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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안84의 노병가를 보고 있자니 생각이 많아진다.

조직이 없는 개인은 조직에 흡수된다.
때문에 생존의 단위는 조직이다.
그러나 조직도 무소불위의 개체가 아니다.
조직도 외압에 시달리고, 개체로서 생존하기 위해선 다른 조직과의 경쟁에 도태되지 않아야 하며,
조직의 상사에게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

조직이 생존하기 위해선 안으로는 조직이 자생할 수 있는 생활의 룰이 돌아가야 하며 밖으로는 임무 수행이 효율적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조직은 깨진다. 처음엔 압박을 받는 정도이다가 그걸로 안되면 조직의 통솔자를 더 잘 닥달할 수 있는 사람으로 바꿀 것이고 그래도 안되면 조직을 와해시켜서 다른 조직에 흡수시킬 것이다. 와해된 조직의 구성원들은 타 조직에서 더 작은 지분과 권리를 가지고 더욱 괴로워진다. 조직이 깨지는 건 생존의 문제다.

조직의 행동을 결정하는 판단의 과정은 민주적인 브레인 스토밍이 되는 경우도 있고 독재자의 독단이 되는 경우도 있으나
어쨌건 조직은 단일 개체로서 중구난방이 아닌 판단을 내려야 한다.
판단 내려진 명령과 지시를 팔다리는 빠릿하게 수행할 수 있어야 하며
세대교체되는 신입들을 교육해서 조직의 구조를 유지해야 한다.
노병가에서 묘사하는 의경 부대 구조는 이런 식이더라.
팔다리를 쓰는 일을 하지 않는 열외. (판단자+판단자가 일 시켜먹기 부담스러운 급들)
실무를 챙기는 책임을 지는 '챙'.
그 밑으로 팔다리가 되어 일을 하는 배식이나... 막내들.
수직 구조의 조직에서 팔다리가 "빠지지 않게" 관리하는 것은 챙의 몫이다.
그리고 그 이하의 구성원들은 각자 자기 후임들을 교육시켜서 이 구조속에 넣는다.
이 수직구조에서 하극상이 중간관리자를 깨버리면, 조직의 유지와 보수는 이루어지지 못하고 조직은 깨진다.
조직이 깨지고 나면 개인은 살아남지 못하기에 이는 생존의 문제가 된다.
생존의 문제는 종종 선악보다도 중요한 것이 된다.

작중에 김명호라는 사람이 나온다. 위로 인정받고 아래로 관대한 엘리트다.
김명호가 실세가 되었을때 그는 후임들을 힘들게 하는 온갖 악습들을 파격적으로 해체한다.
짬 안돼서 잠 못자고 고생하는 후임들 재우기, 고참이라고 막내들에게 근무 전가하지 못하게 하기, 1-2분만에 씻고 나와야 했던 후임들 여유있게 씻고 나올 시간 주기... 다른 고참들의 불만도 자기 세력으로 "닥치게 하고" 조직내 부조리를 일소한다.
그런 김명호가 두번 심하게 화낸다.
하나는 하극상이다.
권투하다 군대온 이준희는 고참의 부당한 명령에 고참 둘을 때려눕힌다.
그 때 김명호는 이준희를 집중적으로 찍어누른다.
이준희가 사과를 하건 뉘우치건 받아주지 않으며 그가 완전히 조직에 굴복할 때까지 압박한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 이준희가 조직의 구조에 완전히 순응했을 때,
김명호는 이준희를 하극상과 정반대의 입장인 조직의 구조를 수호하는 역할로서 힘을 쓰게 한다.
김명호는 왜 이준희를 찍어눌렀을까. 난 그 이유가 이렇게 보였다.
이준희가 가한 힘의 방향은 조직을 와해시키는 방향이다.
이준희가 자기가 때려눕힌 중간급을 대신해서 조직을 유지하는 일과 교육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이준희의 힘의 방향은 힘이 충분하다고 할 경우 조직을 와해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는 근본적으로는 그 조직이 경직된 수직구조인 탓이다.
이런 구조의 조직에선 아래로부터 부조리를 바로잡고자 하는 노력 조차도 곧바로 조직을 깨버리는 방향의 힘이 되어 버린다.
그러나 소대 외부의 구조가 여전히 군대인 이상은, 안에서 하극상을 용납하면 그 내무반이 '빠져서' '나가리되고'(수족이 판단에 따라 움직이지 않아 성과가 떨어지고 조직 윗선으로부터 나쁜 평가를 받아서) 외압에 시달리다가 와해되는 결과가 된다.
때문에 이준희의 하극상이 부조리에 대한 저항이며 옳다고 할 지라도
그 힘의 방향이 조직을 깨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는 한은 저지시킬 수 밖에 없다.
한편 노병가에 장기 병가자가 자기에게 인사 안하는 후임을 갈군 건에 대해서 병가자를 까는 에피소드가 나온다.
이 경우에는 병가자를 깨는 것이 조직 운영에 아무 지장을 주지 않는다. 힘의 방향이 조직을 깨는 방향이 아닌 경우다.

김명호가 화를 내는 다른 한 번의 사건은 타 조직과의 경쟁에서 공개적으로 낙오되었을 때다.
중대가 자기 구역에서 타 중대와의 경쟁에서 공개적으로 낙오되었을 때 김명호는 절대 터치 않던, 그래서 자기가 갈구면 "미쳤나봨ㅋㅋ"라고 답하던 자기 바로 아래 기수를 때리며 온 조직을 빡시게 굴리기 시작한다.
경쟁 조직과의 경쟁에서 밀리면 그 조직은 외압을 받게 된다. 조직이 윗선에서 가해지는 외압의 초기에 대응을 흡족하게 하지 못하면 외압은 점점 더 구체적이 되고 조직은 점점 더 각박해진다. 통솔자를 압박하고-그래도 안되면 통솔자를 더 각박하게 운영할 사람으로 바꾸고-그래도 안되면 조직을 개편하는 식으로.
결국 김명호가 화를 낸 두가지 일은
선악의 맥락에서 보자면 일관성이 없으나
조직에 위협이 되는 방향의 힘에 대하여 조직을 보호하고자 하는 생존의 맥락으로 해석할 때엔 일관성이 있다.

노병가를 보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했다.
나는 아주 개인주의적인 사람이다.
지금도 아주 개인주의적인 조직에 속해있다.
나는 조직을 위해 내 영역을 헌신하는 것에 익숙치 않다.
나랑 아주 친했던 내 이전 상사는 아주 개인주의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더 큰 조직이 우리 조직에 헌신을 요구할 때 아래를 쪼는 게 아니라 외압에 맞서는 사람이었다.
그러다 그는 다소 눈밖에 났고, 그는 다른 종류의 자리를 제안받아 이동하였으며, 그의 자리는 우리 조직내의 다른 사람에게 넘겨졌다.
새로운 내 상사가 된 사람은 이전 상사보다는 덜 개인주의적인 사람이다.
정확히는 그 자신도 우리 조직의 일원이었기에 개인주의적인 속내를 가지고 있으나 그러다가 눈밖에 난 선례를 염두에 둬서라도 외부를 상대로 개인주의적인 생각을 드러내는 것을 대단히 기피하고 있다.
만약 바뀐 사람인 그가 우리 조직으로부터 만족스런 성과를 이끌어 내지 못한다면 그 다음엔 조직 외부에서 낙하산인사를 붙이는 방법이 있다. 그렇게해서 분위기 쇄신 하라고(쪼라고) 외부인사를 불러오면 그는 개인주의적인 조직을 갈아엎으려는 방향으로 움직이겠지.
내가 개인주의적으로 살기 위해선 내가 몸담고 있는 개인주의적인 조직을 보호해야 한다. 내 조직이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며 그것을 염두에 둔 헌신이 필요하다면 근시안적으로 헌신을 아끼기 보다는 수행해야 한다.

과거에 내가 상명하복을 거스르고 위를 깐 게 두세명 정도 있다.
당시엔 내 성질 못이겨 거스른 것 뿐이었다.
'이 자를 완전히 묻어 죽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궁리했지
그 하극상 비슷한 것이 내 미래에 어떻게 작용할지는 모르는 채였고
그래서 이래도 내가 장차 괜찮을 건지 모르겠다는 불안감이 있었다.
지금도 과정에 불과하지만 어떻게 내가 여태 무사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를 알 것 같다.
정치적인 교섭은 물론이고 하극상조차도
그것이 성공하려면 조직의 존속을 위협하지 않는 방향으로 힘의 방향을 잡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사안의 선악도 중요한 명분이지만 조직 유지는 생존이라는 중요한 명분을 기본적으로 깔고 간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

이제 중간급인 나는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이번에 나이차가 좀 나는 사람들을 여럿 뽑았다.
이들에게 잡다한 것들을 알려주는 것은 귀찮은 일이고 꼭 내가 해야 할 일도 아니지만,
친절하게 알려주려고 하다 보니 내게 물어보는 사람이 늘어났다.
이게 단지 귀찮은 일이 늘어나는 것 뿐인가 생각했었으나 노병가를 보면서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이 조직의 생활과 상식을 나를 통해 교육하는 것은 나에게 이롭다.
이전과 똑같이 개인주의적으로 행동할 지라도
중간급인 나는 '개인주의적인 조직을 보호함으로써 개인주의적으로 행동할 터전을 보존한다'라는 관점을 유지해야 한다.
나한테 뭐라 할 사람 없는 만큼 자유롭게 행동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나 혼자 개인주의적으로 행동하고 조직에 대한 헌신을 비웃으면 나는 후배에게 나만 '빠진' 선배가 될 뿐이며 그 결과는 나를 조직의 중심에서 밀어낼 것이다.
개인주의적인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 구성원에게 너무 헌신을 요구하지 않는, 그러면서도 나 스스로도 따르는(적어도 내가 가르친 룰을 내가 무시하지 않는)
지속이 가능한 룰을 가르쳐주는 관계를 유지할 때 그 관계는 내게 수평/수직적 정치 관계에 있어 큰 힘이 될 것이다.

흔히 사회의 부조리를 밑에서 고칠 것이냐 올라가서 고칠 것이냐, 라는 말을 한다.
동시에 '올라가서 고치면 된다는 생각은 일견 쉬워보이지만 올라가는 과정에서 조직에 동화되기 때문에 올라가서는 고치지 못한다'라는 말을 한다.
그러나 부조리를 고치고자 하는 정의감에서 비롯된 하극상이건/내 한 몸 편하겠다는 사사로운 뺑끼에서 비롯된 하극상이건,
그 힘의 방향이 조직을 깨는 방향이면 그것은 결국 생존에 대한 위협을 하는 셈이 된다.
하극상조차도 그것이 성공하려면 조직의 존속을 위협하지 않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은
누군가를 깨기 위해선 그 깨고 난 자리를 매울 수 있어야 성공한다는 것이며
이는 내가 내 자리에 매울 수 없는 관계를 만들어 놓을수록 유리한 입지를 접하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노병가를 보면서
부조리를 고치는 데에 성공하기 위해서도, 내 일신에 이익을 위해서도 조직 규모에서 판단하는 관점을 갖는 것은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조직에서 발생하는 부조리에 대해
생존이라는 강력한 명분을 적대시 한 방향에서
조직의 입장을 염두에 두지 않은 채 부조리를 개선 하려 한다면
그 개선은 성공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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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노크노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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