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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크 노트/처세 기술'에 해당되는 글 9건

  1. 2014.09.25 기다림의 의미 1
  2. 2014.09.22 기본 자세/태도 10
  3. 2014.09.11 숙달된 기술, 허를 찌르는 전략 1
  4. 2014.08.29 정치에 대하여 3
  5. 2014.02.10 생각의 정형화
  6. 2014.01.10 위엄과 인내
  7. 2013.07.19 고부갈등 소고 3
  8. 2012.10.31 불편한 사람과 친하게 지내는 방법
  9. 2012.09.24 기억은 감정과 연계되어있다. 3
얼마전에 썼던 웹툰 송곳 리뷰( http://longlive.tistory.com/m/post/599 )에서 강한 자에게 공격받았을 때 '기다리라'는 조언이 옳다고 썼습니다.
'뭘 기다리라는 거냐' 라는 반박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기다린다'라는 것의 의미를 생각해봅시다.

세상에 내 적과 나만 있는 게 아닙니다.
나보다 강한 그도 나만 팰 수 없고 수많은 이해관계가 얽힌 수많은 사람들을 계속 상대해야 합니다.
내 적 입장에서 가장 좋은 건 자기에게 반대하는 사람을 추려내서 하나씩 끝장내서 치워버리는 겁니다.
강자를 상대로 나도 공격하겠다고 한대 치면
적의 입장에선 주먹 같지도 않은 주먹 웃으며 한대 맞아주고 (13화에 상대방이 잽 맞을때 웃고 있죠?) 때려눕히면 깔끔하게 정리됩니다.
적의 관점에서 보면 수지 맞는 교환이죠. '타격 없는 잽 한대 맞아주고 확실한 적을 청소 및 실력 과시'

그런데 가드 올리고 기다리면 그는 나를 제거하지 않아요. 제거하지 않는게 아니라 제거하지 못해요.
왜냐면 그의 주위에 나같은 사람을 다 제거하려면 엄청나게 많은 사람을 제거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기다린다는 것은 첫째로 배경에 섞여들어 은신한다는 효과를 냅니다.

게다가 가드 올리고 버티면서 기다리고 있다 보면, 공격하려고 신경을 집중 할 때엔 '내 적'에게만 꽂혀있던 시선이 그 이외의 주위 사람들도 볼 수 있게 됩니다.
주위 사람들의 역학관계가 보이면 그들을 움직일 여지가 생겨납니다.
즉 기다린다는 것은 둘째로 빠르게 냉정을 되찾고 시야를 넓게 가져서 배경을 이용할 수 있도록 파악한다는 효과를 갖습니다.

여러 사람의 힘을 움직이는 건 내 힘 1, 설령 세배 유능해서 3이라 쳐도 그걸 얹는 것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강한 회사도 전투력 백만짜리 프리더 한명이 있어서 강한 게 아닙니다. 단독자의 힘이란게 사회적인 힘에 비하면 대단한 게 아니다 보니 강한 힘은 결국 단독자의 힘이 아니라 사회적인 힘입니다. 사회적인 힘이란 게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안팍의 많은 힘이 이해관계가 잘 맞아 돌아갈 때 강한 힘으로 모이는 거기 때문에 틈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틈이 있는 내면을 모르는 입장에서 보면 '나보다만 강하면 무한대로 강한 것'처럼 느껴져서 자포자기하고 '어떻게 해도 안된다면 그 별거 아닌 잽이라도 날리는게 최선'이라고 생각하게 되어서
솜주먹 날린 후에 그 웃으면서 맞아줄 잽을 두고 '굉장한 한방이었어'라고 부풀려 생각하게 되지만
나보다 강한 적도 무한대로 강한 건 아니고 다 빈틈이 있습니다.
허점이 진짜 하나도 없으면 그야말로 무한대로 강한거게요.

'기다린다'는 것은
1.배경에 섞여들어가서 타겟이 되는 것을 피하고
2.배경의 역학 관계를 파악해서
3. 배경의 힘을 이용해서 적을 쓰러트리기 위한 방법을 뜻합니다.
곰에 맞서 싸워 때려잡지는 못하는 사람도 배경의 나무 틈에 잘 숨고 주위의 산과 돌을 잘 파악해서 이용하면 곰을 잡을 수 있는 것 처럼 말이죠.
이때 3번을 위한 '기다리다'의 또다른 효과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타이밍의 문제입니다.
타이밍을 맞추는 건 항상 중요합니다.
타이밍을 맞춘다는 건 좋은 시점을 내가 선택한다는 건데, 이것에 유리해지기 위한 두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순발력을 개발해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시간을 빠른 쪽으로 확장하는 겁니다.
순발력이 있어서 0.1초부터 선택권이 시작되는 사람은 순발력이 별로라서 5초부터 선택권이 시작되는 사람보다 유리하지요.
또다른 방법이 있습니다. 기다려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시간을 느린 쪽으로 확장하는 겁니다. 안좋은 타이밍에 솜주먹을 날리는 것보다 훨씬 유리한 타이밍을 잡을 수 있고, 순발력 차이로 확보할 수 있는게 몇 초인데 비해서 훨씬 더 넓은 선택지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기다린다는 건 셋째로 좋은 타이밍을 잡는다는 효과를 갖습니다.

처음엔 은신하는 것에도 서툴러서 배경으로 피신하기까지 긴 시간 공격받을 겁니다.
냉정을 되찾고 주위를 파악하는 능력도 미숙해서 잘 되지 않을 것이고
좋은 타이밍을 잡는 능력도 미숙해서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게 될 겁니다.
하지만 배경에 은신하는 능력이 발달할수록 적에게 공격받는 시간은 잠깐으로 짧아집니다.
주위 배경의 역학 관계를 파악하는 능력이 개발되면 개발될수록
또 좋은 타이밍을 잡는 능력이 개발되면 될수록
하염없이 기다리지 않아도 충분히 좋은 타이밍을 잡아 해결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기다리는 것은 단지 수동적으로 굴복하는 것을 미화하는 말이 아닙니다. 무턱대고 기다리는 게 아니라, 적의 레이더에서 벗어나고, 냉정을 되찾아 시야를 넓게 갖고, 좋은 타이밍을 잡기 위해 기다리는 겁니다.
기다리는 것은 정치적으로 이기는 방법의 기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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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노크노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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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longlive.tistory.com/m/post/612 에서 이어짐.

살아가며 만나게 되는 문제들은 다양한 형태를 갖고, 그렇기에 각 문제의 해결 전략들도 다양한 형태를 갖는다.
그런데 그 다양한 문제들을 분류해보면 서로 비슷한 패턴을 갖는 것들이 많다. 가령 정치적 문제는 사람을 상대하는 문제이기에 유사한 패턴을 갖는다. 문제가 세부적으로는 각각 다르면서도 큰 형태에서 유사한 패턴을 갖기 때문에 이 문제들을 대하는 전략들도 큰 형태에서는 공통된 패턴을 갖게 된다.
이때 개별 문제에 대한 개별 전략들의 공통이 되는 패턴이 바로 그 문제들을 대하는 기본 자세/태도가 된다.

A라는 사람을 대하는 대인 전략과 B라는 사람을 대하는 대인 전략은 세부로 들어가면 서로 다르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을 대하는 대인 전략의 공통이 되는 부분이 모여서 겸손한 자세 라든지 당당한 태도 라든지 하는 기본 태도를 만든다. 이는 예시로 든 정치적 문제만이 아니라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대하는 태도에서부터 인생을 대하는 좋은 태도에 이르기까지 살아가며 만나게 되는 모든 문제에 해당한다.

개별전략들은 개별 문제를 맞이한 다음에나 짤 수 있기 때문에 사전에 준비할 수 있는 것은 태도이다. 좋은 전략을 마련하고자 한다면 본격적으로 문제를 대면하기 전에 평소 노력해야 할 지점은 좋은 태도를 파악해서 익혀놓는 것이다.

정치술을 연구하고 있다. 좋은 태도를 파악해서 익히는 것이 현재 해야 할 바이다.
무엇이 정치적으로 좋은 태도인지 생각할 차례이다.

('거의 모든 것의 경제학'을 흝어보다가 '좋은 태도는 전략에 우선한다'라는 부분을 읽고 내 방식대로 해석한 것을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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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노크노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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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림사에 둔재가 하나 있었다.
십년이 지나도록 기본 훈련을 벗어나지 못해서 십년째 충권 (지르기) 하나 밖에는 배우지 못했다.
하루는 후배들이 그를 두고 비웃었는데, 사부가 그걸 보고는 비웃던 후배들과 그 둔재를 대련시켰다.
후배들은 이런 저런 화려한 기술을 써가며 달려들었으나 둔재는 충권 단 하나만으로 그들 모두를 쓰러트렸다.
(전에 어느 만화책에서 본 것으로 내용이 다소 다를 수 있다.)

- 실전에서 효과적인 것은 다양한 기술이 아니라 무한 반복으로 연마한 하나의 기술이다.
상대가 정권지르기 하나뿐이라는 걸 알아도 막을 능력이 안되면 다 뚫린다.
그래서 하나의 기술을 연마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을 이긴다.
하나를 깊이 연마하는 것은 드라마틱한 효과를 낸다.
'~~를 책으로 배웠습니다'가 통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고, 연습이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람을 상대하는 기술이 되면 또 하나의 면이 존재한다.
- 상대방이 예상하지 못하는 허를 찔러야 한다.
소림사 둔재의 이야기처럼 서로 기량차가 나면 알아도 못막는다.
문제는 중요한 대결일수록 서로 엇비슷한 사이에서 겨루게 된다는 점이다.
서로 자기 수를 연마한 수준의 사람들끼리는 상대의 허를 찔러서 자기 수를 더 효율적으로 꽂아 넣는 쪽이 이긴다.

연마 숙달한 하나의 기술과 상대의 허를 찌르는 전략, 이 두가지는 상충되는 면이 있다.
내가 준비할 수 있는 것은 한 두가지 뿐인데 상대의 예상을 피해 허를 찔러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 두가지 요소를 충족하기 위해 흔히 쓰이는 방법이 '내가 연마한 수가 무엇인지 상대방이 모르게 하고 나는 상대의 수를 아는 것'이다.
이때부터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정보전이 중요해진다.
하나의 기술을 연마하지도 않은 사람 간에선 별 의미가 없던 정보전이 (연마한 게 없어서 어떤 변덕을 부릴 지 선택지가 넓고, 어차피 어떤 선택을 하든 숙달된 한 수로 뚫을 수 있으므로 상대방의 선택보단 내 숙달이 중요하다) 각자 자기 수를 연마하는 어느 레벨을 넘어가면서 부터는 점점 더 중요해진다.

바꿔 말하면 처음 배우기 시작하는 입장에서는 통하는 기술 하나를 연마하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연애도 정치도 일상에서 접하는 것은 아마추어 간의 만남이지 프로패셔널한 고수와 경쟁할 일은 드물기도 하거니와, 만나도 피해가는 게 최선이고 충돌하면 어차피 못 이긴다.
정보전이 중요해지는 건 나중이다. 어설프게 다양한 기술을 익히는 것은 하나를 숙달하는 것보다 효과가 낮다.

연애술을 예로 들어보자.
연애술을 배우겠다고 다양한 기술을 섭렵하는 것은 실제론 아무 쓸모가 없다.
하지만 똑같은 코스 똑같은 데이트를 하는 소개팅을 반복하고 또 반복하면, 물 흐르듯 능숙하고 감동적인 데이트를 만들어서 굉장한 효과를 낸다.
그렇지만 상대방이 이 감동적인 데이트가 '여자 꼬시는 코스'라는 걸 알아버리면 그 땐 감흥이 달라지기 마련이다.
서로 기량차가 나면 이게 준비된 재주라는 걸 알아도 넘어갈 수 밖에 없지만.

정치술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정치력을 발휘하는 모든 기술을 알아보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모든 기술을 다 익히는 사람도 없거니와 결국 통하는 건 잘하는 한 두가지를 숙달해서 활용하는 것이다.

나는 반복에 내성이 강해서 덜 지치며, 미묘한 발전을 감지해서 반복을 통해 심화하기에 강점을 갖는다.
그 강점을 살려 무엇을 익힐 것인가?
이는 태도에 대한 글로 이어진다. http://longlive.tistory.com/m/post/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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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노크노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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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학 서적을 읽기에 앞서 정치에 대해 내가 파악한 것을 일차적으로 정리해봤다.

정치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 하기 전에 먼저 슈퍼히어로물에 대한 얘기를 해보자.
최근 들어 슈퍼히어로물이 인기다. 나같은 사람이나 좋아하던 마이너 컨텐츠가 이젠 가장 메이저한 컨텐츠로 팔리고 있다. 사람들이 살기 힘들어져서 구원해줄 영웅을 찾는건가 싶다.

슈퍼히어로는 본질적으로 정치의 반대편에 있다.
정치는 비슷비슷한 힘을 가진 사람들끼리 만인대 만인의 투쟁을 하면서
자기 혼자 힘으로는 이겨나가기 어려울 때에
자신이 공격의 타겟이 되는 것을 피하면서 주위의 힘을 이용해서 자기 적을 이기기 위해 발생한다.
적과 아군이 유동적일수록, 그리고 구성원들의 힘이 엇비슷할수록
정치는 위력적인 수단이 된다.
현실에서 정치가 중요해지는 이유는 개인의 힘이 거기서 거기이기 때문이다.
강력한 한명이 고만고만한 열명을 못당해낼때엔 정치의 능력이 싸움의 능력보다도 큰 위력을 내지만,
다수의 평범한 사람으로 초능력자 한명을 못당해내는 세계에선 정치력보다도 강력한 싸움 능력이 관건이 된다.
슈퍼히어로는 다들 비슷비슷한 힘을 가진 사람들 틈에서 혼자 특별한 힘을 가지는 개인이다.
군경으로 잡을 수 없는 확실한 적인 슈퍼 빌런이 있고 그런 슈퍼 빌런을 슈퍼 히어로만이 잡을 수 있는 상황에서라면 정치는 쓰일 일이 없다. 그래서 과거의 슈퍼히어로물에서 정치가들은 '탁상공론을 늘어놓는 허수아비 같은 늙은이들'이었고,
히어로물은 히어로의 존재를 빌어 '말만 떠드는 걸로 대체 무엇을 할 수 있느냐'며 정치를 탁상공론으로 비하하곤 했다.

그런데 최근의 히어로물은 좀 분위기가 다르다.
웹툰 덴마를 봐도 그렇고 캡틴 아메리카 포함 어벤저스의 세계를 봐도 그렇고,
요즘 슈퍼히어로물에선 '돈과 정치력을 쥔 늙은이'들이 슈퍼 히어로 급 내지는 그 이상의 위상을 가지고 등장한다.
또한 악당 최종 보스도 강력한 전투력을 지니는 게 아니라 강력한 정치력을 쥐고 등장한다.
이건 독자와 작가를 포함해서 세상 사람들이 강력한 전투력을 가지고 전면에서 싸우는 놈보다도 강력한 정치력을 가지고 뒤에서 싸우는 놈이 더 무섭다는 걸 느낀 탓이 아닐까 생각한다.

정치의 본질은 무엇인가?
전면에서 전투력을 발휘해 싸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치는 이기기 위한 기술이다.
적도 될 수 있고 동지도 될 수 있는 고만고만한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이 공격의 타겟이 되는 것을 피하면서
적이 되었을 경우엔 주위와 힘을 합쳐서 계속해서 이기기 위한 기술이다.
정치 기술이란 전투 기술과 동급 선상에 있는 기술, 일종의 싸움 능력 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정치의 방법에 대해 생각해보자.
정치적으로 싸우는 것의 기본은 내가 적대할 사람을 줄이고 내 적이 적대할 사람을 늘리는 것이다.
전면에서 이기기 위해 싸우는 것과 정치적으로 싸우는 것은 방식이 다르다.
전면에서 싸울 때엔 상대를 제압해서 이겨야 한다. 무력다툼이라면 때려눕혀야 하고 전면에서 이기기 위한 말싸움이라면 논리적으로 논파하거나 기세로 찍어 눌러야한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싸울때는 지지만 않으면 된다.
정치적으로 이기기 위해서라면
앞에서 으르렁대며 싸우는 것보다도 중요한 게 '저 자가 무리한 짓을 하고 있다'라는 인식을 주위의 사람들에게 공유시키는 것이다.
무리한 짓이란 여러가지 의미를 갖는다. 도리나 권한을 벗어난 억지, 나쁜 짓, 이론상으론 옳지만 현실에 통하지 않을 답답한 짓 등.
이는 내 적에게 적대시할 사람을 늘리기 위함이다.
정면에서 싸우고 져서 그가 강자라는 인식을 유포하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다. 동정심을 자극받아 움직이는 사람보단 강자의 편에 서는 쪽을 택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지더라도 잘 지는게 중요하다는 말이 있는데, 피치못하게 적의 주장을 수용해야할 상황이 되더라도 내가 온 힘을 다해 싸우다 내 적이 강력해서 진게 아니라 내 적이 대단히 무리한 생떼를 고집한 것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그의 무리한 생떼에 맞서 주위 다른 여러사람들의 협조를 구하며 공동 전선을 짠다.
지지 않기 위한 방법으로 대표적인 것이 싸우지 않는 것이다. 정면으로 맞부딛쳐 싸우지 않으면 지지 않는다. 가령 언쟁을 회피한다든지 하는 것은 앞에서 지지 않고 정치적으로 이기기 위한 방법이다.
내가 지지는 않으나 그는 무리한 짓을 하는 생떼쟁이다 라는 인식을 유포하여 그의 적을 늘리면 그는 결국 힘의 차이를 느끼고 위협감을 느껴서 스스로 얌전해지거나, 혹은 내 쪽이 충분히 강해졌을때에 (내가 굳이 전면에서 싸우려하지 않아도.) 그 자를 상대로 일선에서 싸우고 싶어하는 사람이 나와서 그를 지게 만든다.

싸움의 기술은 다양하다.
일단 기본기로는 근력을 기르는 방법이 있고, 내 근력을 더욱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맨손 권법이 있는가 하면 또한 각종 무기를 다루는 기술이 있다. 언쟁에서 이기기 위한 기술도 전면에서 이기기 위한 싸움의 기술에 해당한다.
정치적으로 이기기 위한 기술도 마찬가지로 다양하다.
예를들면,
-기억은 선명한 증거에 지배된다. 지금 갈등에서의 적이 나중에 다른 갈등에선 이용가능한 힘이 될 수 있으므로 다툼의 흔적을 선명하게 남기는 것은 피하는 편이 좋다. 어차피 앞에서 싸우는 것이 정치적으로 이기는 데에 꼭 필요한 건 아니니 전면에서 많이 싸울 필요 없다.
-나보다 높은 사람을 다룰 때엔 그의 경쟁자를 미는 걸로써 몰아내는 것도 가능하다. 나보다 아랫사람을 다룰 때엔 저 방법이 역으로 나보다 아랫사람도 나를 공격할 수 있는 방법임을 유념하자.
-어떤 사람과 소통하는 채널이 달라지면 그에게 전달할 수 있는 메세지도 달라진다. 내 입장을 전하는 채널을 통해 얘기하면 그를 내 편으로 포섭하기 유리하다는 점이 크다. 공적인 문서만을 채널로 갖는 것에 비하면 대면하여 사적인 말 반/공적인 말 반 섞을 수 있는 채널을 통해 말하는 것이 그를 포섭하는 데에 훨씬 유용하다.
-어지간해선 한편이 되도록 만드는 평소의 친분이나 혈연등을 심어놓는 것도 (부당하지만) 정치적 방법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체급과 근력이 크게 차이나면 당해내기 어렵듯이 정치력에도 기본이 중요하다.
기본은 내 편을 늘리고 내 적을 줄이는 것이다.

요약하면 정치는 싸움의 기술이다.
평상시 : 내 편을 늘린다. 컨택할 수 있는 사람의 수와 컨택할 수 있는 채널을 늘려 놓는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후에 갈등이 있을 때 갈등 상대방을 뺀 채로 내가 어떤 사람을 만나 내 입장을 설명하는 것이 불편하지 않을' 관계로 만들고 유지한다.
다툼이 일어날 시 : 갈등의 대상을 정하고 그 대상과의 갈등에서 이기는 데에 힘이 되는 사람들을 파악하고 그가 내 편을 들도록 만들기 위해 정치 기술을 사용한다. 앞에서 이기려고 싸우기보다는 지지 않는 방식으로 싸우고, 저 자가 무리한 짓을 하는 자임을 부각시켜 주위에 보여준다. 주위를 포섭하는 데에는 특정 채널을 통해 내 입장을 설득하고 내 편이 될 사람들의 동의를 구하는 것이 더 유리하기 때문에 정면에서 적의 입장을 논파할 필요는 없다.

정치는 정정당당한 1:1의 힘 겨루기 대신 다수를 모으면 이긴다는 것을 이용하는 방식이다. '만인지적은 이만명 모아서 치면 이긴다'는 방식이기에 정정당당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인간 사회내에서는 모르면 위험할 정도로 대단히 강력한 기술임에 틀림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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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노크노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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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이 될수록 생각이 정형화 된다.
우리 아버지는 '중국집의 요리 솜씨는 우동 국물맛을 보면 알 수 있다'라고 생각한다.
짜장이나 짬뽕등의 다른 요리는 양념 맛으로 덮이지만 우동은 맑은 국물이라서 솜씨가 드러난다, 뭐 그런 류의 생각일거다.
완전히 의미없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굉장한 비결도 아닌,
한번쯤 들어 넘기기엔 참신하지만 계속 사용할 정도의 관점도 아닌 그럭저럭 옳은 말 정도의 생각.
그런데 이 생각이 점점 더 정형화되어 아버지 내적으로 마치 금언이나 격언 비슷한 것이 된 모양이다.
아버지를 오랜 시간을 두고 본 나는 아버지가 '중국집의 요리솜씨'를 들으면 '우동'을 떠올린다는 걸 안다.
그 순간에 아버지가 말을 꺼내면, 말을 채 시작하기도 전에 무슨 말을 할 것이라는 것을 안다.
이는 사고방식이 루틴화 되어 있다는 의미다.
입력에 대한 출력이 정형화되었기에 예측이 가능하다. 또한 이것이 반복되면 '뻔한 말'로 들리게 된다.

'아이들은 머리가 굳지 않아서 창의성이 좋다'고들 얘기하는데 같은 맥락이다.
아이들일수록 어떤 입력에 대한 생각이 어느 방향으로 나올지 덜 루틴화 되어 있기에 종종 예상을 크게 벗어나는 답을 내놓는다.
예상의 범주를 크게 벗어날 때의 느낌이 앞서의 '아이들은 머리가 굳지 않았다'는 평을 만든다.

생각이 굳었다는 평가나 뻔한 말로 들린다는 평가는 그것이 최선의 정답이 아니기 때문이다.
학습은 본래 루틴을 구축하는 것이다. 정형화 되더라도 최적화된 형태로 정형화 되었을 때엔 '학습이 잘 된' 것으로 평가된다.
'머리가 굳었다', '뻔한 말' 이런 부정적 평가는 최적이 아닌 상태로 정형화 되었음이 드러날 때에 나타나는 반응이다.

꽉막힌 어른이 되지 않겠다며 아이다움을 유지하려 하는 시도가 여럿 있었다.
이들의 방식은 '사고방식이 정형화되는 것을 최소화'하려는 형태로 이루어지곤 했다.
생각이 정형화 되는 것을 단순히 최소화 하려는 시도는
어차피 학습을 완전히 거부하고서는 살 수가 없기에 어떻게든 학습을 하기는 하는데
이때 별 구분없이 오로지 최소화만 하려고 하면 학습한 부분중에 오답의 비율은 똑같이 유지되는 결과를 만난다.
100을 학습하고 40을 오답으로 채워서 '꽉막힌 어른'이 되는 것을 개선하겠다고
10을 학습하는데 그중 4는 오답으로 채워지며 90은 학습하지 않는 형태다.
이러면 '어른의 정형화된 사고방식'의 단점만 줄어드는 게 아니라 장점까지 같이 줄어들게 된다.
이러면 결과적으로 철없는 어른이 된다. 젊은 척 하지만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어쩔 수 없이 꽉 막힌 부분이 드러나고, 어른 치고도 뭔가 부족하니 이도 저도 아니라서 딱히 더 낫다고 보기도 어려운 결과가 된다.

내가 추구하는 방향은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자'는 것이다.
내가 무엇을 알고 있고 무엇을 알지 못하는지를 구분하여
분명치 않은 것을 '알고 있다'여기면서 루틴화하는 것을 줄이는 것이다.
분명치 않은 것을 루틴화하면 할수록 생각이 굳었다는 평가를 받게 된다.
분명치 않은 것에 대해서는 모름을 인정할 것.
내가 모르는 것임을 알고 있을 때에 오답을 따라 루틴화된 사고를 하지 않고 다시 생각하게 된다.

내 입장에서 이 정도의 편파성은 문제되지 않는다고 관대해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
'나는 부유하니까 내 입장에서 부유한 쪽에 치우치게 말하더라도...'
'나는 감정적으로 화가 났으니까, ...'
모든 입장은 변하고 학습된 오답은 쌓인다.
내가 정말 알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모르지만 임기응변을 하고 있는 것인지 판단하여
모르는 것을 안다고 착각하는 경우를 적게 가져가는 것을 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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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적인 사람은 권위만 포기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수평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선 인내가 필요하다.

수평관계에서 사람들끼리 부데끼다보면 마찰로 인한 일종의 가해를 주고 받기 마련이다.

이런 종류의 부주의한 가해는 수평관계에서는 피치 못할 일이고, 

따라서 자기가 피해를 당하는 것을 인내할 수 없으면 수평적인 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할 수 없다.

자기가 받은 상처를 화내는 쪽으로 되갚으면 성격이 더러운 사람이 되고 

자기가 받은 상처로 인해 관계를 멀리하는 쪽을 택하면 꽁하는 사람이 될 뿐이다. 

수평적인 관계를 위해선 상처를 받더라도 마음에 두지 않아야 한다. 일종의 인내가 필요하다.


권위주의에 반발하여 싸우던 사람들은 이런 점을 놓치기 쉽다. 

수직관계에서의 위엄을 포기하는 것이 수평적인 사람이 되는 길이라는 것만 생각한 나머지 

자기가 받은 피해를 소화시켜버리는 것이 수평관계의 핵심이라는 점을 알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관계가 수직이냐 수평이냐 보다도 중요한 것은 관계가 안정적으로 원만할 수 있느냐다.

너무 수직적이어서 불만이 쌓이는 관계도 수평적이지만 수시로 버럭하거나 꽁하는 관계도 파탄이 나기는 매한가지다.

안정적이고 원만한 관계를 위해서는 위엄과 인내 사이에서의 균형이 필요하다.

위엄은 타인으로 하여금 그 사람에게 만큼은 부데끼는 것을 주의하게 만든다. 

차가 비상등을 켜서 충돌 위험을 줄이는 것처럼 위엄은 자기의 인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수평관계가 어느 정도 선인지 지표를 제시하는 것이 되어준다.

권위주의에 대한 반발로 자기 인내의 한계보다 우선하여 위엄을 포기해 버리면 경보 없이 충돌하는 일만 늘어나서 관계가 원만할 수 없다.


위엄을 갖추기 위해선 말을 너무 많이 해서는 안된다.

내가 하는 말이 옳을 확률이 높아야 타인이 내 의견에 반대하기가 어려워지고 그만큼 위엄을 지킬 수 있다.

열마디 해서 여섯번 맞는 것보다 두마디 해서 두마디 다 완전히 옳을 때가 위엄이 살고,

확실하고 중요한 것만 말할수록 위엄이 산다.

아랫사람과 정말 수평적으로 부데끼고도 불쾌해하지 않을 만큼의 인내가 없이 권위적인 사람이 되지 않겠다면서 말만 많아지면 관계가 불안해져서 결과적으로 성질 더럽고 주책맞은 사람이 될 뿐이다. 


나는 천성적으로 화를 내기 쉽고, 그렇다면 내가 수평적인 관계를 갖겠다고 위엄을 포기하는 것은 관계를 파탄으로 이끄는 길이 된다. 

(난 이걸 느끼면서부터 성질 더러움이 밖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줄어들었다. 이젠 착하다.)

따라서 나는 아랫사람, 특히 우리 아이에게 위엄을 지키도록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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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시어머니중에 나는 시어머니 노릇을 해야지 라고 생각했던 시어머니가 있을까?
난 고부갈등은 생활형 갈등이라고 생각한다.
막장드라마 바깥 세상의 흔한 고부갈등은 양쪽이 무슨 거한 욕심을 부려서 서로 충돌하는 게 아니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최소한의 바램끼리 부데껴서 갈등이 일어난다.
그래서 욕심을 줄인다고 해도 아예 사람답게 살 생각까지 포기하지 않는 한 갈등의 소지가 없어지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을 일년에 스무번 보는 게 큰 욕심 아닌데도 충분히 고부갈등의 소지가 된다.
며느리 입장에선 시어머니가 왠지 이유없이 나를 미워하고 불편하게 만드는 관계가 되는 경우엔 몇달에 한번을 봐도 그 날을 견디기 힘든게 사람 마음이다.

자식은 대체로 받아먹으며 사는 습관이 들어있고 대부분 무심하다.
자식이 '난 귀찮은 거 싫고 홀가분하게 살고 싶다'라는 마음으로 살다 보면
부모가 '이 정도로 욕심을 줄이면 되겠지' 하는 기대를 가볍게 뛰어넘기 일쑤다.
욕심을 줄이는 것 만으로 갈등의 소지를 없앤다는 건 그래서 비현실적이다.
욕심을 줄인들 '난 숨은 쉬지만 죽은 사람이려니 살거다'할 수 없지 않은가.
불행은 자연스래 원망을 낳는다. 그런데 원망이 쌓이면 그 미움이 자기 자식을 향하지 않는다. 이성적으로는 내 새끼가 잘못인줄 아는데 차마 미움은 내 자식에게 꽂지 못하겠다는 마음이 일어난다.
그럼 원망의 화살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방향을 뒤틀어서 다른 쪽을 향한다.
미운 내 자식 대신 욕먹어 줄 수 있는 대상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그러다 보면 할 도리 다 하고 있는 며느리를 미워할 꼬투리를 찾는다.
세상의 시어머니들은 처음엔 '나는 나중에 시어머니 노릇 안해야지'라고 생각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무심한 자식에게 '이건 해도 너무하잖아'라고 느끼며 원망을 쌓은 다음
원망의 화살을 차마 자기 자식에게는 못 쏘겠다면서 남의 자식을 겨눈다.

그런데 원망의 대상인 며느리가 잘한다고 내 자식이 무심한 불행이 해소되질 않는다.
며느리가 아무리 잘해도 불행이 해소되지 않으니 원망은 그대로고 그래서 미움의 화살도 그대로다.
고부 갈등은 시어머니와 며느리간의 갈등이지만 둘 사이의 조율로 해결되는 갈등이 아니다.
고부 갈등 해결의 요점은 부모를 불행하게 만들지 않는 것이다.
친자식이 부모에게 신경을 써야 부모가 행복해지고
부모가 행복해져야 내심에 원망이 안 쌓이며
그래야 원망의 화살을 겨눌 일도, 그 끝을 억지로 며느리에게 돌릴 일도 없어진다.

난 '효도는 셀프'라는 말을 싫어한다. 그 내심에 '난 귀찮은 거 싫고 홀가분하게 살고 싶다'라는 뉘앙스가 담겨 있고, 그 귀찮은 거 싫은 마음이 자식을 무심하게 만드는 제 1 원인이 되기 일쑤기 때문이다.
그러나 귀찮다는 뉘앙스를 제외하면 '친자식이 신경을 써야 부모 마음이 행복하다'라는 것은 맞다.
부모 마음에 서운함이 쌓이는지 아닌지 자식이 시시때때로 살피는 게 고부 갈등을 해소하는 방법이다.

며느리 입장에서는, 고부 갈등 난다고 무조건 멀리 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남편하고 시어머니 얼굴 보는 회수 제한을 협상하는 건 좋은 방법이 못된다.
시댁 불편해서 싫다고 한달에 한번, 두달에 한번, 이러면서 보는 횟수를 줄이고 멀리 하면 서운함과 미움이 압축되서 농도는 더 높아진다.
정말 불편한 사람은 한달에 한번 보는 것도 한달 내내 소름끼치는 반면 크게 불편하지 않은 사람은 매일 봐도 그냥 그렇다. 결국 고부갈등으로 대표되는 불편한 시댁 스트레스를 횟수로 타협봐서 줄여보려는 건 그리 도움이 안된다.
내가 시어머니랑 친해지고 잘하면 되지, 하고 굉장히 살갑게 대하는 며느리들도 있다. 난 이쪽도 쓸데없는 짓이라고 생각한다. 사근사근거리면 어른들이 좋아하기는 하는데, 아무리 사근사근 친하게 잘해봐야 막상 친자식이 무심하게 굴어서 부모 불행하게 하면 원망은 어쩔수 없이 생기고 그럼 그게 잘하는 며느리를 억울하게 한다. 핵심과 부수적인 것을 혼동해선 안된다.
핵심은 남편이 자기 부모 서운하지 않도록 하는 거다.
며느리가 직접 행동하는 게 아니지만 효과는 가장 좋다.
남자들이 결혼하면 효자가 된다고들 하는데
평소 효도 할 줄 모르던 사람이 마음만 효자되서는 아내 통해 효도하려고 귀찮게 군다고 보통 아내들이 남편 효자 되는 것 싫어한다고 한다.
아내 통해 효도하려고 드는 건 소용 없기 때문에 잘못이다.
그런데 효자되는 것 싫어하는 것도 잘 하는 게 아니다.
시부모 마음에 서운함이 쌓이는지 아닌지 남편이 시시때때로 살피도록 종종 트리거시키고
아내 통해 효도하는 것 소용 없으니 남편이 직접 자기 부모한테 얼굴 자주 비추도록 돕는게 가장 좋다.

부모가 서운함이 없으면 며느리가 좀 못해도 별로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
서운함이 쌓이고 나면 그 원망이 자식한테 향할까봐 대신 원망할 대상을 찾는다.
며느리가 잘하는게 중요한게 아니고 친자식이 신경쓰는게 중요하다. 만약 친자식이 못하고 있고 그 반발의 피해를 해결하고 싶다면 남편을 효자로 만드는 게 정답이다.

남자 입장에선, 자기 어머니가 난 시어머니 노릇 안할거라고 하시는 말씀에 의존할 생각 하지 않는게 좋다. 그건 욕심을 줄이겠다는 뜻인데 말했다시피 산 사람이 죽은 사람처럼 살 것도 아니고 욕심 줄이는 걸로 되는 게 아니다. 게다가 저런 말씀을 하는 어머니는 당신께서 과거에 시달렸던 경험을 가지고 하는 말씀이기 쉬운데, 갈등의 조율은 갈등 해결 잘하는 환경을 접하면서 배우는 것이라서 갈등 조율이 안되던 환경에서 살아오신 분들께는 오히려 갈등 조율 능력을 기대할 수 없다. 시달리던 며느리가 좋은 시어머니 되는 일은 오히려 드물다.
결국 자기 어머니가 난 시어머니 노릇 안하겠다고 하시는 걸 들었다면
어머니 마음에 한점 서운함 남기지 않을 효자가 되도록 본인이 환골탈태할 각오를 해야 하리라.

내 경우 마누라가 사근 사근 잘한다는 건 애초에 선택지에 없으므로
내가 어떻게 하면 마누라가 좋은 대우를 받을 것인가 자구책으로 찾은 방법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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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관계를 고민하는 사람에게 해준 조언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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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은 기억을 지배합니다. 

지금은 사소하지만 짜증나는 일의 목록을 적으셨잖아요,
그 사람이 잘해준 일들의 목록을 작성해보세요.
그걸 계속 늘려가세요.
얼마 안가서 '(짜증난다는 생각이 들었다가도) 에이 그래도 이만한 사람이 또 어디있나....' 라는 생각이 들게 될 겁니다.

여기에 '이 사람은 어떤 면이 훌륭한가'에 대해 누가 물어보면 바로 자랑할 수 있도록
자랑이라고 해서 과장하지말고 100% 사실에 기반해 구체적으로 분석해서 외워버리십쇼.
외우기 위해 유기적으로 연결하면 그 사람의 캐릭터에 대한 이해도도 같이 올라갑니다.
분석하면서 뿌듯한 느낌이 들 수도 있음.
님이 누구고 누구를 상대하든 반드시 효과있습니다.

첫번째 방법은 주관적으로 나한테 잘해준 경험 누적이고
두번째 방법은 객관적으로 훌륭한 점을 이해하는 건데
둘 다 병행하면 더욱 효과적입니다.

반대로 단점을 분석하여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일은 하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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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감정과 연계되어있다.
경험한 일은 기억이 난다. 그러나 경험한 모든 일이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어떤 일은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도 오감의 느낌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반면 
어떤 일은 방금 전에 내가 겪은 일인데도 전해들은 일처럼 막연하게만 떠오른다.
생생하게 기억나는 일과 남의 일처럼 막연하게 기억나는 일의 차이가 뭘까?
당시의 감정 상태를 지금도 느낀다면 그 감정을 매개로 해서 과거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자아동일성과 관계있는 문제다. 
보통은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가 동일한 존재임을 전제하고 차이를 찾는 쪽으로 생각하지만
이번엔 반대로 생각해보는 편이 설명이 쉽다.
과거의 나는 현재의 나와 기억과 인과를 공유하지만 엄밀히 다른 존재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는 반드시 차이를 갖으므로 기본적으로 다른 존재인데
감정의 연속성은 이 다른 존재들간의 동일성을 이어주는 매개체가 된다. 
내가 과거 어느 사건을 싫어했고 현재도 그 사건을 싫어하고 있다면 
싫어하는 나라는 측면에서 자아동일성이 이어진다. 
그리고 이 이론적인 설명은 실재로 기억의 선명함으로 나타난다.

아픔을 극복한 사람이란 
자기 아픔을 상대로 투쟁해서 이기고 올라선 사람이 아니라
자기 아픈 경험에 맺힌 감정이 없는 사람이다.
맺힌 감정이 없을 때 자아동일성은 깨진다. 
그리고 그 효과는 기억에 있어서도 나타난다. 
맺힌 감정이 없어지고 나면 내 일이었던 그 생생한 경험이 
마치 남의 일을 전해들은 것처럼 흐려진다.

아픔 없는 사람은 없다.
그 아픔은 신체적 약점일수도 있고 불우한 성장 배경일수도 있다. 

그런데 고난이 지나간 후에 그 충격을 흉터로 남기고 묻어둔 채 살아가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그때의 충격과 감정을 그대로 안고 그 충격에 대항해 싸워서 '극복'하려는 자세를 갖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나는 키가 작지만, 돈을 많이 벌어서 키를 커버해보이겠어'
'나에게 다정하지않고 폭력적이었던 쓰레기같은 부모의 영향을 벗어나 보이기 위해 공부할거야.' 
(이상의 예시들은 이 글을 작성한 당시에 인터넷 게시판에서 본 이야기들이다. 우리 부모님이 이 글을 보실 일은 없지만 그래도 혹시라도 부모님의 자식이 한순간이라도 저런 생각을 했다고 오해하시는 일이 있으면 안되므로 밝혀둔다.)
그러나 그 결과는 극복이 아니다. 자아 동일성이 유지되는 한 나이가 들고 비싼 옷을 걸쳐도 겉을 꾸미는 것이 될 뿐 본질은 양지를 부러워하던 그 시절의 어린 아이 그대로 바뀌지 않는다. 
진짜 극복은 현상을 받아들이는 형태로 온다.
'나는 키가 작지만, 그래도 돈을 많이 버니까 키 큰 사람을 이겨'가 아니라
'내 키 : 평균보다 작은 편.' -> 그리고 아무 생각 안난다.
객관적 사실만 남고 엮인 감정이 사라지고 나면 그와 연계된 기억도 남의 일을 전해들은 것처럼 흐려진다. 
기독교에서 '원수를 용서함으로써 치유를 얻는' 형태는 이것과 매우 닮아 있다. (불교식으론 12연기의 애-취를 끊어서 업으로 이어지는 인과를 단절하는 것일듯)
현재의 내가 원수를 더 이상 미워하지 않는다면 자아동일성이 깨진다.
그리고나면 원수가 내게 입힌 과거의 상처가 잊혀진다.
원수같은 부모에게 받은 가정교육의 영향을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를 아무리 재교육해도 
그 부모의 영향을 이겨내려 하는 한은 
싫어하는 모습에 민감해져서
결국 아무 타인에게서나 자기가 원수로 여기는 부모의 모습, 가령 위선을 느끼게 되고, 혹은 폭력성을 보게 되며, 인생 유전을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을 보게 된다.
자아동일성이 유지되는 한 기억은 수십년이 지나도 오감 한자락까지 생생하게 떠오르고 고통은 지속되며 결과적으로 영향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가장 중요한 극복은 과거를 수용하는 것이다.
'그러면 안되는데 그런 일이 일어났다. 과거를 바꾸고 싶다'라는 마음을
'그런 일이 일어났었다'로 인정하고
당시의 감정을 놓아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치유다.
감정이 바뀌면 자아동일성이 깨져서 문자 그대로 남의 일이 되기 때문이다.

* 여기서 중요한 건 감정이 바뀌면 자아동일성이 깨지면서 생생하던 기억이 흐려진다는 현상임에 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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