.
더 정형화된 훈련으로는 아이와 같은 책을 읽고 책에 대한 얘기를 나누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걔는 왜 그랬는데?','아이 잘했다'
아이가 어릴 경우 이런 대화를 나누는데 필요한건 부모의 특별히 뛰어난 지성이나 금력이 아니라 단지 관심인게 보통이다. 독서 토론의 훈련법은 아이가 부모의 지성을 추월하는 때까지 범용적으로 사용 가능하다.
다음으로는 도서관에 같이 가서 '주제선정-자료수집-학습-결과도출-다음 주제선정'의 연쇄과정을 가르쳐줄 수 있다면 최선의 교육일 것이다. 이건 학문의 방법과 배우는 즐거움을 가르쳐주는 것이며, 이때 이미 인생관 전수 규모의 훈련이 된다.
(이건 내겐 인생관 전수의 로망 같은 거다. 학이시습지 불역열호야.
공자가 제시한 최선의 인간상은 '완성된 상태'라기 보다는 '호학자=학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공자의 '배움'이 초월적 가치에 이르는 길을 의미하기 때문에
'호학자'는 '초월적 가치 추구에서 인간으로서의 즐거움을 찾는 사람'이라는 뜻이며
이는 자연히 불교적 가르침에 합치된다.)
이상이 학습력 강화훈련에서 인생관 전수까지의 로드맵 개괄이다.
'배운 것을/이해해서/내면화하고/써먹는 능력'의 강화를 모토로 해서 다른 훈련법들은 좀 더 생각해볼 수는 있겠다.
현재 한국의 대세는 사교육투자 보습학원 뺑뺑이다.
무의미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 학원 경험은 일천하지만 십수년전에 학원 수업에 들어갔던 경험은 이랬다.
강사가 안 졸릴 말을 하며 진도를 대충 훌훌 넘어가다가
"자 여기서, 밑줄 쫙, 따봉~공식!" 외치면서 외워야 할 것들을 알려주더라.
쇼킹했다. 맥락을 무시한 단편 지식화 교육이라...
그때로부터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강의법이 크게 바뀌었으리라고는 생각치 않는다.
학습력의 본질을 훈련하는 것은 그 효과가 장기적인 관점에서야 드러나는 것이고,
그래서 오늘의 성적이 다음달 재계약을 결정하는 사교육(그 본질은 장기적인 책임을 지지 않는 '남'이 하는 교육)은 학습력보다는 단기 성과에 촛점을 맞출 수 밖에 없다.
그래서 학원은 최소 암기로 최대 효과를 내는 암기포인트를 찍어주는 곳이 될 터이다.
이런 곳에 익숙한 아이일수록 자력으로 학습력을 키우지 못하므로 미래는 없고
그래서 이들에겐 학습력을 키운 학생들의 '교과서 중심으로 공부했다'는 당연한 말이 신화가 된다. 교과서는 결코 맥락을 무시한 단편 지식의 암기로 구성될 수 없으니까.
(교과서를 학원 수업처럼 못 쓰는 이유는 애초에 맥락을 무시한 단편 암기로 교육한다는게 얼토당토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이게 '올바른 교육법은 돈으로 결코 살 수 없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설령 올바른 교육법을 따르는 사교육이 있다 한들 그 비용이 월 일이백 하는 정도는 아닐거다. 단편 암기 방식처럼 다수명을 상대로 가르치긴 어려운 방식이니까.
'부모가 공부를 잘 했으면 자녀가 공부를 잘할까?'에서 시작해서 여기까지 왔다.
요는 이렇다.
선천팩터는 랜덤이 아니다. 양친의 유전되는 형질은 높은 구속력을 가지고 유전된다.
후천팩터는 랜덤이 아니다. 학습력을 높이는 교육법은 존재한다.
랜덤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운 정도다. (그런데 운칠기삼)
여기서 말할 수 있는 것은 '기여도가 높은가 낮은가, 확률이 높은가 낮은가' 정도이고
관심 있는 것은 '내 자식은 공부를 잘할까? 사회적으로 성공할까?'이니
정작 관심 있는 것의 답은 확신할 수 없다.
이는 단지 시간이 말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