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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언어적 소산이라는 설명이 있다.
이때의 언어란 개념 및 관념을 의미한다.
난 언어라는 표현보다는 관념이라는 표현이 더 잘 이해가 간다.
정의라든지 사랑이라든지 하는 관념들을 들었을 때 얼핏 머리는 이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감정을 포함한 전체적인 반응은 그것을 완전히 이해했을 때와 다르다. 개념의 포장지를 뜯고 내용물을 상상으로나마 복구시켰을 때에야 비로소 몸과 감정이 그것을 이해하고 반응한다.
만약 우리가 어떤 관념을 완벽하게 이해한다면, '그가 불의한 짓을 했다'라는 말을 보았을 때 실제 불의한 행동을 눈 앞에서 보는 것처럼 반응할 것이다. 사랑이라는 관념에 이름을 붙인 단어를 보고 애틋한 감정적 반응을 일으킬 것이며 섹시라는 단어를 보고 침을 흘릴 것이다. 그러나 실제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성이 사랑이라는 관념을 이해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사랑이라는 단어를 보는 사람의 감정과 그것을 가시적으로 만든 영상을 보는 사람의 감정은 다르다. 그 관념의 실제를 본다면 감정이 움직일 사람이 그 관념을 담은 단어만 보았을 때엔 감정이 움직이지 않는 다는 것은 이성이 관념을 이해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사실은 그 관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관념은 현상으로부터 파악해 놓은 특정한 패턴이다.
패턴이란 표현은 일상적으로는 규칙적인 신호나 무늬를 뜻하지만 여기선 법칙을 의미한다.
비록 패턴이라는 표현이 좀 더 넓은 의미를 갖기는 하지만 난 패턴이라는 표현 보다는 법칙이라는 표현이 더 잘 이해가 간다.
(스마일 이모티콘은 그 자체로 '도형 패턴'이지만, 동시에 그 작은 이모티콘들이 물결무늬를 이루며 규칙적으로 찍혀 있는 것도 이모티콘이 이루는 패턴이라고 한다. 패턴은 객체와 규칙 이 두가지를 다 의미한다.)
현상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무엇이 이 현상의 단위 패턴이 되는지(가령 스마일 마크가 반복되는 단위임을) 알 수 있으며 이렇게 요소를 파악하는 것을 분석이라한다. 현상을 전체적으로 보면 작은 요소들이 스마일마크인지 윙크마크인지는 알 수 없어도 그것들이 물결무늬를 이루고 있다는 큰 규칙성을 알 수 있고 이를 통찰이라 한다.
현상을 거시적으로 통찰하거나 미시적으로 분석하여 법칙을 읽어냈을때 그 법칙은 현상의 본질을 표현한다. 자연현상으로부터 패턴을 찾아내 수식을 만드는 것이 그 예다.
패턴이란 무엇이 어떻게 돌아간다는 법칙을 의미한다.

학습을 한다는 건 패턴을 습득하는 것이다.
사람이 학습을 할 때엔 관념을 그 자체로 습득하지 못한다.
예제가 되는 현상이 있어야 그로부터 법칙을 파악해서(패턴을 파악해서) 습득할 수 있다.

현상으로부터 패턴을 파악하는 것을 연구라고 한다.
연속되는 음파중에서 반복되는 특정한 음파 패턴을 '어휘'로 삼고 다시 그 단위 패턴이 반복되는 전체 패턴인 말을 연구하는 것처럼(어려서 말을 배울때 누구나 이렇게 한다), 패턴의 전체적인 규칙성을 연구하려면 단위가 되는 패턴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그래서 법칙(전체 패턴)을 연구할때에는 관념(단위 패턴)을 이용해야한다.
객체화 된 패턴, 즉 관념은 거기에 이름을 붙여서 어휘가 된다. 연구는 관념을 이용해야 하는데 관념은 언어로 이름 붙여진다. 그래서 연구가 관념을 이용하기 위해 호출하려면 그 관념에 이름을 붙인 언어를 통해야한다.
이것이 철학은 언어적 소산이라는 설명의 의미다.

'언어적 소산'이라는 표현을 두고 연구가 언어에 종속된다고 이해하는 것은 틀린 이해다.
이때 언어란 '기존에 알려진 관념들'을 의미한다.
특정 패턴을 뭉쳐서 관념으로 객체화 하지 않으면 전체 패턴으로부터 법칙을 추출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가령 쿤의 연구는 패러다임이라는 관념을 새로이 만들어 넣어야 가능하다.
내가 파악한 관념이 기존에 없던 개념이라면 거기 이름을 붙여 어휘를 새로 만들어서 언어의 지평을 넓이는 것은 자유이므로, 언어가 근본적으로 연구를 제한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떤 현상을 분석하여 법칙을 찾을 때에 '기존에 알려진 관념들'의 도움을 받지 못하여 독자적으로 새로운 관념을 생성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면, 가야 할 길이 너무 멀어져서 능력의 한계을 만나기 때문에 어휘라는 기존에 파악된 관념들에 크게 의존하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이는 수학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나 수학은 철학에 비해 국가별 언어에 따른 관념 차이가 없어서(수학의 관념, 수학의 언어를 사용한다) 이 점이 부각되지 않는다.
과학의 경우에도 기본적으로는 수학과 같으나 수학은 관념의 체계인 패러다임이 교체되지 않았던 데에 비해 과학은 패러다임 교체를 통해 '과학의 관념, 과학의 언어'가 변경되는 일을 지역적 경계가 아닌 시간적 경계를 따라 맞이하곤 했다는 점이 다르다.


사고력 증진을 위해서 독서가 권장되곤 한다.
책을 읽어야 사고력이 증진되는 이유는 책이 문자 매체의 한계로 인하여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선 관념을 다루는 능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영화나 그림이나 음악이나 게임등의 다른 매체들에 비해 책은 그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관념으로부터 현상을 풀어내는 상상력을 한층 더 요구한다. 그래서 독서의 과정이 독자에게 개념 이해력을 길러주고, 이렇게 길러진 개념 이해력(패턴을 이해하는 능력)은 다른 현상으로부터 법칙을 연구하는 데(패턴을 파악하는 데에)에 유용하게 사용된다. 아기가 언어를 배우는 것이 언어를 연구하는 것이듯, 현상으로부터 법칙을 찾아내어 이해하는 이러한 능력은 특정 직업에 국한 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생활 전반에 요구되는 사고 능력이 된다.
설령 내용 측면에서는 책이 담을 수 있는 모든 내용을 영화나 그림등의 매체에 더 잘 담을 수 있다 하더라도 독서가 권장되는 이유다.
Posted by 노크노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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