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진 관념의 토대 위에서 뇌과학 서적을 읽고 있다.
사람의 의식구조에 대해서는 종교, 철학, 심리학(사회과학), 뇌과학(과학)등 학문 전반에 걸쳐서 다양한 모델이 존재한다.
내가 잡고 있는 모델은 이렇다.
동물은 태어날 때부터 뇌신경망구조에 생물로서의 본능을 갖는 의식 구조를 형성하고 태어난다.
그리고 생각은 흔적을 남긴다.
생물 본능적 의식 구조 위로 외부 환경과 자유의지의 결과가 학습된다.
학습된 패턴은 루틴화 되면서 쌓이고 기존의 구조를 변화시킨다.
( longlive.tistory.com/279 에 적은 의식3단계설 참조.
1. 의식적으로 생각하는 단계. 언어를 이용해 생각하고, 대상의 개별 요소를 의식에서 인식한다. 매우 느리다.
2. 직관적으로 생각하는 단계. 언어를 이용해서 생각하지 않으며, 복잡한 논리적 사고과정 없이 직관적으로 '이것은 이것이다'라고 결론이 나온다. 대상은 개별요소로 인식되지 않고 그 개별요소들을 특징으로 하는 하나의 집합체, 즉 관념으로 뭉뚱그려서 인식된다. 처리속도가 1단계 보다는 두배 빠르나 여전히 느리다.
3. 몸에 배는 단계. 입력에 대한 출력이 완전히 루틴화되어서 생각하지 않고 행동한다. 빠르다.)
즉 자유의지는 집적된다.
자유의지는 그것이 집적된 결과물인 하위자아를 바탕으로
집적된 결과물이 선택 가능한 폭 안에서 동작한다.
크게 비유하면 테니스를 배우지 않는 것은 자유지만 안 배웠으면 테니스를 못친다.
서울에 경부선을 타는 것은 자유지만 그 결과 나는 부산에 있어서 인천에 가기가 어려워진다.
가속도는 집적되어 속도를 만든다. 순간가속도는 가속도가 집적된 현재 속도에 비해 매우 작은 크기를 갖는다.
이와 같은 일이 의지에도 일어난다. `의`는 벡터다. 이것의 존재를 확인하려면 그 전에 먼저 이것이 얼마나 작을 수 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찰나의 매순간들에 자유의지로 한 생각과 선택들은 집적되고 미래의 선택과 생각은 집적되어 도달한 그 지점에서 이루어진다. 그 결과가 일상에 나타나는 수준의 (과거로부터의 관성에 비하면 별로 크지도 않은) 자유의지이므로,
찰나의 순간에 순수한 자유의지는 매우 작은 가속도 벡터이다. 그러나 없는 것과 매우 작은 것은 크게 다르다. 그 작은 순간 가속도는 집적되어 큰 현재 속도를 만든다. 그 작은 자유의지는 상위자아로부터 온다.
날때부터 가지고 있던 본능에서부터 현재의 모든 것에 이르기까지
하위자아의 신경회로에 루틴화된 것은 모두 특정 입력에 대한 특정 출력이 매칭된 것이며 조건반사와 마찬가지로 기계적으로 반응한다. 하위자아로서의 의지는 뇌의 기억, 언어, 연상작용등 모든 루틴화된 입출력 패턴들과 팔다리등 몸의 자원을 이용하여 활동한다.
하위자아의 의식은 RPG게임의 아바타(문자 그대로 하위자아)에 몰입했을 때에 느끼는 아바타로서의 자아와 마찬가지라서
하위자아가 상위자아를 각성하면 하위자아의 의식은 해체된다.
내가 게임을 할 때 게임캐릭터의 의식은 내 의식임에도 내가 게임에서 빠져나온 다음엔 캐릭터로서의 자아는 온데도 없고 간데도 없이 사라지는 것처럼.
이 관념 위에서 뇌과학을 읽다보면 현재 뇌과학이 한창 연구하고 있는 것은 '해킹기술'로 이해된다.
상위자아의 영향으로 발생한 자유의지는 전기화학신호를 전달자로 하여 두뇌 각부 및 신체 전체와 통신한다.
뇌화학은 군대 사령관이 하달시킨 '진도개 셋' 명령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한 연구나 마찬가지다.
명령의 암호를 해석하고 명령체계에 난입할 수 있다면 동작에 혼선을 미칠 수 있다.
그러나 통신 난입하여 진도개 셋을 끼워 넣어 군대를 움직일 수 있다손 치더라도, 중간에서 명령체계를 해킹하는 것은 별개 문제이고
군대를 전진시킨 것은 엄밀히 말해서 '진도개 셋'이 아니라 그 명령을 내린 수뇌의 의도이며 '진도개 셋'은 그 의도의 전달자일 뿐이다.
호르몬은 전달자다. 사람의 감정과 행동이 호르몬에 의해 조절된다는 것은 그 의지가 시작되는 지점이 호르몬을 생성하는 지점보다 이전 단계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암호화된 명령인 '진도개 셋'이 나온 지점보다 앞선 곳에서 군대를 움직인 의지가 시작되었다는 의미와 같다.
신경 전달 물질인 세로토닌은 위험 회피에 대한 신호를 의미한다.
내 요구가 거절되었을 때 라든지, 뭔가 위험을 감지했을 때의 신호를 전달한다. 세로토닌이 적게 분비되면 위험하다는 뜻이다.
어떤 일이 걱정할만한 일인가 아닌가에 대한 감각은 사람마다 다르다. 이와 같은 의미로, 분비되는 세로토닌의 양은 사람마다 다르다.
세로토닌이 적게 분비되는 이유는 이성적 판단의 차이 때문(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차이)일수도 있고, 조심성과 걱정이 많은 성격탓(똑같이 알고 있어도 누군가는 더 걱정한다)일 수도 있고, 혹은 분비회로가 고장나서일 수도 있다.
우울증 치료제인 프로작은 세로토닌을 인위적으로 증가시킨다.
우울증 환자는 그 결과 우울증이 치료된다.
분비회로가 고장난 경우라면 증상을 없애주는 효과이고, 걱정이 많은 성격탓이라면 성격을 바꿔주는 효과이다.
이런 반응은 위험회피 성격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프로작은 섭취가 간편하고 부작용이 적어서 유명해졌지만 기술이 받쳐준다면 도파민(새로움 추구)이나 노르에피네프린(쾌락 보상 추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작업이 가능하다.
프로작이 하위자아의 통신망이 '위험도가 1~10단계중 한 7단계쯤 되'라는 통신을 하는 와중에 끼어들어 위험도 값을 낮춰서 전달하는 해킹기술이었다면, 다른 물질로 다른 통신에 개입하는 것도 가능하다.
세로토닌/도파민/노르에피네프린/아드레날린을 포함하여 수많은 신경 전달 물질의 양을 조절함으로써
위험에 민감하고 쾌락 보상에 집착하면서 잘 흥분하지 않고 수구적인 성격을
위험에 둔감하고 쾌락 보상에 둔감하며 잘 흥분하고 새로움을 추구하는 성격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전기적인 신호 해킹도 뇌에 전극을 꽂으면 어느 정도 가능하다.
가령 뇌 특정 부위에 전위차를 주면 '지금 슬픈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느낌이나 '지금 우스운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
(또한 그 감정에 연계된 기억이 더 잘 떠오르기 때문에 전위차로 유도된 감정은 스스로의 기억에 의해 증폭된다.)
즉 기술이 받쳐준다면, 유머러스한 성격(입력된 정보의 우스운 부분을 민감하게 캐치하여 잘 웃는 성격)을 만들 수도 있다.
이건 모두 통신 해킹에 대한 얘기다. 상위자아로부터 아바타를 조종하는 사이에 개입하여 해킹하는 것을 뜻한다.
미미한 자유의지의 집적으로는 수정하기 힘들었던 강한 현재속도를 약으로 후려쳐서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은 안그래도 작은 가속도 벡터를 더 하찮게 보이게 할 것이다. 그러나 강하게 후려쳐서 현재 속도를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은 가속도 벡터의 존재 여부에 아무런 근거도 되지 못한다.
학습을 통해 자유의지를 집적하여 성격을 바꿀 때엔 새로운 입출력 피드백 패턴을 내재화하여 신경 전달 물질의 분비량을 조절하거나 수용하는 민감성을 줄인다. 즉 피드백 회로를 수정한다. 이는 자유의지가 하위자아에 집적되어 하위자아를 수정하는 의미를 갖는다. 상위자아의 자유의지로 하위자아에 가치있는 인격을 구현하는 것을 하위자아의 존재의의로 삼는다고 한다면
'치료'의 폭은 '피드백 회로가 고장나서 증상을 감추어야 하는 상황'에 국한된다.
나머지는 치료라기 보다는 강제 성격 개조이다.
본인이 강제 성격 개조를 원하고 있는 경우라면 (환자를 치료하는 의미가 아니라) 부작용을 감안한 후엔 도구적 의미로 허용될 수 있다.
가령 다른 가치있는 모험을 하기 위해 위험에 민감한 성격을 잠시 접어두겠다고 생각할 수 있는 거니까. (또다른 예로는, 호모섹슈얼이 `이상이 있는 환자`가 아닐지언정 성향개조가 가능하다고 하면 자발적으로 헤테로섹슈얼로 자기 개조를 감행할 사람이 95%이상 될 것이다. 살기 힘들어서 자괴감 갖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하지만 본인이 원하지 않는 강제 성격 개조는, 글쎄 적어도 치료라는 이름으로 불리기엔 논란 거리가 많다. 정신병 치료 목적으로 뇌를 파괴했던 일에 비교될 수 있지 않을까.
얼마전 ADHD(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 장애)는 허구라는 ADHD 창안자 아이젠버그의 임종전 고백이 있었다.
(http://www.worldpublicunion.org/2013-03-27-NEWS-inventor-of-adhd-says-adhd-is-a-fictitious-disease.html)
피드백 회로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할 때 미성년자인 아이의 성격을 타인인 부모의 의지로 강제 개조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을것인가.
내 관념을 고수하면 쾌락 그 자체에 대한 관점은 다음과 같이 된다.
현재 흔히 퍼져있는 착각으로 보이는 '사람은 주관적인 행복의 감각을 목적으로 하여 행동하는 것'이라는 관념이 있다.
주관적인 행복이란 엔돌핀등 체내의 마약성 물질을 의미하므로
저 말은 어떤 행동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체내 마약성 물질을 생성하는 것이 삶의 목적이 된다. (* 마약성 물질은 그 물질 자체가 특별한 것이 아니다. 신호를 전달하자니 뭐가 됐든 전달자가 필요해서 어떤 물질을 사용하고 있는 것 뿐이다. 수많은 식물중 양귀비 꽃이 그 물질을 생성하는데, 만약 신경이 전달자로서 다른 물질을 체택했다면 장미꽃이 환각을 일으켰을 것이다.)
그렇다면 효율적으로 외부에서 향정신성약물을 주입하는 것이 나쁠 게 없다. 목적에 직접 도달하는 방법을 찾은 셈이 될 뿐이다.
금단증상이나 점점 약의 양을 늘려야 하는 약물 내성 효과등은 사소한 부작용이다. 옥시토신은 역치 증가를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으며, 언젠가 기술이 받쳐준다면 늙어죽을때까지 쇼크사 하지 않는 정도의 사용양으로 쾌감을 줄 수 있는 향정신성의약품도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술 담배 케익도 그 예시가 된다. 죽을때까지 향유할 수 있는 쾌락 증대 물질 말이다.
그러나 '상위자아의 자유의지를 집적하여 하위자아를 만들어가는 것'에 의미를 둔다면 (* 이익이 아니라 가치생성을 목표로 한다면)
약물의 근본적인 부작용은 피드백 구조에 혼란을 준다는 것이다.
약물에 의한 자극은 '이 행동을 통해 이러한 보상이 온다'는 피드백 구조에 개입하여 뒤헝클어 놓는다.
가령 이타성을 예로 들면, 본래는 지나친 이기성과 맹목적 이타성 사이의 어느 지점에서 적정한 내적 보상 수준이 결정되어야 하며 이는 학습 내재화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런데 본래는 행동의 결과를 뿌듯해하면서 분비되어야 할 보상이 더 편한 방법으로 주입된다면, 보상 수준 결정에 혼란이 생긴다.
그래서 이상적으로는 술이든 담배든 당분이든 카페인이든 마약이든
그 뒤헝클어 놓는 영향성의 양만큼 해롭고, 멀리하는 것이 좋다.
다만 어차피 하위자아가 학습할 때엔 자유의지의 결과가 고스란히 집적되는 게 아니라 환경의 변칙성으로 인한 노이즈가 작용하므로 일정 수준 이하의 약물에 의한 영향성은 무시되는 것이 사실이다. 약물에 의한 쾌락이 보상 구조를 손상시킨다지만 환경의 우연성에 의한 불노소득 같은 보상은 항상 존재하기 때문이다.
여담으로 어떤 작가가 자기가 영감이 떠오르는 순간의 뇌를 MRI로 촬영했다는 책을 읽었다.(서명 `굿바이 프로이트`) 그는 뇌는 모듈화된 신경 회로의 집합이며, 각각의 신경회로는 회로구조의 독특함 때문이 아니라 뇌에서의 위치에 의해 특징을 갖으므로, 따라서 모든 모듈은 각각의 자아를 가지며 통합된 단일 자아는 모듈화된 복수의 자아들 간의 역학관계 끝에 나타나는 허구라는 모델을 제시했다.
그는 자기가 언어적 창조적 영감을 얻는 순간 뇌의 언어영역(그의 모델대로라면 `말을 하는 나`가 될 것이다)에 대단한 활성화가 일어날 것을 기대했다. 그는 실험과정에서 영감을 얻는 순간을 찍는데에는 성공했으나 원하는 결과를 얻지는 못했다. 그의 언어영역은 일반적인 책을 읽을 때보다 약간 열심히 일하고 있는 정도였다. 창조적 활동을 할때 두드러지는 변화는 안쪽이마이랑(medial frontal gyrus)의 활성화였다. 우연히도 medial frontal gyrus의 위치는 머리 밖에서 보면 상단전이다.
뇌의 특정 영역이 활성화되는 것을 느끼는 것이 가능한가 라는 질문에 대해 그 책에서 대답하기를, 뇌에는 감각기가 없기 때문에 절대로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창조적 활동을 할 경우에 뇌의 어느 부위가 활성화되는가 라는 것은 MRI가 아닌 한 설령 해부를 할지라도 알 수 없다. 그런데 창조적 활동을 할 때엔 상단전이 빛난다는 말은, 석가모니가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인도에 전해내려온 것이다. 어떤 경로로 가능했을지는 의문이다.
사람의 의식구조에 대해서는 종교, 철학, 심리학(사회과학), 뇌과학(과학)등 학문 전반에 걸쳐서 다양한 모델이 존재한다.
내가 잡고 있는 모델은 이렇다.
동물은 태어날 때부터 뇌신경망구조에 생물로서의 본능을 갖는 의식 구조를 형성하고 태어난다.
그리고 생각은 흔적을 남긴다.
생물 본능적 의식 구조 위로 외부 환경과 자유의지의 결과가 학습된다.
학습된 패턴은 루틴화 되면서 쌓이고 기존의 구조를 변화시킨다.
( longlive.tistory.com/279 에 적은 의식3단계설 참조.
1. 의식적으로 생각하는 단계. 언어를 이용해 생각하고, 대상의 개별 요소를 의식에서 인식한다. 매우 느리다.
2. 직관적으로 생각하는 단계. 언어를 이용해서 생각하지 않으며, 복잡한 논리적 사고과정 없이 직관적으로 '이것은 이것이다'라고 결론이 나온다. 대상은 개별요소로 인식되지 않고 그 개별요소들을 특징으로 하는 하나의 집합체, 즉 관념으로 뭉뚱그려서 인식된다. 처리속도가 1단계 보다는 두배 빠르나 여전히 느리다.
3. 몸에 배는 단계. 입력에 대한 출력이 완전히 루틴화되어서 생각하지 않고 행동한다. 빠르다.)
즉 자유의지는 집적된다.
자유의지는 그것이 집적된 결과물인 하위자아를 바탕으로
집적된 결과물이 선택 가능한 폭 안에서 동작한다.
크게 비유하면 테니스를 배우지 않는 것은 자유지만 안 배웠으면 테니스를 못친다.
서울에 경부선을 타는 것은 자유지만 그 결과 나는 부산에 있어서 인천에 가기가 어려워진다.
가속도는 집적되어 속도를 만든다. 순간가속도는 가속도가 집적된 현재 속도에 비해 매우 작은 크기를 갖는다.
이와 같은 일이 의지에도 일어난다. `의`는 벡터다. 이것의 존재를 확인하려면 그 전에 먼저 이것이 얼마나 작을 수 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찰나의 매순간들에 자유의지로 한 생각과 선택들은 집적되고 미래의 선택과 생각은 집적되어 도달한 그 지점에서 이루어진다. 그 결과가 일상에 나타나는 수준의 (과거로부터의 관성에 비하면 별로 크지도 않은) 자유의지이므로,
찰나의 순간에 순수한 자유의지는 매우 작은 가속도 벡터이다. 그러나 없는 것과 매우 작은 것은 크게 다르다. 그 작은 순간 가속도는 집적되어 큰 현재 속도를 만든다. 그 작은 자유의지는 상위자아로부터 온다.
날때부터 가지고 있던 본능에서부터 현재의 모든 것에 이르기까지
하위자아의 신경회로에 루틴화된 것은 모두 특정 입력에 대한 특정 출력이 매칭된 것이며 조건반사와 마찬가지로 기계적으로 반응한다. 하위자아로서의 의지는 뇌의 기억, 언어, 연상작용등 모든 루틴화된 입출력 패턴들과 팔다리등 몸의 자원을 이용하여 활동한다.
하위자아의 의식은 RPG게임의 아바타(문자 그대로 하위자아)에 몰입했을 때에 느끼는 아바타로서의 자아와 마찬가지라서
하위자아가 상위자아를 각성하면 하위자아의 의식은 해체된다.
내가 게임을 할 때 게임캐릭터의 의식은 내 의식임에도 내가 게임에서 빠져나온 다음엔 캐릭터로서의 자아는 온데도 없고 간데도 없이 사라지는 것처럼.
이 관념 위에서 뇌과학을 읽다보면 현재 뇌과학이 한창 연구하고 있는 것은 '해킹기술'로 이해된다.
상위자아의 영향으로 발생한 자유의지는 전기화학신호를 전달자로 하여 두뇌 각부 및 신체 전체와 통신한다.
뇌화학은 군대 사령관이 하달시킨 '진도개 셋' 명령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한 연구나 마찬가지다.
명령의 암호를 해석하고 명령체계에 난입할 수 있다면 동작에 혼선을 미칠 수 있다.
그러나 통신 난입하여 진도개 셋을 끼워 넣어 군대를 움직일 수 있다손 치더라도, 중간에서 명령체계를 해킹하는 것은 별개 문제이고
군대를 전진시킨 것은 엄밀히 말해서 '진도개 셋'이 아니라 그 명령을 내린 수뇌의 의도이며 '진도개 셋'은 그 의도의 전달자일 뿐이다.
호르몬은 전달자다. 사람의 감정과 행동이 호르몬에 의해 조절된다는 것은 그 의지가 시작되는 지점이 호르몬을 생성하는 지점보다 이전 단계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암호화된 명령인 '진도개 셋'이 나온 지점보다 앞선 곳에서 군대를 움직인 의지가 시작되었다는 의미와 같다.
신경 전달 물질인 세로토닌은 위험 회피에 대한 신호를 의미한다.
내 요구가 거절되었을 때 라든지, 뭔가 위험을 감지했을 때의 신호를 전달한다. 세로토닌이 적게 분비되면 위험하다는 뜻이다.
어떤 일이 걱정할만한 일인가 아닌가에 대한 감각은 사람마다 다르다. 이와 같은 의미로, 분비되는 세로토닌의 양은 사람마다 다르다.
세로토닌이 적게 분비되는 이유는 이성적 판단의 차이 때문(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차이)일수도 있고, 조심성과 걱정이 많은 성격탓(똑같이 알고 있어도 누군가는 더 걱정한다)일 수도 있고, 혹은 분비회로가 고장나서일 수도 있다.
우울증 치료제인 프로작은 세로토닌을 인위적으로 증가시킨다.
우울증 환자는 그 결과 우울증이 치료된다.
분비회로가 고장난 경우라면 증상을 없애주는 효과이고, 걱정이 많은 성격탓이라면 성격을 바꿔주는 효과이다.
이런 반응은 위험회피 성격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프로작은 섭취가 간편하고 부작용이 적어서 유명해졌지만 기술이 받쳐준다면 도파민(새로움 추구)이나 노르에피네프린(쾌락 보상 추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작업이 가능하다.
프로작이 하위자아의 통신망이 '위험도가 1~10단계중 한 7단계쯤 되'라는 통신을 하는 와중에 끼어들어 위험도 값을 낮춰서 전달하는 해킹기술이었다면, 다른 물질로 다른 통신에 개입하는 것도 가능하다.
세로토닌/도파민/노르에피네프린/아드레날린을 포함하여 수많은 신경 전달 물질의 양을 조절함으로써
위험에 민감하고 쾌락 보상에 집착하면서 잘 흥분하지 않고 수구적인 성격을
위험에 둔감하고 쾌락 보상에 둔감하며 잘 흥분하고 새로움을 추구하는 성격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전기적인 신호 해킹도 뇌에 전극을 꽂으면 어느 정도 가능하다.
가령 뇌 특정 부위에 전위차를 주면 '지금 슬픈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느낌이나 '지금 우스운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
(또한 그 감정에 연계된 기억이 더 잘 떠오르기 때문에 전위차로 유도된 감정은 스스로의 기억에 의해 증폭된다.)
즉 기술이 받쳐준다면, 유머러스한 성격(입력된 정보의 우스운 부분을 민감하게 캐치하여 잘 웃는 성격)을 만들 수도 있다.
이건 모두 통신 해킹에 대한 얘기다. 상위자아로부터 아바타를 조종하는 사이에 개입하여 해킹하는 것을 뜻한다.
미미한 자유의지의 집적으로는 수정하기 힘들었던 강한 현재속도를 약으로 후려쳐서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은 안그래도 작은 가속도 벡터를 더 하찮게 보이게 할 것이다. 그러나 강하게 후려쳐서 현재 속도를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은 가속도 벡터의 존재 여부에 아무런 근거도 되지 못한다.
학습을 통해 자유의지를 집적하여 성격을 바꿀 때엔 새로운 입출력 피드백 패턴을 내재화하여 신경 전달 물질의 분비량을 조절하거나 수용하는 민감성을 줄인다. 즉 피드백 회로를 수정한다. 이는 자유의지가 하위자아에 집적되어 하위자아를 수정하는 의미를 갖는다. 상위자아의 자유의지로 하위자아에 가치있는 인격을 구현하는 것을 하위자아의 존재의의로 삼는다고 한다면
'치료'의 폭은 '피드백 회로가 고장나서 증상을 감추어야 하는 상황'에 국한된다.
나머지는 치료라기 보다는 강제 성격 개조이다.
본인이 강제 성격 개조를 원하고 있는 경우라면 (환자를 치료하는 의미가 아니라) 부작용을 감안한 후엔 도구적 의미로 허용될 수 있다.
가령 다른 가치있는 모험을 하기 위해 위험에 민감한 성격을 잠시 접어두겠다고 생각할 수 있는 거니까. (또다른 예로는, 호모섹슈얼이 `이상이 있는 환자`가 아닐지언정 성향개조가 가능하다고 하면 자발적으로 헤테로섹슈얼로 자기 개조를 감행할 사람이 95%이상 될 것이다. 살기 힘들어서 자괴감 갖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하지만 본인이 원하지 않는 강제 성격 개조는, 글쎄 적어도 치료라는 이름으로 불리기엔 논란 거리가 많다. 정신병 치료 목적으로 뇌를 파괴했던 일에 비교될 수 있지 않을까.
얼마전 ADHD(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 장애)는 허구라는 ADHD 창안자 아이젠버그의 임종전 고백이 있었다.
(http://www.worldpublicunion.org/2013-03-27-NEWS-inventor-of-adhd-says-adhd-is-a-fictitious-disease.html)
피드백 회로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할 때 미성년자인 아이의 성격을 타인인 부모의 의지로 강제 개조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을것인가.
내 관념을 고수하면 쾌락 그 자체에 대한 관점은 다음과 같이 된다.
현재 흔히 퍼져있는 착각으로 보이는 '사람은 주관적인 행복의 감각을 목적으로 하여 행동하는 것'이라는 관념이 있다.
주관적인 행복이란 엔돌핀등 체내의 마약성 물질을 의미하므로
저 말은 어떤 행동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체내 마약성 물질을 생성하는 것이 삶의 목적이 된다. (* 마약성 물질은 그 물질 자체가 특별한 것이 아니다. 신호를 전달하자니 뭐가 됐든 전달자가 필요해서 어떤 물질을 사용하고 있는 것 뿐이다. 수많은 식물중 양귀비 꽃이 그 물질을 생성하는데, 만약 신경이 전달자로서 다른 물질을 체택했다면 장미꽃이 환각을 일으켰을 것이다.)
그렇다면 효율적으로 외부에서 향정신성약물을 주입하는 것이 나쁠 게 없다. 목적에 직접 도달하는 방법을 찾은 셈이 될 뿐이다.
금단증상이나 점점 약의 양을 늘려야 하는 약물 내성 효과등은 사소한 부작용이다. 옥시토신은 역치 증가를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으며, 언젠가 기술이 받쳐준다면 늙어죽을때까지 쇼크사 하지 않는 정도의 사용양으로 쾌감을 줄 수 있는 향정신성의약품도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술 담배 케익도 그 예시가 된다. 죽을때까지 향유할 수 있는 쾌락 증대 물질 말이다.
그러나 '상위자아의 자유의지를 집적하여 하위자아를 만들어가는 것'에 의미를 둔다면 (* 이익이 아니라 가치생성을 목표로 한다면)
약물의 근본적인 부작용은 피드백 구조에 혼란을 준다는 것이다.
약물에 의한 자극은 '이 행동을 통해 이러한 보상이 온다'는 피드백 구조에 개입하여 뒤헝클어 놓는다.
가령 이타성을 예로 들면, 본래는 지나친 이기성과 맹목적 이타성 사이의 어느 지점에서 적정한 내적 보상 수준이 결정되어야 하며 이는 학습 내재화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런데 본래는 행동의 결과를 뿌듯해하면서 분비되어야 할 보상이 더 편한 방법으로 주입된다면, 보상 수준 결정에 혼란이 생긴다.
그래서 이상적으로는 술이든 담배든 당분이든 카페인이든 마약이든
그 뒤헝클어 놓는 영향성의 양만큼 해롭고, 멀리하는 것이 좋다.
다만 어차피 하위자아가 학습할 때엔 자유의지의 결과가 고스란히 집적되는 게 아니라 환경의 변칙성으로 인한 노이즈가 작용하므로 일정 수준 이하의 약물에 의한 영향성은 무시되는 것이 사실이다. 약물에 의한 쾌락이 보상 구조를 손상시킨다지만 환경의 우연성에 의한 불노소득 같은 보상은 항상 존재하기 때문이다.
여담으로 어떤 작가가 자기가 영감이 떠오르는 순간의 뇌를 MRI로 촬영했다는 책을 읽었다.(서명 `굿바이 프로이트`) 그는 뇌는 모듈화된 신경 회로의 집합이며, 각각의 신경회로는 회로구조의 독특함 때문이 아니라 뇌에서의 위치에 의해 특징을 갖으므로, 따라서 모든 모듈은 각각의 자아를 가지며 통합된 단일 자아는 모듈화된 복수의 자아들 간의 역학관계 끝에 나타나는 허구라는 모델을 제시했다.
그는 자기가 언어적 창조적 영감을 얻는 순간 뇌의 언어영역(그의 모델대로라면 `말을 하는 나`가 될 것이다)에 대단한 활성화가 일어날 것을 기대했다. 그는 실험과정에서 영감을 얻는 순간을 찍는데에는 성공했으나 원하는 결과를 얻지는 못했다. 그의 언어영역은 일반적인 책을 읽을 때보다 약간 열심히 일하고 있는 정도였다. 창조적 활동을 할때 두드러지는 변화는 안쪽이마이랑(medial frontal gyrus)의 활성화였다. 우연히도 medial frontal gyrus의 위치는 머리 밖에서 보면 상단전이다.
뇌의 특정 영역이 활성화되는 것을 느끼는 것이 가능한가 라는 질문에 대해 그 책에서 대답하기를, 뇌에는 감각기가 없기 때문에 절대로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창조적 활동을 할 경우에 뇌의 어느 부위가 활성화되는가 라는 것은 MRI가 아닌 한 설령 해부를 할지라도 알 수 없다. 그런데 창조적 활동을 할 때엔 상단전이 빛난다는 말은, 석가모니가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인도에 전해내려온 것이다. 어떤 경로로 가능했을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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