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52024  이전 다음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도올의 다원주의적 중용론을 참조해서 예전에 정리했던 것.

중용은 좌우의 중간에 있는 어느 회색분자의 주장만이 옳고, 좌도 우도 그르다고 하는게 아니다.
극좌부터 극우까지의 스펙트럼을 사회안에 포괄하여 누군가는 이런 말도 하고 누군가는 저런말도 하는 가운데 종합된 의견의 무게중심이 잡히는 것을 의미한다. 즉 중용은 다원주의다.

레이저는 집중된 단색광이다. 레이저는 강력한 힘을 낸다는 점에서 매력적이고 그래서 이 단색광의 힘에 매료된 사람들은 사회의 집중을 방해하는 잡다한 뻘소리들을 제거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틀린 의견도 죽이지 말고 내버려 둬야 하는 이유가 있다. 틀린 의견을 다 죽여버리면 내 자신의 위치를 알 수 없어지기 때문이다. 배경이 있어야 현위치를 알 수 있다. 좌와 우가 말살되어 사회가 단색광이 되어갈수록, 비교대상이 없는 상태에서 자기가 중도임을 판단할 방법은 없어진다.
다원주의적 중용의 방식에서는 틀린 의견은 틀린 의견 만큼의 설득력을 가지고 소수의 지지자를 모으고 올바른 의견은 그만큼의 설득력으로 많은 지지자를 모아서 결국 사회의 무게중심은 올바른 의견이 차지하게 된다. 반면 단원주의는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만 남기고 나머지를 틀어막아버리기 때문에 비교할 배경이 없어져서 결국엔 이게 중도적 의견인지 극우인지를 구분할 수가 없어진다. 배경에 보이는게 아무 것도 없으니 현 위치가 어디인지 알 수가 없다. 결국 뻘소리를 탄압하던 단원주의는 종국엔 항상 극단적인 주장으로 치우쳤다. 나치나 소련이나 북한처럼.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레이저는 중도적 색을 갖을 수 없다. 항상 어디론가 치우쳐 버린다.

문제는 또 있다. 다양한 스펙트럼의 총체에서 발생하는 중용은 의견의 상향전달을 의미하나 단색광에 집중된 하나의 힘은 의견의 하향전달을 의미한다. 다양한 스펙트럼에서 무엇이 중도이고 올바른지에 대한 판단이 발생하는데 대중이 이 다양한 스펙트럼을 잃고 나면 통치자의 판단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 밖에 없다. 시야에 배경이 없어져서 여기가 어딘지를 가늠하기 어려우니 통치자 몇몇이 이 방향이 옳다고 하면 사람들은 눈 감고 따를 수 밖에 없다. 통치자의 판단에 대한 피드백이 불가능해진 시스템은 통치자가 부도덕할 때 그걸 제지할 방법이 없는 시스템이고 이는 통치자 입장에서는 타락의 유혹이 너무 큰 시스템이다.
하향전달되는 하나의 의견이란 건 단지 지배자의 군중 세뇌가 될 뿐이다.

좌와 우가 병존해야 가운데에 '중'이 있다.
왼쪽이 죽으면 오른쪽은 오른쪽이란 가치도 잃고 독선이 되며
독선은 피드백을 받지 못하기에 결국엔 악이 된다.
그렇기에 중용은 다원주의다. 대중의 시야에 배경이 살아있어야 여기가 중도인지, 통치자가 올바른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의견의 상향 전달과 통치자에 대한 피통치자의 감시를 필요로 하는 민주주의가 다원주의를 유독 중요시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노크 노트 > 사회관1 부조리연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조리를 어떻게 고칠 것인가?  (0) 2013.11.04
남자VS여자의 프레임에 빠지는 것이 싫다.  (2) 2013.08.08
사회 진화의 동력  (0) 2012.12.12
요동치며 우상향  (0) 2011.06.10
시스템 버그  (13) 2011.06.07
Posted by 노크노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