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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품

노크 노트/연애담 2011. 9. 28. 15:31
 - 배우자감으로서 좋은 인품이 뭔지를 생각하는 글을 읽은 후 작성 -

인품은 나와의 관계하에서 드러난다. 
이게 객관적인 의미의 인품이 무의미하다는 뜻은 아니다. 인품은 색과 같다.
빨간색 물체는 백색광 아래에선 빨갛지만 황색광 아래에선 주황색이며 빨간 조명 아래에선 흰색과 구분 할 수 없다. 하지만 빨간 조명을 뺀 다른 모든 조명 아래에서 흰색과 빨간색은 다른 색이며, 객관적으로 흰색 물체는 빨간색 물체와 다른 색 물체다. 이를 극한 상황에선 선량한 시민도 피빛 살인자와 구분 안된다는 것에 대입해보면 인품에 대한 이야기가 된다. 
사실 이건 색 뿐만이 아니라 오감이 다 마찬가지다. 관찰 객체는 나와의 관계를 무시하고 관찰 되는 것이 아니라는게 상대성 원리니까. 인격도 관찰 객체로서 같은 성질을 보여주는 셈이다.

나와의 관계에 따라 인품이 다르게 드러나는 건 중요한 성찰이다. 난 이 점에 속아본 기억이 많다. (실망의 첫기억은 국민학교 교장선생님을 면담하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판단을 내린 후 부모님께 전학을 주장했던건데, 그땐 교장쌤 인품이 나랑 뭔가 상관이 있을 줄 알았다.) 
직장이 됐든 친분이 됐든, 관계는 변한다. 나와의 관계에 대한 고찰 없이 '이 사람이면 믿을 수 있다'라는 확신은 별 소용이 없었다. 사람에 대한 믿음은 분명히 관계의 변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제한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안 그러고서 후에 주관적으로 배신 운운하는 건 별 의미가 없다. 오히려 관계 변화를 무시하고 동일한 행동을 하면 그게 더 이상하게 보이게 된다. 

그런데 배우자감의 인품을 볼 때엔 중요한 딜레마가 숨어있다.
배우자 관계에서의 인품을 판단할 때에는 필수적으로 개입하는 변수가 있다.
사랑. 
사랑하지 않으면 만나지를 않겠지. 그런데 사랑하면 평소 이상으로 잘해준다. 게다가 사랑은 반드시 식는다. 
무수한 청춘들이-나도 청춘이다만- 영원히 식지 않는 사랑을 주문하지만 그건 식지 않는 커피를 주문하는 것과 같다. 시간이 지나면 정은 남을지언정 끓는 사랑은 반드시 식기 마련. 
이제 확인해야 하는 건 식어도 떫거나 쓰지 않고 괜찮을 차를 고르는거다.
뜨거울때 맛나는 차를 고르는 것과 식어서 괜찮을 차를 고르는 건 판단 기준이 다르다. 
일반적으로 쉬운 판단이 아니며 어쩌면 비정상적인 선택이 결론으로 튀어나올 수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랑에 속는 결론에 이르는 세상에서 상식적인 결론이란 사랑에 속는거다.)

사랑에 빠져서 무조건 오냐오냐하는 사람은 사랑이 식으면서 반드시 변한다. 
무엇이 사랑인지 경계를 나누어 말로 표현하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만,
제한적으로라면 가능하다.
이런 경험 있는지? 상대방을 만났을 때 사고기능이 떨어지고-머리속이 하얗게 되기도 하고 말이 버벅여 나오기도 한다. 일반적인 교우관계에서의 사고 기능 대비 기능 저하- 
나와의 관계에서 이익과 손해가 무의미하고 
그 사람을 가질 수 있다면 내 큰 부분을 포기해도 상관 없을 듯한, 가치 판단 마비의 감각.
최소한 이런 건 호르몬적 사랑 특수다. 
곧 호르몬에 눈먼 사랑 특수를 배제하는 것이 첫째다. 
이제 감정 관계를 다섯 가지로 나눠본다.
1. 호르몬적 감정 특수. 가치 판단이 저하된다. 타인을 놓고 볼 때에는 '나를 좋아해서 저렇게 하는 거구나'라고 느껴지는 모든 행동이 이에 속한다.-이 '좋아해서' 라는게 연애 감정이라서.
2. 좋음. 당신 옆자리에 직장 동료가 좋은가? 이 좋음은 그런거다. 사랑과는 다르다.
3. 보통. 
4. 싫음. 
5. 증오로 사고 마비.
나는 항상 감정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어느 영역의 내가 '평소의 나'일까? 
1은 분명 아니고, 2~4 사이 정도면 평소의 나라고 할만 하다.
배우자와의 관계에서 내가 평생을 함께 할 사람도 '평소의 그 사람'이다. 
즉 1은 분명히 잠깐 머물고 떠난다. 이후로 내 배우자는 2~4 사이를 오가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배우자 감으로서의 '식어도 괜찮은 차'는 stable한 저점 상태가 2로 모이는 사람이다. 
사고기능 저하가 없는 상태에서의 좋음, 이것이 익숙함과 더해져 소위 '정든 감정'은 물론 넓은 의미에서는 사랑으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으나 이때의 내가 평소의 내가 아니라고 하기 어렵다는 면에서 사랑 특수와는 구분할 수 있다.

사랑의 농도를 예찬하는 문화를 많이 접하다 보면 이에 세뇌되어서는, 많은 사람들이 1의 상태-감정 특수 상태에서의 잘해줌을 보고 사람을 선택한다. 허나 감정 특수 상태에서의 사람은 '평소의 그'를 장막으로 가린 것과 같아서, 장막 뒤의 평소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눈가리고 제비 뽑기나 마찬가지라는게 내 생각이다. 사랑 때문에 하는 게 분명한 행동들은 그 사람을 평가할 때 고려 대상이 아니다.
이런 생각이 자리잡으면 '무리해서 잘해줘도 잠깐 좋아하고 그때뿐인 사람'이 된다.
사랑 때문에 무리하게 잘해주는 건 받을 필요도 없고 하지도 않는 상태가 내 이상향이다.

그럼 무엇을 보아야 하는가의 결론은, 
- 애증이 다 진정되고 난 후의 모습이 좋음으로 귀결될 때 배우자 감으로 적합하다. 
- 흔히들 예찬하는 사랑의 농도는 무의미하다. 영혼을 바칠듯한 사랑? 받아보고 주어 봤는데 지나고 나니 아무 쓸데없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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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노크노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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