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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학 서적을 읽기에 앞서 정치에 대해 내가 파악한 것을 일차적으로 정리해봤다.

정치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 하기 전에 먼저 슈퍼히어로물에 대한 얘기를 해보자.
최근 들어 슈퍼히어로물이 인기다. 나같은 사람이나 좋아하던 마이너 컨텐츠가 이젠 가장 메이저한 컨텐츠로 팔리고 있다. 사람들이 살기 힘들어져서 구원해줄 영웅을 찾는건가 싶다.

슈퍼히어로는 본질적으로 정치의 반대편에 있다.
정치는 비슷비슷한 힘을 가진 사람들끼리 만인대 만인의 투쟁을 하면서
자기 혼자 힘으로는 이겨나가기 어려울 때에
자신이 공격의 타겟이 되는 것을 피하면서 주위의 힘을 이용해서 자기 적을 이기기 위해 발생한다.
적과 아군이 유동적일수록, 그리고 구성원들의 힘이 엇비슷할수록
정치는 위력적인 수단이 된다.
현실에서 정치가 중요해지는 이유는 개인의 힘이 거기서 거기이기 때문이다.
강력한 한명이 고만고만한 열명을 못당해낼때엔 정치의 능력이 싸움의 능력보다도 큰 위력을 내지만,
다수의 평범한 사람으로 초능력자 한명을 못당해내는 세계에선 정치력보다도 강력한 싸움 능력이 관건이 된다.
슈퍼히어로는 다들 비슷비슷한 힘을 가진 사람들 틈에서 혼자 특별한 힘을 가지는 개인이다.
군경으로 잡을 수 없는 확실한 적인 슈퍼 빌런이 있고 그런 슈퍼 빌런을 슈퍼 히어로만이 잡을 수 있는 상황에서라면 정치는 쓰일 일이 없다. 그래서 과거의 슈퍼히어로물에서 정치가들은 '탁상공론을 늘어놓는 허수아비 같은 늙은이들'이었고,
히어로물은 히어로의 존재를 빌어 '말만 떠드는 걸로 대체 무엇을 할 수 있느냐'며 정치를 탁상공론으로 비하하곤 했다.

그런데 최근의 히어로물은 좀 분위기가 다르다.
웹툰 덴마를 봐도 그렇고 캡틴 아메리카 포함 어벤저스의 세계를 봐도 그렇고,
요즘 슈퍼히어로물에선 '돈과 정치력을 쥔 늙은이'들이 슈퍼 히어로 급 내지는 그 이상의 위상을 가지고 등장한다.
또한 악당 최종 보스도 강력한 전투력을 지니는 게 아니라 강력한 정치력을 쥐고 등장한다.
이건 독자와 작가를 포함해서 세상 사람들이 강력한 전투력을 가지고 전면에서 싸우는 놈보다도 강력한 정치력을 가지고 뒤에서 싸우는 놈이 더 무섭다는 걸 느낀 탓이 아닐까 생각한다.

정치의 본질은 무엇인가?
전면에서 전투력을 발휘해 싸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치는 이기기 위한 기술이다.
적도 될 수 있고 동지도 될 수 있는 고만고만한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이 공격의 타겟이 되는 것을 피하면서
적이 되었을 경우엔 주위와 힘을 합쳐서 계속해서 이기기 위한 기술이다.
정치 기술이란 전투 기술과 동급 선상에 있는 기술, 일종의 싸움 능력 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정치의 방법에 대해 생각해보자.
정치적으로 싸우는 것의 기본은 내가 적대할 사람을 줄이고 내 적이 적대할 사람을 늘리는 것이다.
전면에서 이기기 위해 싸우는 것과 정치적으로 싸우는 것은 방식이 다르다.
전면에서 싸울 때엔 상대를 제압해서 이겨야 한다. 무력다툼이라면 때려눕혀야 하고 전면에서 이기기 위한 말싸움이라면 논리적으로 논파하거나 기세로 찍어 눌러야한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싸울때는 지지만 않으면 된다.
정치적으로 이기기 위해서라면
앞에서 으르렁대며 싸우는 것보다도 중요한 게 '저 자가 무리한 짓을 하고 있다'라는 인식을 주위의 사람들에게 공유시키는 것이다.
무리한 짓이란 여러가지 의미를 갖는다. 도리나 권한을 벗어난 억지, 나쁜 짓, 이론상으론 옳지만 현실에 통하지 않을 답답한 짓 등.
이는 내 적에게 적대시할 사람을 늘리기 위함이다.
정면에서 싸우고 져서 그가 강자라는 인식을 유포하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다. 동정심을 자극받아 움직이는 사람보단 강자의 편에 서는 쪽을 택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지더라도 잘 지는게 중요하다는 말이 있는데, 피치못하게 적의 주장을 수용해야할 상황이 되더라도 내가 온 힘을 다해 싸우다 내 적이 강력해서 진게 아니라 내 적이 대단히 무리한 생떼를 고집한 것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그의 무리한 생떼에 맞서 주위 다른 여러사람들의 협조를 구하며 공동 전선을 짠다.
지지 않기 위한 방법으로 대표적인 것이 싸우지 않는 것이다. 정면으로 맞부딛쳐 싸우지 않으면 지지 않는다. 가령 언쟁을 회피한다든지 하는 것은 앞에서 지지 않고 정치적으로 이기기 위한 방법이다.
내가 지지는 않으나 그는 무리한 짓을 하는 생떼쟁이다 라는 인식을 유포하여 그의 적을 늘리면 그는 결국 힘의 차이를 느끼고 위협감을 느껴서 스스로 얌전해지거나, 혹은 내 쪽이 충분히 강해졌을때에 (내가 굳이 전면에서 싸우려하지 않아도.) 그 자를 상대로 일선에서 싸우고 싶어하는 사람이 나와서 그를 지게 만든다.

싸움의 기술은 다양하다.
일단 기본기로는 근력을 기르는 방법이 있고, 내 근력을 더욱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맨손 권법이 있는가 하면 또한 각종 무기를 다루는 기술이 있다. 언쟁에서 이기기 위한 기술도 전면에서 이기기 위한 싸움의 기술에 해당한다.
정치적으로 이기기 위한 기술도 마찬가지로 다양하다.
예를들면,
-기억은 선명한 증거에 지배된다. 지금 갈등에서의 적이 나중에 다른 갈등에선 이용가능한 힘이 될 수 있으므로 다툼의 흔적을 선명하게 남기는 것은 피하는 편이 좋다. 어차피 앞에서 싸우는 것이 정치적으로 이기는 데에 꼭 필요한 건 아니니 전면에서 많이 싸울 필요 없다.
-나보다 높은 사람을 다룰 때엔 그의 경쟁자를 미는 걸로써 몰아내는 것도 가능하다. 나보다 아랫사람을 다룰 때엔 저 방법이 역으로 나보다 아랫사람도 나를 공격할 수 있는 방법임을 유념하자.
-어떤 사람과 소통하는 채널이 달라지면 그에게 전달할 수 있는 메세지도 달라진다. 내 입장을 전하는 채널을 통해 얘기하면 그를 내 편으로 포섭하기 유리하다는 점이 크다. 공적인 문서만을 채널로 갖는 것에 비하면 대면하여 사적인 말 반/공적인 말 반 섞을 수 있는 채널을 통해 말하는 것이 그를 포섭하는 데에 훨씬 유용하다.
-어지간해선 한편이 되도록 만드는 평소의 친분이나 혈연등을 심어놓는 것도 (부당하지만) 정치적 방법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체급과 근력이 크게 차이나면 당해내기 어렵듯이 정치력에도 기본이 중요하다.
기본은 내 편을 늘리고 내 적을 줄이는 것이다.

요약하면 정치는 싸움의 기술이다.
평상시 : 내 편을 늘린다. 컨택할 수 있는 사람의 수와 컨택할 수 있는 채널을 늘려 놓는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후에 갈등이 있을 때 갈등 상대방을 뺀 채로 내가 어떤 사람을 만나 내 입장을 설명하는 것이 불편하지 않을' 관계로 만들고 유지한다.
다툼이 일어날 시 : 갈등의 대상을 정하고 그 대상과의 갈등에서 이기는 데에 힘이 되는 사람들을 파악하고 그가 내 편을 들도록 만들기 위해 정치 기술을 사용한다. 앞에서 이기려고 싸우기보다는 지지 않는 방식으로 싸우고, 저 자가 무리한 짓을 하는 자임을 부각시켜 주위에 보여준다. 주위를 포섭하는 데에는 특정 채널을 통해 내 입장을 설득하고 내 편이 될 사람들의 동의를 구하는 것이 더 유리하기 때문에 정면에서 적의 입장을 논파할 필요는 없다.

정치는 정정당당한 1:1의 힘 겨루기 대신 다수를 모으면 이긴다는 것을 이용하는 방식이다. '만인지적은 이만명 모아서 치면 이긴다'는 방식이기에 정정당당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인간 사회내에서는 모르면 위험할 정도로 대단히 강력한 기술임에 틀림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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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노크노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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