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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물 혹은 멋진신세계 같은 쾌락충족형 디스토피아물이 그리는 세상은 서로 유사하다. 이는 모든 문제가 해결된 유토피아가 실제로는 이상사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생존이 공짜이던 시절 뭘하면 '재미'있을까를 답없이 고민했었다. 답은 없었다. 생존이 공짜가 되면 생존의 노력이 의미를 잃어 가치와 감각이 뒤틀린다.
간절한 꿈도 희망도 성공도 행복도 생존을 위한 노력에서 온다. 살아남기 위해서 기존에 안하던 짓까지 해가며 움직이는 것이 성취를 만들고 이는 곧 단순 생존 이상의 큰 성공으로 직결되기에 이른다.

매슬로우 욕구론을 생각하면서 아이에게 생존의 공포를 배제해 주고 풍요롭게 하면 고차원적인 열정을 갖지 않을까 기대했었다. 실상은 아니다.
아이를 바르게 키우는 것은 결핍이다.

생존 공포의 완전한 배제는 생존을 위한 노력의 의미를 거세하는 것과 같다. 유토피아라고 그린 사회가 디스토피아에 가까워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행복감은 효율을 높이고 마인드 셋을 바로잡아 행운을 부른다. 그러나 생존을 공짜로 만드는 풍족이 행복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치트키를 켜서 난이도를 0으로 만들어 버린 게임은 지루한 노가다에 불과해지는 것처럼.

Posted by 노크노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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