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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산업은 더 강한 쾌락 더 강한 흡입력으로 시간과 돈을 끌어들이는 방향으로 발달하고 이 미션을 더 잘 하는 쪽으로 교체되며 진화한다. 마케팅 기법은 소비자의 돈과 체류시간을 이끌어내기 위해 엄청난 연구자금과 적자생존 압력을 받아서 발전한다.
한편 소비를 증폭하는 마케팅의 반대편에서 절제하고 합리적인 소비자가 되기 위한 소비자학과는 돈이 안되는 학문이라 발전이 훨씬 더디다. 소비자학, 불교적 금욕주의, 청교도 금욕주의 등. 학문으로서건 금욕적인 사상이나 종교로서건, 절제 기법은 과거에 존재하기는 했지만 이제는 주목받지 못하고 가풍 같은 가내수공업 수준으로나 전수되는 상태다. 돈이 안되기 때문이다.

자정은 없다. 자본주의는 경제가 지속적 성장을 해야만 돌아간다. 성장이 있어야 돈이 자본으로서의 가치를 갖고 순환이 이루어지면서 사회가 돌아가기 때문에 경제 성장이 사회를 살게 하는 심장 박동과도 같다. 그래서 자본주의에서 경제성장은 이념이나 종교를 뛰어넘는 최고선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 성장을 돕기 위해 빚과 소비가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구조다. 이 구조하에서 경제성장의 동력은 그 부작용 쯤은 쉽게 무시하게 되어 있다.

그 결과는 인류 전체의 쾌락 중독으로 나타난다.
책보다 TV, TV보다 스마트기기의 보편화를 거쳐 이제는 sns, 유투브 쇼츠, 게임, 원나잇을 위한 플랫폼 어플 등 더 자극적이 되기에 성공한 혁신들이 쉬운 쾌락을 제공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빈곤층 조차도 24시간 쉼없이 쾌락을 쫓을 수 있는 환경으로의 혁신을 거듭하고 있다. 체제의 방향성이 이러면 환경을 거부하는 개인은 소수이고 전반적으로는 쾌락 중독으로 끌려 간다.
결국 외부에서 요구하는 대로 시간과 돈을 있는대로 쥐어짜서 쓰면서 '엄청나게 썼지만 더 쓸 수 없어서 빈곤하다'라는 상태에 빠진다. 전 인류가.

그리고 이 효과는 쾌락을 위한 혁신에 어려서부터 더 많이 노출되는 세대일수록 강하게 나타난다. 가령 sns 부작용은 sns에 어려서부터 노출된 디지털 세대 일수록 강하게 겪을 수 밖에 없다. 결국 인류 전체를 놓고 보면 세대가 갈수록 쾌락 중독에 더 노출되고 절제력은 약해질수 밖에 없는 구조다. 그 결과 난 인간의 세대는 실제로 퇴행하고 있는 것 같다. 젊은 세대가 살기 힘들어 하며 번식 중단으로 멸절되어 가는 것의 근본에 이 인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쾌락을 동기로 생물의 행동을 이끈다고 할 때 더 큰 쾌락을 제공하는 제품간의 경쟁이 누적되면 결국 생명활동의 쾌락보다 제품이 제공하는 쾌락이 더 높아져서 자멸하는 결과가 온다.
삶의 객관적인 난이도(가령 집값이니 돈이니 이런 요소들)는 부차적이다. 아무리 게임이 쉬워도 능력치가 감퇴하는 플레이어는 결국 죽기 마련이므로 근본 원인은 난이도가 아니라 능력치 감퇴를 유도하는 인과에 있다. 
세대는 연속성을 가지고 적응하고 진화한다. 쾌락 중독의 환경을 만들어 놓고 어떤 경우에도 미래세대가 망가질리 없다고 하는 건 억지다.

개인으로서의 생존 전략은 자녀가 쾌락 중독에 빠지지 않게 절제를 훈련하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sns에 에너지를 쓰고 쇼츠에 주의집중력과 시간을 쓰는 것이 최악인 것 같다. 나도 게임에 인생을 많이 팔아먹었고 그만큼 밑진 결과를 살고 있는 셈이지만 지금으로선 sns와 쇼츠가 게임보다도 더 최신 혁신, 최대 독성으로 보인다. sns랑 게임을 비교하면 매체를 보는 시간을 넘어 sns에 보여지는 인생에 에너지를 쓰는 양이 크니까.

자본주의 체제가 쾌락 중독으로 인한 인구 문제로 대위기를 맞게 되면 그때쯤 고통스런 디레버리징과 함께 금욕적으로 성공한 누군가가 성공 모델로 쓰이면서 전환점이 오겠지. 그때까지 쾌락중독에 휩쓸리지 않고 살길을 찾아나가는 것이 개인으로서는 최선이 될 것이다.

청교도 금욕주의는 자산을 사치로 탕진하지 않고 모으는 것이 선이라는 관념으로 초기 자본주의 발전에 큰 축이 되었다. 지금에 와서는 소비적 낭만주의에 가려 잘 기능하지 않고 있는데 쾌락중독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자본주의 체제가 유지되도록 하는 해법의 단서가 될 것이다. 다음에 더 생각해보자.

Posted by 노크노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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