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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독재국가 북한과의 대치상태라는 환경으로 인하여
오히려 한국은 사회주의를 비판하기 어려운 나라다.
반공반북의 무조건적인 비난에 비판이 묻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를 공격하는 사람은 사회주의를 절대악으로 다루어 무조건 비난한다.
사회주의를 옹호하는 사람은 무조건적인 비난을 적들의 음해로 듣기 때문에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다.
그래서 한국의 사회주의는 비판받지 않는다.
사회주의를 싫어하건 좋아하건
모두가 자신이 사회주의가 무엇인지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사회주의란 좋은 것or나쁜 것에 판단을 이미 내려놓은 상태에서 회의 없이 공격이나 추종의 행동만을 한다.

내가 파악하는 현재 한국의 사회주의의 위상은 이렇다.
자본주의하에서 절실히 필요한 '분배정의'라는 가치를 찾고자 한 시도, 그래서 사회주의는 분배정의를 중시하는 진보의 마음의 고향같은 지위를 갖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영향력은 결코 작지 않다.
나는 팽팽했던 이번 대선을 판가름한 변수를 사회주의에서 찾는다.

이번 대선에서 시대적 과제가 신자유주의 탈출이라는 데에는 세 후보 캠프 모두에서 합의가 된 사항이다.
세 후보는 표면적으로 대동소이한 대안을 들고 나왔고 그건 모두 복지를 강조하고 있었다. 하지만 안을 들여다 보면 차이는 분명했다.

박근혜가 하고자 하는 것은 이렇다.
'잘살아보세의 신화를 다시 한번 이루어낸다' : 잘살아보세는 박정희의 권한&책임 집중형 리더십을 통한 경제 개발로 난관을 극복하는 거다.
'줄푸세를 잘 하면 경제 민주화' : 대선토론에서 한 말이다. 줄푸세는 세금 줄이고 규제 풀고 법질서 세운다의 약어로서 신자유주의의 영혼같은 말이다. (개인적으로 굉장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전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이념을 이보다 쉽게 표현할 수 있을까?) 이 말을 하는 박근혜는 '신자유주의를 똑바로 해보겠다'는 각오를 하고 있는 걸로 보인다.
경제 민주화가 신자유주의를 탈출하기 위한 노력 임을 생각할 때 저 말은 표면적으로는 말이 안된다.
하지만 박근혜가 '신자유주의를 똑바로 수행하면 신자유주의의 폐단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라고 해석하면 의미가 통한다.
국민이 박근혜에게 기대하는 것은 '박정희 리더십'이다. 박근혜 본인도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제가 전문가들과 의견을 모아서 알아서 잘 하겠다'이다. 즉 요약하면 신자유주의의 폐단을 어떻게 탈출하시겠습니까 라는 시대적 질문에 박근혜는 '모든 권한과 책임을 위정자가 짊어지고 신자유주의를 똑바로 운용함으로써 해결하겠다'라고 대답한 것과 같다. 그녀는 무한책임 타입의 리더로서 소환되었다.
비록 복지 공약이 있긴 하지만, 박근혜의 지지자들은 박근혜가 공약을 산술적으로 이행하지 않는다고 해도 크게 개의치 않을 것이다.
그들은 '상황 편치 않으면 공약이야 안지킬수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할지언정 '결과만 잘살게 되면 되지요'라고 말하고 있는 셈이다.

문재인은 민주당을 장악한 친노세력의 대표로서 출마했다.
친노의 정체성에 대해서는 (패배한 현재로선 전반적으로 상당히 불공정한) 다양한 평가들이 병존하지만, 나는 친노는 이념에 충실한 중도 좌익이라고 판단한다.
민주당 비노 세력이 호남 지역주의 세력으로서 이념에 충실하지 못하여 중도 좌익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위치였는데 비해
친노는 지역주의를 타파하고 이념에 충실한 중도 좌익 세력으로 위치하는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안철수의 단일화 토론을 보면서 나는 문재인이 완급조절하는 사회주의자라는 인상을 받았다. 사회주의자인 이정희와 이상향은 같은데 완급에서만 차이가 나는 '중도' 좌익.
이는 한국의 좌익이 전통적으로 사회주의에 이념 기초를 두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념에 충실한 중도 좌익인 친노는 결과적으로 '완급 조정했지만 역시 사회주의자'들이 되는 것이다.
수정자본주의자 안철수와, 완급조정해도 이상향은 사회주의자 친노의 차이는 문-안 둘 다 보편적 복지를 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드러난다.
안철수의 복지는 '자본주의하에서 선의롭게 행동하던 플레이어들이 리스크로 인해 한순간에 몰락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한 안전망'을 의미했다. 안전망이란 '자본주의의 길을 가는게 위험하면 아래 안전망을 깔아줄테니 두려움 없이 자본주의로 가라'라고 말하는 셈이다.
창업 실패로 재기 불능이 되지 않도록 하는 복지라거나,
혹은 자본주의에 충실한 구성원인 중산층이 중병 등으로 한순간에 몰락하지 않도록 하는 제도 등이다.
이에 비해 문재인의 복지는 취지가 달랐다.
가령 의료비 최대 100만원 상한선 제도를 포함하여 공약이 모두 사회주의적 이상을 점진적으로 실현하는 과정으로서 '자본주의의 길은 어쩔 수 없이 가고 있긴 하지만 점진적으로 안가야 하는 길이다'라고 말하는 셈이었다.
안철수가 추구한 것이 현실 지속 가능한 자본주의 였다면
문재인이 추구한 것은 현실 구현 가능한 사회주의로 보였다.

친노 민주당이 이념에 충실한 집단임은 안철수와 문재인의 말을 봐도 드러난다.
안철수는 처음에는 자신의 정치적 주장은 '거대한 이념 같은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했었지만 문재인과 만났다가 멀어지면서는 '이념적으로 차이가 있어서 함께 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건 내겐 안철수가 자기의 주장이 (사회가 이미 공유하고 있는 자본주의 이념을 전제로 한 주장이라서) 이념적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었지만 (전제가 다른 이념에 충실한) 친노를 만나서 '이념적으로 다르다'고 느끼게 된 것으로 들린다.
또한 문재인 자신도 '우리 친노가 아직 이념적인 공중전을 하고 있고 생활 밀착적인 지상전을 하고 있지 않다'는 요지의 반성을 했다.
그럼 그들의 이념이 무엇인가 하면, 역시 중도 좌익이다. 중도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요구되는 수준의 자본주의를 수행하지만(노통 시절엔 신자유주의가 거부할 수 없는 강력한 세계적 조류였다), 이상향을 좌익에 두고 있기 때문에 사회주의를 옳은 것으로서 추종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탈출을 신자유주의(를 똑바로 하는 것)에서 찾는 박근혜.
신자유주의 탈출을 사회주의에서 찾는 문재인.
그리고 대선 결과는 민주당의 패배였다.
나는 이 결과를 민주주의에 의한 사회주의 거부라고 판단한다.
중도 좌익의 사회주의적 이상에 대해 민주주의의 반응은
고연령층에선 투표율 상승으로,
저연령층에선 막판 접전의 열기에도 불구하고 낮은 호응으로 나타났다.
나는 이것이 대단히 민주주의적인 결과라고 생각한다.
민주주의는 (정확히는 민주주의가 차용하고 있는 다원주의적 중용론은) 사회의 선택을 논리적 생각이 아니라 다수 구성원 개개인의 경험에 맡기는 제도다.
비록 사회주의가 한번 크게 실패한 건 사실이지만
아직 사회주의는 이론적으로 완전히 반박되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들과 거대한 자원이 투입된 사회주의 실험이 모두 실패했다는 결과를 경험했으나,
아직까지도 사회주의가 잘못된 이론이라는 게 증명된 것은 아니다.
이론에 의존한다면 사회주의는 아직도 선택 받을 여지가 있는 이념이다.
그러나 경험에 의존한다면 사회주의는 선택받지 못한다.
온갖 부정적 이슈와 이전 정권의 과오등 도저히 야권이 질 수 없을 것 같은 상황들에도 불구하고 이번 대선은 이론적으로는 옳을 수도 있는 사회주의를 구성원의 경험에 의존해 거부하는 결과를 냈다. (중도좌익 이념에 충실하는 친노 필패론이라는 결과의 연장선이기도 하다.)
그 점이 대단히 민주주의적이다.
(안철수 지지자의 1/3이 새누리당을 찍겠다고 한 여론조사를 보건데
나는 안철수를 거쳐 새누리당으로 넘어간 표심이 1.5% 보다는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말은 만약 야권이 신자유주의 탈출의 대안을 안철수의 수정자본주의로 내놓았다면
박근혜를 찍은 50만명 이상의 마음이 2번을 찍도록 돌아섰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의미다.
이건 질만하게 행동해서 진 안티 박근혜 연합이
이길만하게 행동했다면 이길 수 있었음을 보여주는 표차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 땅의 표밭은 민주주의를 계속할만한 가치가 있는 국민들로 매워져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후는 어떻게 될까?
박근혜는 성공적일 수 있을까?
개발과 줄푸세를 정치철학으로 삼는 그녀가 신자유주의 탈출을 요구받는 시대에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탈출해야만 하는 난국에서
재벌에게 천국같았던 신자유주의를 철폐하지 않고는 도달할 수 없다고들 말하는 탈출로를 향해
재벌을 한 편에 두고 가야하는 박근혜는
과연 어떤 정치를 보여줄 것인가.
대통령 박근혜가 성공하기를 바란다.
잘살아보세의 무한 책임을 지는 타입의 리더로서 소환된 그녀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선 어느 순간 재벌에게 시선을 돌려야 함을 가능한 빨리 알아차리길 희망한다. 그녀가 그러지 못한다면 못하는대로 미래는 희망적일 것이다.

야권은 친노가 연이은 패배로 욕먹어도 민주당에서 친노빼면 호남 지역결탁세력이 당권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 손학규를 위시한 비호남 비노 세력은 민주당내 당권을 잡기엔 당장은 약해보이기 때문이다.
손학규를 중심으로 하는 비호남 비노 비사회주의 세력이
신자유주의 탈출을 (안철수식의) 수정자본주의에서 찾는 안철수와 손잡고 길을 찾고자 하길 희망한다.

마지막으로, 모두가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회주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리를 해보겠다.

사회주의(socialism)는 본래 자본주의의 병폐를 '생산수단의 공유를 통해' 극복하고자 하는 특징을 갖는 19세기 2백여개의 이념에 대한 통칭이다. 이들은 개인주의의 반대말로서 '사회주의 socialism'라는 말을 사용했다. 즉 분배정의의 가치를 소망한 주장인 건 맞는데, 그 해법이 '자본 국유'라는게 특징인 주장들이다.
맑시즘은 그 200여개의 사회주의중 하나였고, 맑시즘이 뜨면서 여타 사회주의들과 차별성을 갖기 위해 스스로를 공산주의라고 부르며 '세상은 사회주의를 거쳐 공산주의의 이상향에 이른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여타 사회주의를 '공상적 사회주의'라고 하고 자기들의 사회주의는 '과학적 사회주의'라고 함으로써 차별화를 추구하기도 했다.
이후 맑시즘에 의한 의미재정리를 거쳐서 지금에 이르러서는 사회주의는 맑시즘 안에서의 의미와 맑시즘 밖에서의 의미가 전혀 다른 것이 되었다. 하지만 그 구체적 의미가 무엇이 되었든, 맑시즘 안의 '사회주의'는 결국 공산주의에의 과정에 불과하다는 면에서 자본의 공유화를 필수과제로 여기고, 맑시즘 밖의 '사회주의'는 본래 의미 자체가 자본을 개인주의에 맡기면 안된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자본의 공유화를 필수과제로 여긴다.
즉 '사회주의자'는 그가 맑시즘 안의 해석으로 사회주의자이건/맑시즘 밖의 해석으로 사회주의자이건
자본의 공유화를 궁극적 이상으로 하는 사람이다.

이후 맑시즘은 개인 자본가의 존재를 부정하는 실험에 참여한 모든 국가가 실패하는 사태를 맞이한다.
이론적으로는 아직까지도 그 실패가 필연인지 완벽히 밝혀지지 않았다. 단지 실제로 수행된 실험이 모두 실패했을 뿐이다.
이후 자본주의 치하에서 분배정의는 날로 간절해져갔으나
사회주의를 능가하는 대안은 아직 확보되지 못하고 있었다.
따라서 실패원인을 알 수 없는 이 애매한 상황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사회주의에 대한 미련을 거둘 수 없었다.
'자본을 완벽하게 국유하는 것이 한번에 이루기 어려운 이상향이라면
자본의 움직임을 사회가 적극적으로 통제하는 것은 과도기로서 적합하지 않을까?
공산주의에 이르기 전 단계인 이것은 사회주의라고 부를만하지 않은가?'
이런 방식의 단어 의미 변용을 거쳐
본래 자본의 공유화를 주장하는 '사회주의'는 수정자본주의의 영역에까지 발을 확장한다.
이제 사회주의자의 눈에는 수정자본주의의 성과는 모두 사회주의의 성과로 해석 가능해진다.
사회주의에 다가간 덕분에 (사실은 수정자본주의지만) 세상이 좀 더 살기 좋아지더라라는 인식이다.
이렇게 해서 사회주의는 절실히 필요한 어떤 가치를 담고 있는 진보의 마음의 고향같은 지위를 얻는다.

사회주의가 분배정의의 확보를 꿈꾸며 등장한 이념들인 건 분명하지만
그 방법론에 있어서는 항상 '자본의 국유화가 궁극적 해법'이라고 주장한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사회주의는 사유자본철폐를 주장하는 극소수의 사람들만 지지해야 하는 이념이며, 진보가 보수의 대안이 되기 위해선 사회주의를 털어내야 한다.
내 개인의 관점에서 사회주의는 이론을 떠나 현실의 실험에서 반증된 이론이기 때문이고,
민주주의적 관점에서 사회주의는 야권이 질 수 없는 그 모든 상황 요소에도 불구하고 지게 만든 필패의 요인이기 때문이다.
진보가 추구하는 것은 분배정의이지 반드시 사회주의 여야만 하는 것은 아니며,
분배정의를 위한 대안은 사회주의를 버리고도 안철수가 주장한 바 있는 수정자본주의가 제시할 수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리고 사실, 그때가 되면 편가르기 용 '진보'라는 이름 자체가 의미를 잃을 것이다.

- 이전에 단편 단편 썼던 것들을 엮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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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노크노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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