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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크 노트/사회관2'에 해당되는 글 8건

  1. 2023.08.04 선함에 대하여 3
  2. 2023.07.26 교권 붕괴 문제
  3. 2013.05.15 을의 권리는 무엇입니까? 1
  4. 2012.07.27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2
  5. 2012.05.16 PD/NL 1
  6. 2012.04.17 부당함을 밟고 서있는 불편함
  7. 2011.11.08 재산이냐 재주냐 10
  8. 2011.10.27 우리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적 쟁점은? 2

아들에게 읽어줄 책을 궁리하며 내가 좋아하는 책 목록을 살피다가 앵무새 죽이기를 봤다. 어릴때 좋아하던 책 세 권 안에 드는 책이다. 하지만 나중에라도 이걸 읽어줄까 하니 망설여졌다. 그것이 좋은 사상인지 이젠 회의적이다.

아들이 매미 사냥이 한창이다. 매미도 해충이니 모기를 잡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인식하는 것 같다. 매미를 채집통에 잡아둬서 때론 죽고 죽은 걸 해부까지도 해봤다고 한다. 아이가 잔인함에 익숙해지지 않길 바라며 가학성이 생기지 않게 막는 데에만 신경쓰고 있다.
작은 날파리와 큰 매미, 두 날벌레를 죽이는 것 간의 차이는 객관적으론 단지 크기 차이일 뿐이나 잘 보이고 보이지 않는 크기 차이로 인해 주관적으로 느끼는 잔인함과 느낄 수 있는 가학성에 차이가 생긴다. 가학성을 말리긴 하나 딱히 매미를 날파리보다 중히 여기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날파리의 생명조차 소중히 여길 정도의 섬세한 도덕감수성이 진정 선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벌레 한마리의 생명조차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벌레 생명 같은 건 신경쓰지 않는 사람'보다 만나서 상대할 때 선한 사람일까? 내가 보아온 바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실생활에서의 선함이란 내 뜻이 막힐 때 참아내는 인내력 같은 것이다.
불의를 참지 못하는 사람은 종종 내 뜻을 가로 막는 것을 참는 인내가 부족하여 대상을 불의로 규정하는 자이기 쉽다.
실제 선함은 꼬치꼬치 도덕을 따지는 것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신경 거슬리는 감정을 소화해 버릴 수 있는 것에서 비롯된다.
벌레 한마리의 생명은 소중히 하나 타인의 행동에 쉽게 신경 거슬려 하는 사람은 실제로는 꼬장꼬장해 보이지 선해 보이지 않는다.
도덕적 꼬투리로 잔소리 잘하는 불편한 네티즌은 선함과 거리가 멀다.
난 이제는 올바름에 대한 집착을 좋아하지 않는다. 올바름을 명분으로 내세우는 사람중에 착할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나를 해치지 않는 이를 괴롭히지 말라는 앵무새 죽이기의 교훈이 나무 피를 빠는 매미에게 적용되는지는 애매하다.
하지만 아들이 나무 사랑으로 매미 사냥을 하는 것도 아니겠지. 곤충 채집 관찰일 뿐. 매미 사냥은 앵무새 죽이기 책이 불러 일으키는 섬세한 올바름을 찬미하는 감정의 반대편에 있는 '도덕의 작은 구석을 개의치 않는 무감각함'이라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채집 관찰을 위해선 벌레의 생명까지는 보살피지 않는 둔감함.
그 둔감함에 주의를 주고 섬세한 도덕 감각을 일깨우는 것이 아이를 선하게 만들 것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올바름에 대한 집착은 실리적 업적은 고사하고 도덕적 업적 조차도 내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예전에 명분을 논쟁하여 무엇이 올바른지를 아는 것이 의미있는 일인줄 알았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도덕 명분 따지는 사람은 그저 꼬치꼬치 따지는 사람일 뿐이다. 실제 선함이란 그와 전혀 다른 인내력의 영역이다. 올바름에 대한 수많은 논의는 사회를 올바르게 하지 못한다.
아동 인권을 꼬치꼬치 따진 결과 교사는 허수아비가 되어 죽고 공교육은 무너졌다.
범죄자 인권을 꼬치꼬치 따진 결과 경찰이 허수아비가 되더니 어제 오늘은 묻지마 칼부림이 폭증했다.
올바름에 대한 집착은 공공을 망가트렸고 빈부격차의 경계를 공공의 위쪽에, 사적으로 치안과 교육을 감당할 수 있는 계급과의 사이에 그어 버렸다. 공공이 잘 되어 있던 나라에서 공공이 낮은 곳 귀퉁이의 불평등 경계까지 품어줘야 한다고 공공의 커버리지를 풍선처럼 잡아늘린 결과 찢어졌고 공공이 파손되니 자력구제 할 수 있는가를 기준으로 경계가 높은 곳에서 그어지는 상황을 보고 있다.
올바름을 명분으로 하는 PC니 인권이니 하는 이야기들이 내겐 이젠 도덕적 성과조차 내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흑인 민권 운동 시대의 대표작 앵무새 죽이기에 대한 감상도 달라질 수 밖에.

길러내야할 선함의 본질은 꼬치꼬치 따지는 도덕 논쟁이나 섬세한 도덕 감수성이 아니라 신경 거슬리는 감정을 소화해 버리는 인내력이다. 그런 인내력은 선할 수 있는 힘일 뿐만 아니라 때론 독기가 될수도 그릿이 될수도 있는 힘이 된다.

그 능력의 여부가 올바르니 그르니의 잣대보다도 실제로 좋고 나쁜 것을 가른다. 데미안은 악마의 표상이지만 저열한 악과 달리 싱클레어에게 긍정적인 존재일 수 있었다. 반항이 혁신이 될 수 있고 규범 준수가 구태가 될 수 있는 것처럼 실제로 훌륭하고 좋은 것과 저열하고 나쁜 것은 선악이니 올바름이니 하는 차원과는 다른 펙터에 의해 나뉘기 때문이다. 그 다른 펙터에 의거한 관점에서 볼 때, 데미안 식으로 말해서 선악은 통합된다.
실제로 좋은 것. 즉 실리적 성과와 도덕적 성과를 낼 수 있는 것이자 실제로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올바름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역량을 가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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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노크노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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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의 처우'나 '교사의 권리' 따위엔 아무 관심 없다.
교사의 권리라서 바꿔야 하는 게 아니라
시궁창에 빠진 공교육을 건져올리는 데에 교사의 권한 확립이 꼭 필요하기 때문에 바꿔야 하는 거다.
경찰은 총 쏠 수 있어야 하지만 경찰의 권리나 처우 개선을 위해서가 아니라 치안 확립을 위해서다.
권한이 있어야 책임을 질 수 있으니까.
반골기질 가득한 무정부주의자들이 공공이 개인을 억압하는 체제인줄만 아나본데 교권이 무너지고 나면 학생 인권은 다른 양아치 애새끼들에게 넘어갈 뿐이다.
무정부의 정글에 낙원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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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노크노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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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 자녀에게 본국은 어떤 의미일까?
어린시절 살던 동네와 친구들도 떠나오면 추억이 된다. 하물며 언어와 문화와 인종이 다른 나라에 갔을 때엔 고국의 의미는 가벼운 것이 아닐거다. 외국가면 애국자가 된다고 하지 않는가.
그 이민자 자녀가 본국의 대사관에서 일하는 것은 또 어떤 의미일까?
아무 생각없이 살다보니 문득 대사관이 나타났는지 어떤지 모를 일이지만 보통은 흘러가는대로 살다보면 나오는 직장은 대사관이 아닐거다.
한국인도 네이티브 미국인도 아닌 이민자 1.5세의 마음 복잡한 청춘이 자기의 꿈에 대해 생각하고 고국에 대해 생각하여 지원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한다.

고국에서 가장 높으신 분들이 오고, 대사관의 일 중에서 가장 중대한 일에 한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는 건 꿈을 자극하는 일이다.
대학교 강연회 연사로서 성공하신 높으신 분이 온다 하면 대학생들 사이에서도 알게 모르게 경건한 분위기가 감돈다.
하물며 <떠나온 고국>에서 <훌륭하신 분들>이 <고국에게 있어 중요한 일>을 하러 오신댄다. 꿈을 꾸는 입장에서는 꿈 같은 일이다.

그런데 꿈이 악몽이 됐다.
<훌륭하신 분>은 벌거벗은 늙은이가 되어 여자 엉덩이를 움켜쥐고 호텔방으로 들어갔다. 이게 성추행이라고 표현되는데 내가 보기엔 강간미수다. 옷 입은 남자가 다른 사람들 많은 공공장소에서 여자 엉덩이를 움켜쥐면 성추행이지. 옷벗은 남자가 호텔방에서 그러면 그건 강간시도 했는데 여자가 탈출한거다.
대사관 내부에 신고 했을 때는 무시하려 했다. 룸메이트가 외부 경찰에 신고는 했는데 그것도 내부 고발자라고 신고한 사람은 대사관 그만두고 나갔다.
<떠나온 고국>은 자기 신상명세를 돌려보며 히히덕거린댄다. 이 여자가 꽃뱀이냐 아니냐, 생긴건 괜찮은데 행실은 별로다, 각자 자기 정치적 지지 입장에 맞추어선 떠들어대고 혹은 일 크게 키웠다고 비난한다.
고국에서 오신 훌륭하신 분이 자기를 강간하려고 하거나 말거나 <중요한 일>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댄다.
이러고 나면 그 여자의 입장에선 자기를 강간하려 한 것은 고국이다.
향수섞인 떠나온 고국도 무너지고 미래의 꿈도 무너진다.

윤창중 사건은 한발짝 떨어지면 우스개거리다. 국정원 선거 개입같은 치명적인 비리도 아니고 기껏해야 '밖에서 저러면 안에선 오죽하겠냐? 한국 경찰한테 신고했으면 윗선 전화 한통화로 묻혔을걸'라는 증거없는 추정을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당한 입장에선 이민자로서 마음에 의지처로 두었던 고국이 자기를 강간하려고 한 후에 비웃고 있는 사건이다.
만약 과거에 국내에서 권력에 강간당하고 경찰에 신고하나마나 소용없이 조용히 묻힌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이 사회가 자기를 강간한 걸로 느끼겠지.

이건 갑vs을의 관계에서 을의 당연한 권리조차 갑이 힘으로 무시해버리는 부조리의 결과다.
약자의 입장에서 그 결과는 사회전체가 자기를 핍박하는 것으로 느껴진다.
현대의 강자는 사회로부터 힘을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갑의 권리를 지켜줘서 힘을 부여하는 것도 사회고
을의 권리를 지켜줘야 하는 책임이 있는 것도 사회다.
그런데 강자에게 힘을 주기는 하고선 그 힘으로 약자의 권리를 해치는 것은 눈감는 사회가 있다고 한다면
약자의 입장에선 그 사회가 자기를 해치는 것으로 와닿는다.
'사회로부터 힘을 부여받은 자가 나를 해치는 것을 사회가 눈감아준다.' & '사회가 나를 해꼬지한다.' ...뭐가 다르겠는가.

사회는 강자의 권리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정성을 들여 수호해준다.
소유권을 보호하는 것은 강자의 권리다.
업무 권한을 준수하는 것은 강자의 권리다.
강자의 권리가 침해되는 것에 대해서는 중죄로 다스린다.
약자에게도 권리가 있다. 그러나 약자의 권리는 명확히 세부 규정되지 않고 뭉뚱그려진 개념의 상태에서 힘으로 무시되기 일쑤다.
단발적인 '너무했다, 저건 좀 심했다'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을에게 어떤 권리가 있는지, 갑에게 힘을 부여한 사회는 을의 어떤 권리를 눈 부릅뜨고 지켜줘야 하는지,
이것이 분명해지지 않으면 그 사회는 약자의 성과 살을 상납하기 위한 시스템이나 다를 바가 없다.

얼마전 논란된 포스코에너지 상무가 항공 승무원한테 갑질한 사건에서
라면 갑은 승무원 을의 무슨 권리를 얼마만큼 침해하였는가를 분명하게 정하지 않고 두리뭉실 넘어가는 것도 단발성 처벌로 불만만 달래고 넘어가는 꼼수다.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한다. '사회가 지켜줘야 하는 을의 권리는 무엇입니까? 상식이니 인권이니 예의니 하는 상위개념들은 구체적으로 을의 어떤 권리를 의미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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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노크노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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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출이 천차만별이라고 하지만 자녀있는 가정의 수도권 보통 생활비라는 건 존재한다. 

이만하면 보통, 더 쓰면 사치, 덜 쓰면 알뜰. 

이건 거의 하한선에 가까운 개념이라서, 이거보다 적게 쓰고 살아야 한다고 하면 '공부 안하면 장래 거지된다'는 말을 들은 공부하기 싫은 학생처럼 발끈하기 일쑤다. 

가령 자취 월100, 2인 부부 월200, 3인 가족 월300, 4인 가족 월400 이라는 말을 보고 얘기를 꺼냈더니 대세는 '애 하나 월 100으로 못 키운다. 더 든다' 였다. 

3인가족 생활비로 월 320 든다고 치자. 


자식 하나 있는 가족은 평생 얼마를 생활비로 지출하게 될까?

<부모는 자식의 생활비를 30살까지 대신 내준다. 부모는 90살까지만 산다.>라고 모델화하면 

부모 나이 30~60 = 3인가족 = 월 320 * 12 * 30 = 11억5200

부모 나이 60~90 = 자녀 출가시키고 2인가족 = 월 200 * 12 * 30 = 7억2천

합 18억7200

부모는 평생동안 19억은 벌어야 한다.

이건 외벌이 기준이다. 맞벌이면 수입이 느는 대신 생활비가 더 드니까 값이 다르다.


특정 개인 기준이 아니라 '보통'의 생활비라는 걸 생각해보자.

외벌이집 보통 가장이 일생동안 19억 못번다. (보통 얼마 벌지? 한 10억 버나?)

그래서 이 말은 우리 세대 현시점 기준 보통 사람들은 모조리 '생활비>>소득' 이라는 뜻이 된다.

그리고 '생활비>>소득'인 사람은 거지or노예 둘 중 하나 밖에는 길이 없다.


이미 최악인데 아직 악조건이 상당히 배제된 상태다.

그 보통 사람이 자녀를 둘 낳을 수도 있다.

그 보통 사람이 100살까지 살수도 있다.

저 생활비에는 노후 병원비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저 생활비에는 자녀의 비싼 대학 등록금이나 결혼 비용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조건을 포함하면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나지만 

까짓거 늙어서 아프지 말고 자식은 니가 벌어서 대학가고 시집 장가가라고 하면 19억만 벌면 된다.


일생동안 적자나는게 보통인 시대라는게 유지가 되나? 

대체 지금 우리는 단체로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CF 카피로 끝날 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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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노크노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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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NL

노크 노트/사회관2 2012. 5. 16. 16:54

통진당 파동으로 NL 문제가 전면에 떠올랐다. 


80년대 운동권 두 주축은 NL과 PD다.

빈익빈 부익부를 비롯한 경제 사회 문제가 보여서 사회문제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질 때

'자본주의가 문제다' 라고 하면 PD(노동 운동 계열)

'자본주의를 하는 미국이 문제다' 라고 하면 NL(반미제국주의 계열)


한국에서 PD를 하려면 '자본주의'를 부정해야 하므로 더 고생길.-> 소수파

NL의 적은 바다 건너에 있으므로 그냥 저냥 온건할 여지가 있음.-> 다수파


자본주의의 대안이 사회주의국가라고 하던 PD는 사회주의 국가가 현실에서 몰락을 하는 걸 보면서 타격 받았다. 반증될 가능성이 있는 이론이었기 때문에 반증의 충격이 먹혀들었고, PD는 거의 해체되었다. 자본주의의 대안이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라면 새로운 대안은 무엇인가에 대해 연구모드에 들어갔다. 진중권은 유학가고 김문수는 보수파로 돌아서고. 

NL은 미국이 세계를 착취하는 것 같다는 막연한 믿음이라 반미제국주의를 실현한 북한의 현실이 엉망이라는 반증사례가 작용하지 않았다. (NL은 학술상 신앙으로 분류되기도 한다나...)


한편 저 반대편에는 

공산주의가 문제인지 

공산주의 하는 북한이 문제인지

가려내는 걸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구체적으로 서술하면 자본주의의 문제점에 동의하고 공감을 하면서도, 그 문제의식이 사회주의를 낳았다는 걸 거론하면 그 순간 악마가 된다. 수정자본주의 따위는 빨갱이의 속임수라고 인식하는 듯하다.

NL이 아무리 사람이 좋아도 그들 신앙의 대상인 '북한 싫어요' 하면 폭발하는 것과 똑같다.

그런데 이들이 이렇게 거부감을 갖는 데에는 NL의 역할이 매우 컸다. 
자본주의의 한계를 지적하는 NL의 활동을 본 사람은 '문제의식에 동의했더니 대안이 북한이라고?'라는 거부감을 갖게 된 거다. 
구 민주노동당에서 이어진 통합진보당의 당권파가 NL의 본체이며 
경선 부정과 폭력 사태를 통해 이들이 반민주 세력이란 것이 폭넓게 알려졌다. 
단기적으로는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차라리 잘됐다. 

NL의 이론도 PD의 이론도 이미 그들의 이론이 미흡하다는 게 증명된 시대이니 한물 간 이론이지만, 대안을 내더라도 PD 계열이 낼 수 있지 NL은 존재의미가 없다. 

Posted by 노크노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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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당한 이익에 의존하다가 명분을 잃고

부당한 이익으로 버티며 정당한 이익을 지키지 못하여 

결국 정의의 명분 앞에 그 부당한 이익마저 잃어버리는 형태의 몰락을 종종 본다.


가령 의사는 부당수입인 리베이트에 의존하다가 정당한 수입인 의료 수가를 현실화하는데 집중하지 못하면 리베이트 챙기는 리스크가 상승하면서 어려움에 처한다.

자영업은 탈세의 이익에 의존하다가 정당한 이익을 지키지 못하면 마지막은 정의의 이름으로 날아온 칼 앞에 몰락당한다.

부당 이익을 챙기면 처음에는 편하다. 그런데 점차 그 상태를 기준으로 이익 균형이 맞춰진다. 

정당치 못한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니 명분은 잃은 채이고, 처음에 폭리이던 수입은 점점 일상수준으로 완화된다. 그런 후에 마지막 몰락의 칼은 합법적으로. 

높은 수준의 이익을 취하는 것에 대한 압박이 들어올 때 스스로 부당이익을 잘라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면 이렇게 된다.


이런 구조의 느낌을 마트에 가서 느낀다.

대형마트는 노동 착취의 현장이 아닐까?

주말 실습사원이라면서 바쁘게 일하는 사람들, 저 젊은 노동력은 얼마나 헐값으로 부려먹히고 있는 걸까?

결코 녹록치 않은 마트 캐셔일을 하는 중장년의 여성들은 얼마를 받고 몇교대로 일하며 휴일에 쉬기는 잘 쉴까?

마트 앞에 서서 교통정리를 하는 일도 상당한 중노동인데 얼마나 받고 일하는 걸까?


내가 사는 마트의 물품은 이런 착취위에서 원가를 산출하고 있는 물품이니 나도 저 부당 착취의 위에 발을 얹고 있는 셈이다. 

임금상승이 물가상승률도 감당 못하여 나날이 가난해지고 있는 세상의 사람들은 

자기가 받는 지나치게 싼 봉급의 어려움을 또 다른 노동착취로 전가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런 식의 부당이익 위에서 버틸만하다고 살면서 정당한 권리와 명분을 함께 잃어 나가면 

마지막엔 정의의 이름으로 몰락당하는 결과를 맞이할 것 같다.


마트가 아니더라도 세상엔 노동 착취다 싶은 힘든 일들이 많다. 

가령 택배업도 그렇게 힘들다고 들었다. 내가 누리는 싼 택배비용은 그 노동착취위에서 산출된 것일터.

택배에 그치겠는가? 물류업 전반이 착취란 얘기일텐데 그 영향만해도 산업 전반에 녹아있기 마련이다.

당장 버틸만하다고 해서 착취가 남의 일이란 생각이 안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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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노크노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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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가 나라를 먹여살리는 거라고 세뇌시키던 나라에 어느 날 의대 열풍이 몰아쳤다. 
의대 선호의 원인이 수입에 있는 만큼 황금만능주의가 만연하는 거라는 둥 어쩌구 말들이 많았는데
돌아보니 그게 사람들의 단말마였나 싶다.

똑똑한 걸로 출세하는게 되던 시절이 있었지. 불과 몇년 지나지도 않았는데 이젠 어려워졌다.
얼마나 어려워졌나 보면
  회계사 : 어느새 '그냥 회사원'이 되었다. 연봉 3500에서 시작. 그냥 평범한 봉급쟁이라는 말로 설명이 끝난다. 
  변호사 : TV 뉴스에 변호사 출신 자문의원이 나와서 '한국에서 변호사 출신 택시기사가 영업할 시기가 머지 않았다고 봅니다.'라고 말한다. 현재 의사보다 못한 건 분명하다. 
  의사 : 그나마 최후의 보루였는데 슬금슬금 파먹혀서 지금은 월급으로 치면 그냥 회사원 1.5배 버나 마나 한다. 대학원 졸업자 기준 월급 400 정도. 박사 마친 정도 연차 기준 월급 1천안팍 정도. 안정성이 높다는 것 하나가 현재 최후의 최후 보루로 남아있다. 안정성의 효험은 수십년 후에나 볼 수 있는데 수년 사이에 상황이 급격히 나빠지고 있다는 게 문제다.
  자영업/창업가 : 현재 상생이 안되는 풍조니까 상생하자는 소리가 나온다. 대기업만 잘먹고 잘사는 한국에서 자영업자/중소사업가가 가는 길은 슈퍼하이리스크-미들리턴, 그나마 대기업이 싹싹 핥아 먹으려 들려고 난리다. 뒤에서 돈대주는 빽이 있으면 쉬운 길이기도 하다. 티켓몬스터라든지.

보통 이런 얘기 나오면 성공한 케이스를 들며 잘 버는 사람은 예전보다 더 잘 번다...라고들 하지만,
빈익빈 부익부 벌어지면 그 직종은 끝난거다. 한국 최대 재벌은 다 라이센스 없는 비전문직인데 그럼 비전문직이 제일 유망하게.

요즘의 대립구도는 '가진자냐 못가진자냐'가 아니라 '수입의 원천이 재산이냐, 재주냐'다.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안철수 앞에서 더 뚜렷해진다.
안철수는 의사아들로 태어난 성공한 기업가다. 인생에서 기득권이 아니었던 적이 한번도 없다.
그게 돈이든 재주든 지위든, 가진자냐 못가진자냐로 구분하면 항상 가진자였다. 
그런데 좌빨 소리를 듣고 있다. '종북'까지는 안붙어도 좌빨 소리는 빈번히 듣는다.

절대적인 의미로야 말이 안되지만 상대적인 의미로 이해하면 이 좌빨 소리는 근거가 있다.
안철수의 출세는 자기 똑똑한 걸로 이루어졌다. 사업도 창업이지 남의 사업에 투자한게 아니어서 
가진자 못가진자로 나누면 정체성이 불분명하지만 재산이냐 재주냐로 나누면 평생의 커리어가 '재주'쪽 입장에 서 있다. 그러니 '재산'에 치우친 입장에서 보기엔 안철수의 모든 생각은 좌빨이나 할 생각으로 보일 수 밖에 없겠지.

재산이냐 재주냐의 대립에서 '재산이다'쪽으로 흐르는 추세가 급격하다. 
어느 쪽으로 치우쳐 있는지는 분명한데, 
그럼 이 사회가 어느 정도 극단적인가를 점수 매긴다면 한 80점 정도를 매기고 싶다. 100점 중에 20점이 빠진 이유는 지금보다 더 생지옥 같은 환경도 얼마든지 상상할 수 있기 때문에. 산업혁명기의 광부라든지.

재주 쪽 입장의 선봉에 서 있던 직종들이 무너지고 있다. 
가진자/못가진자로 대립구도를 그리면 가진자들의 몰락으로 읽히는 탓에, 의사 변호사의 몰락이라는 평론 아래로는 항상 '쌤통이다'라는 댓글이 달린다. 국민 감정인 모양이다.
하지만 재산이냐 재주냐의 대립으로 본다면, 글쎄. 순망치한이라는 말이 옳지 않을까?
'재산'의 입장이 승리하는 방식으로 의사 변호사에게 빈익빈 부익부의 시대가 오고 나면 그 다음엔 산업혁명기의 광부 생활이 꿈이 아니지 싶다. 온 가족이 밖에서 재주를 팔아야 한 식구 연명이 가능한 그 날이 오면, 사회가 어느 정도 극단적인가를 90점 정도로 점수매길수 있을 것 같다.

덧. 순망치한일줄 모르고 의사 몰락 보면서 쌤통이라 하는 국민감정만 바보인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국민이 바보라고 하려면 이 대립구도가 '가진자vs못가진자'가 아니라 '재산vs재주'로 정의 되어야 한다. 
그리고 '재주보다 재산'으로 박차를 가하고 있는 한나라당인데,
재산vs재주 라는 프레임을 적용하면(=국민이 바보라고 말할 수 있는 전제조건)
의사 변호사는 반 한나라당 감정으로 똘똘 뭉쳐 있어야 옳다.
과연 실제 그럴까?
국민 감정이 바보라고 말하는 의사&변호사들조차도 누가 자기 편인지 구분할때엔 '가진자vs못가진자' 프레임을 적용하고 있는게 사실이다. 
양쪽이 같은 잘못을 하고 있을 뿐, 누가 누구를 바보라고 할 처지는 아닌 셈이다.   
Posted by 노크노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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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쟁점은 다양하지.
가령 북한을 대하는 태도가 뭐가 옳으냐 하는 것도 많은 표가 왔다갔다하는 정치적 쟁점이고
미국을 대하는 태도, 일본/중국을 대하는 태도 등의 외교적 자세라든지
민주주의 절차적 이슈도 그렇지. 자세히 따지자면 무지무지 다양하다.
그 수많은 쟁점중에서 여러분에게 가장 관심 있고 중대한 이슈는 뭐야?

내 경우엔 '이게 제일 중요한데 아무도 전면으로 끄집어내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는 쟁점이 있어.
바로 투자소득과 근로소득간의 형평성 문제야.

모든 성과에는 두가지 측면이 있지. 투자와 노력. 
한류 열풍은 누가 만든 걸까- 이수만 같은 소속사 사장?
구하라랑 한승연 같은 일선 아이돌?
합작품이지. 
일선 현직자의 재능 열정 인내 노동이 성공을 빚어낸 것인 동시에 
될성부른 나무에 투자한 투자자의 작품이기도 하지. 
그럼 성공의 과실은 누가 가져가는게 맞을까?
이건 항상 갈등의 소지가 있는 문제야. 카라 멤버가 먹어야 하느냐 소속사 사장이 먹어야 하느냐의 트러블은 생각 이상으로 본질적인 갈등이란 얘기야.

언젠가부터 세계가 '투자자 win'을 외치고 있어.
공산주의가 몰락하니까 자본주의가 노브레이크로 막장까지 치닫는건지 뭔지.
투자와 노동이 합작해서 성과를 만든다는 말은 
투자소득과 근로소득은 같은 파이를 나눠먹는 상충 관계라는 의미이기도 해서
투자소득이 대우 받으면 근로소득자는 자연스럽게 쪼들리게 되지.
그 결과 투자소득은 세금도 잘 안떼는 반면
근로소득의 가치는 이미  땅에 떨어졌어. 
가장 높은 수준의 근로소득자는 페이 받는 전문직 종사자인 셈인데 
요즘 치과의사 페이닥터 월급이 400만원 안팍이야. 
예과 본과 6년에 인턴 레지던트 6년을 더 훈련 받은 전문의 월급이 천만원 안팍이고.
다른 무엇보다도 세상에서 돈을 많이 버는 걸로 유명한 근로소득자의 월급이 이 정도라는 얘기는
의사 월급이 너무 적다는게 아니라, 다른 근로 소득자들은 더 적다는 얘기야. 
(우리가 아는 월 억씩 돈 팍팍 잘버는 의사는 좀 다른 얘기야. 의료계는 법인 소유자를 의사로 한정시켜서 비 의사가 의사로부터 돈을 뽑아먹지 못하게 막고 있지. 똑똑해라...)

이 문제는 우리에겐 88만원 세대라는 말로 알려져 있지.
투자 소득이 중시받고나니 투자 없이 새로 사회에 진입하는 신규 세대는 이젠 근로 소득으로는 먹고 살 수 없어. 그로 인해 물려 받은게 없으면 평생 노비 팔자가 정해졌다는 얘기가 88만원 세대라는 단어의 의미지.

이 문제에 대해 조용한 건 우리나라 뿐인것 같아.
미국만 해도 핫이슈지. 투자소득세를 왕창 물어야 한다는 워렌 버핏이며
중산층이 싹 무너졌다고 시위하는 미국인들은 이 문제가 중요하다는 걸 점차 강하게 느끼고 있는걸거야. 투자소득이냐, 근로소득이냐.
한국에서 이 문제를 거론 하는 사람은 안철수가 유일하지 않나? 다른 정치가들은 이 문제 거론 안하던데. (아. 안철수는 정치가가 아니구나. 정치가 중에는 없네.)

근래 재산 500억 이상은 상속세도 안 물겠다는 법이 거론 됐다며? 
오너의 상속 문제 때문에 기업이 휘청하는 일을 없애주겠다는 의도겠지.
비지니스 프렌들리가 그거잖아. 세계와 경쟁하려면 힘을 몰아줘야 한다는 주장.
그 힘을 몰아줘야 한다는 미명하에 성과의 파이는 점점 더 투자자 win, 근로자 일하세요...가 되어가고 있는게 근래 한국의 모습이잖아.

거대 자본 투자자에게 힘을 몰아줘서 세계와 경쟁을 통해 파이를 키우자는 주장도 나름의 타당성을 가지고 있다는 건 알아. 하지만 그 부작용이 심각한 터에 이 쟁점에 문제의식을 갖고 정치 경제권 전체에서 무게있는 의견 교환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해. 지금처럼 입 다물고 있으면 큰일이라고.
한국의 정치 상황에서 진보와 보수는 모호하기 짝이 없지만 이 문제에 대해서 만큼은 명백하지. 
난 근로소득이 지금보다 훨씬 더 중시되는 쪽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해.


덧> 투자소득이 높으면 소유 집중은 가속되고 투자소득이 낮으면 소유 집중은 약해진다. 만약 투자 소득이 0이라면 소유는 뿔뿔이 흩어져버릴거다. 
즉 투자소득과 근로소득의 배분을 조절한다는 건 소유 집중으로 가는 속도를 조정하는 의미를 갖게 된다. 투자소득의 조정 정도에 따라 가속 감속 역행.
빈익빈부익부 양극화는 세계적 추세인데, 이건 분명히 투자소득이 전 세계적으로 어느 선을 넘었기 때문이 주 원인일거다. 
소유권에 직접 제약을 가하는 것은 어려우므로, 대신 이익을 벌어들이는 양을 조절한다면 장력이 깨진 물방울처럼 스스로 크기가 조정될 것이다. 따라서 이게 소유 집중 문제의 실현 가능한 해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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