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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딜레마

잡담 2013. 11. 27. 14:06
가족이 길거리 나앉지 않도록 밖에서 돈벌어와서 가족을 부양하는 것이 아버지의 기본 과제다.
부귀영화를 보자는 것도 아니고 남들 다 먹는 밥먹는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생색내냐 하겠지만
막상 해보면 다들 노후준비 막막해하며 답이 없다고 푸념하게 될 정도로 각자에겐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공기의 고마움을 아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아버지가 지키고자 하는 것을 성공적으로 지켜내서 식구들이 돈 걱정 안하고 자라면
식구들은 감사하는 것을 잊어버린다.
먹고 살려고 뿔뿔이 흩어져서 눈치밥 먹으며 살 일 없었고
길거리 나앉지 않고 살 수 있었다는 걸 감사하는 대신
아버지의 말투가 짜증난다는 것을 불평한다.

오히려 아버지가 지켜내고자 하는 것을 지키는 데에 별로 성공적이지 못했을 때,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그 빈자리를 느낀다거나
아버지의 불행이 아버지의 불행에 그치지 않고 내 불행으로 이어지는 두려움에 떨어봤다거나
물려받은 것 없이 살겠다고 바둥대자니 인생이 너무 힘들어서 아버지의 마음이 이해가 된다거나,
철든 자식들은 하나같이 그런 곳에서 생겨난다.
미션을 성공하면 비난을 받는다. 아버지의 딜레마.

나는 아버지를 싫어한다.
안 친해서 대화하기도 갑갑하고 꼬장꼬장한 성미도 짜증난다.
어쨌거나 싫은 건 싫은거다.

하지만 아버지가 싫을 때면 욕하기 전에 항상 이런 생각을 한다.
나는 철든 자식이었는가.
아버지가 과중한 짐을 져서 다른데 신경쓰기 어려운 인생을 살아왔다면
나는 그런 아버지의 짐을 줄여드리는데에 최선을 다 했는가.

IMF때 직격 맞아서 아버지 사업이 한번 망했다.
IMF의 직격을 맞은 집 자식이란 사실이 무색하게도 내 생활은 그 전후로 아무 차이가 없었다.
망해도 3년 간다는 기간 동안에 아버지는 다른 살 길을 찾아내셨고
어머니도 마음은 고생했어도 몸은 고생하지 않았으며
나는 아예 그 사실을 몰랐다.
나이가 어릴 때도 아니고 당시 이미 대학생이었는데
대학 학비가 얼마인지도 모르는 채로 졸업했으며
약속도 많은데 과외가기 귀찮다고 아르바이트를 그만둘 정도로 아무 것도 모르는 채로 살았다.

'다른 살길을 찾는다'라는 게 말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당시 노느라 바빴던 내 기억엔 '아버지가 사업 잘 안된다고 일을 바꾸시고 나서 한동안 피곤해 했다'라는 기억은 있어도 그런 아버지의 힘듬이 사실은 내 일이라는 자각은 없었다.
아주 긴 시간이 지나서 외환위기가 당시 아버지의 사업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알게 되었을 때에야
비로서 '사업이 잘 안돼서'가 무슨 의미였는지 알 수 있었고
내가 직업을 갖고 일을 해본 다음에서야 '다른 살 길을 찾는다'는 게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었다.
나는 그때 왜 몰랐을까.
어떻게 그걸 모를래야 모를 수가 있었을까.

아버지가 편치 않다는 상황은 이해할 수 있다. 나도 그러니까.
하지만 불편함을 비난으로 배출하기 전에
나는 철든 자식이었는가, 정말 할만큼 했는가를 돌아본다면
누구의 아버지도 그리 쉬운 인생을 살지는 않았음이 보이리라 생각한다.
짐이 무거워서 다리가 후들거리는 사람의 표정을 나무라기 전에
혹시 그 짐더미에서 내가 꺼내 들어야 마땅한 것은 없는지 생각해야 한다.
만약 아버지가 힘드셨을 그때 내가 아버지가 짊어진 짐 중에서 내 짐만이라도 꺼내들며 감사를 표현했더라면
아버지는 아마 많이 기뻐하셨을거다.
...
나도 그때 그러질 않았으니 꼬와도 좀 참아야지 시밤바... 하기를 한두해 지나니까
아버지가 나는 당신을 이해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셨는지 나더러 다른 가족들에게 잘 좀 얘기해 달라며 내 뜻을 얻기 위해 애를 많이 쓰시더라.
이해받지 못한 채로 평생을 시달리다 보면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는 법이니까.
과거에 나는 할만큼 했는가 하는 생각에 더하여
과연 지금 나는 할 만큼 하고 있는가도 생각해 볼만하다. (*)
...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가부장제에 찌든 권위적인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비난을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만약 그 불화가 정말 가부장제에서 비롯된 것이어서
아버지의 엇나감이 가부장제가 가장에게 짐지운 이해받지 못하는 외로움과 과중한 부담감 때문이라면
자신의 짐을 나눠지며 이제까지만도 감사하다고 말하는 사람 앞에서 아버지는 무너진다.
가부장제가 가장에게 부여하는 가족 부양의 책임감은 사람구실 그 자체나 마찬가지이며
책임을 다하지 못했을 때의 자괴감이 큰 만큼 도움을 받았을 때의 고마움도 크기 때문이다.
평생 이해받지 못한 자신을 이해해주는 철든 자식 앞에서
자식이 그렇게 미워하는 그 어떤 아버지는 사실은 자식의 손을 붙들고 울고 싶으신 걸지도 모른다.
가부장제의 폐해는 가장의 권위를 공격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부조리는 싸워서 해소되지 않는다.
...

그런데 내가 우리 아버지랑 불편한 건 가부장제가 문제가 아니라
아버지가 나랑 똑같기 때문이라서 저걸로 다 되진 않는다.
(확고한 주관+다혈질)*2= #$%^
이대로 가면 우리 딸과의 미래가 보여서 바꾸느라고 바꾸긴 했는데
그래도 아버지가 바뀐 나를 좋아하지 바뀐 내가 아버지를 좋아하게 되지는 않지.
...
(*) 요즘 우리 아가를 보면 한살바기 아이조차도 사람을 바꾸는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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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그러운 것을 먹으면 야만적이라고 한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사람이나 원숭이등 고등한 생물을 먹는 것은 야만적인 일이다.
개나 고양이를 먹는 것이 야만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는 개와의 의사소통 경험을 통해 개의 지능을 체감한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지성은 IQ수치만으로 와닿는 게 아니라 의사소통을 해봐야 체감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소나 돼지도 알고보면 상당히 지능이 높다.
따라서 관점을 달리해보면 하등 생물인 벌레를 먹는 것은 소나 돼지를 먹는 것보다 덜 야만적인 행위다.
징그러운 것을 먹는다는 점은 전 처리 단계에서 충분히 다듬으면 해결되는 문제다.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제거하는 것이 관건이다.
곤충은 가축에 비해 먹이 대비 효율이 10배이며 영양 구성이 좋은 고단백 식품이고,
또한 고등 동물을 잡아먹는 행위를 줄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곤충 식량화의 최대 걸림돌은 혐오감이다.
현재 곤충 요리라고 나오는 것들은 곤충의 원형을 유지한 튀김 같은 형태인데,
일상적으로 잡아먹는 소 돼지도 이빨이나 눈알이나 발톱같은 원형 부분이 나오면 혐오감이 엄청나므로
곤충의 원형을 유지한 튀김을 요리라고 내놓는 건 이색 체험을 겨냥한 엽기쇼라고 보는 편이 좋다.
미래식량으로서라면 곤충의 원형을 없애고 가공하여 참치캔(참치를 톱질할때 나오는 가루를 뭉쳐서 압착해서 만든다고 한다. 가루를 뭉쳐서 만든다는 점에서 응용할 수 있다.) 같은 형태를 만든다면 대중화 가능성이 있을 것 같다. 공임이 많이 드는 문제도 굼뱅이처럼 굵직한 애벌레 류는 외골격이 없으니까 유리할거다.

아이를 키우면서 아기와 의사소통을 하자 한살도 안된 아이가 얼마나 사람다운 행동을 하는지 놀라웠다.
그런 생각을 하면 육식은 마음에 부담이 된다.
고등동물인 가축이 얼마나 영리할지 체감을 모르니까 먹는거지 알면 먹기 힘들거다.
육식에 대한 부담을 더는 차원에서도 곤충을 미래 식량자원으로 삼는다는 건 의미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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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된 편협함

잡담 2013. 9. 23. 17:13
사람은 자기가 추구하는 이상, 희망, 자기 정체성, 감정등으로 의도된 편협함을 만든다.
환경에 떠밀리거나 스스로 선택한 의도된 편협함 위에서 어떤 방향의 가능성에 대한 사고의 진행을 차단해버린다.
자기도 그게 편협한 것임을 알고 있더라도 그것이 진정으로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편협함을 유지한다.
사람들은 '의도된 편협함'을 끌어안고 산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의도된 편협함에서 인간다움과 의지를 느낀다.

관대하고 싶지 않을 때에, 관대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편협하게 생각한다.
또 습관적으로 자기 정체성을 두고 있는 면모에 대해서 편협하게 군다.
스스로 알고 있음에도 고수하는 이유는 그것이 '적어도 나름 옳은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덕목을 향한 것이든 의도된 편협함은
처벌에 합당한 악한이 아닌 그저 보통의 사람을 억울하게 만든다.
자기가 거짓말을 싫어하기 때문에 거짓말한 사람을 의도적으로 가혹하게 대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자기는 악한 행동을 배척하는 좋은 태도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가 의도한 가혹함으로 인해 그의 행동은
어딘가 다른 곳에선 더 악한 사람이 잘 살고 있는 동안에 상대적으로 선량한 사람에게 내려꽂히는 날벼락이 된다.
그것이 억울함을 만들고 부조리의 시작이 된다.

정의는 한 두가지 가치를 붙들고 늘어진다고 간단히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의도된 편협함은 그 발단이 정의감에 있든 어떤 선의에 있든 간에 부조리의 시작점이 되며 불의를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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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업주부의 사교성

잡담 2013. 8. 28. 17:33
전업주부는 높은 사교성을 필요로 하는 직업같다.
말 안 통하는 어린아이와 단 둘이서 집안에 지내다 보면 보통의 사교성을 가지고서는 인간관계가 단절된다.
인간관계를 최소화하고 딱 필요한 만큼만 관계하는 정도의 일반적인 사교성을 가지고서는 말 한마디 섞을 상대가 없어지고,
하루 종일 남편만 기다리는 생활을 하게 되어 스트레스가 쌓이기만 한다.

스테레오 타입의 '아줌마스러움'에는 처음 봤는데 친한 사람처럼 얘기하고 생판 남의 일에도 관여하여 인간관계를 늘리는 성격이 포함된다. 이건 전업주부 생활 끝에 필요에 의해 적응한 성격일거다. 여기서 표현되는 아줌마란 전업주부를 의미하고, 필요하지 않고서야 이 성격을 공통적으로 갖게 될리 없다.
비록 우리 어머니는 그리 아줌마스러운 성격이 아니지만, 일반적인 변화가 있어서 그게 스테레오 타입으로 과장되는 걸거다. 마치 학자의 성격, 사업가의 성격처럼. 이때 스테레오 타입 아줌마의 성격이 주부의 성격에 해당한다.

아는 사람 부인들중 전업주부 두명의 경우를 보면
한명은 평범한 사교성을 지닌 반면 다른 한명은 부부 동반으로 다른 사람 결혼식장에서 식사중에 단 한번 만났는데도 대번에 친하게 말걸었던게 기억에 남을 정도로 사교성이 높았다.
전자의 경우엔 아이 태어나고 전업주부가 되자 그 부인이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 확연하다.
부인이 매일 아이와 싸우는데 엄마는 소리지르고 애는 '뭐야 왜 저래'라는 눈으로 흥하고 쳐다보고 있댄다.
부인이 너무 힘들어해서 여행가라고 일주일 휴가주면 돌아와서 약발이 하루간다나.
높은 스트레스에 부인의 인격이 변해서 그 남편은 자기가 결혼한 사람과 다른 사람하고 사는 것 같다고 말한다.
반면 후자의 경우에는 그 부인이 잠시 얼마간은 좀 힘들어 했던 적도 있었는데
음식하면 10배쯤 해서 동네 사람 다 돌리고, 연고 없는 데로 이사갔는데 한달만에 동네 사람들이 XX엄마를 다 알고,
남편한테 '오늘 누구 엄마네 가기로 했으니 저녁 먹고 늦게 오라'고 전화하고 그러면서 지내는데
별로 힘들지 않게 아이를 키우고 있댄다.
(그 집은 애도 성격 좋다. 아빠가 "오늘 뭐했어?" 하고 물어보니까 "과자를 친구들한테 다 나눠주고 집에 오는데 내가 먹을게 없어서 울었더니 엄마가 하나 더 사줬어"라고 했댄다.)
사교성이 높을수록 주부로 적응이 쉽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사회생활을 그만두면 직업이 없어지는게 아니라 직업이 주부로 바뀌게 된다.
주부가 직업이 아닌 걸로 인식해서 그에 걸맞는 성격 적성이 존재한다는 걸 간과하기 쉬우나 그렇지 않다.
주부에 어울리는 성격은 현재 통칭되는 아줌마스런 성격에 해당하며
다만 한세대 전에는 아줌마=주부였기에 주부의 성격이 곧 아줌마의 성격으로 인식되었지만 맞벌이 비율이 높은 지금 추세가 계속되면 다음 세대 쯤에는 '아줌마스러운 성격'이라는 이미지 자체가 모호해질듯하다.

골방스타일인 마누라는 오히려 사회생활 안하고 집에만 있기에 좋지 않은 성격이라는게 내 판단이다.
집순이에 골방스타일인 마누라는 자기가 사회생활 좋아하지 않고 자아실현 밖에서 안해도 알아서 잘 할 수 있으니 일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마누라가 출산휴가로 반년간 집에만 있었을 때에는
'아기가 있으니까 친구 만나러 멀리 가기도 어렵다'며 낮에 굉장히 심심해 했다.
내가 "우리 옆집이 우리랑 비슷한 시기에 둘째 낳았으니까 만나면 얘기할 거리도 많고 배울 것도 많을 거야.
오며가며 얼굴보면 인사 반갑게 하고 나서 음식 싸들고 옆집 아줌마 찾아가 봐." 라고 했더니
마누라가 "내가 그럴 수 있을거 같아?"라고 했다.
"아니. 절대 못할 거 아는데 그냥 얘기해봤어."
마누라가 일을 계속하는 이유 중엔 집에만 있어봤더니 답답했다는 이때의 경험이 클거다.
난 마누라가 계속 일하는 편이 좋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나아가 날 빼다 밖은 우리 딸에게 그리 넉살좋은 사교성을 기대하기도 어렵고
장차 엄마 성격이 섞인다 한들 이쪽으론 별로 달라질 것도 없으니
우리 딸도 그리 주부 적성은 아닐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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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소통

잡담 2013. 8. 12. 10:38
서구인들이 개고기 먹는 것에 저항을 느끼는 이유를 알겠다.
저항감을 느끼게 하는 주요 요인은 지능도 지능이지만 그보다도 의사소통이다.
객관적인 지능보다도
나와 의사소통이 있을 때에 대상이 의지를 갖고 고통을 느끼는 지성체로 내게 인식되고
그걸 죽이는 것에 저항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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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을 터는 시늉을 하고 있다. 시간 때우고 나중에 유야무야 할지 모르지만 어쨌거나 터는 시늉은 하고 있다.
이번엔 아버지 가시고 보호자 같던 또 하나의 가족 전두환을 턴댄다. 미리 귀뜸해주고 나중에 다 갚아줄지 모르지만 어쨌거나 터는 시늉을 했다.
이명박때는 비리로 비리를 덮고 비리 돌려막기해서 시위 논조가 하나로 모아지지 않는다고 했었다. 그 결과 하나도 제대로 바로잡지 못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국정원 부정 선거 개입 하나만 공격해도 알아서 이것저것 다 내준다.

이명박이 가르쳐준 것 중 하나가 뭐냐면 집권자는 시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거다.
최대 규모로 벌어진 촛불시위때 -그게 아마 제헌절이었을거다. 헌법 지키라고 하면서 제헌절에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을 때, 시위 인파는 정말 어마어마했다. 경찰 추산 보도는 규모를 1/10로 축소해서 보도 했지만 당시 내가 근처 빌딩 올라가서 지상에 촛불 켜지는 것 보고 황당해서 실실 웃었던 기억이 난다. 이후로 어떤 일이 일어나든 간에 그 정도를 넘어서는 인파가 모이는 일은 없을 것임을 확신한다.
그래서 뭐가 달라졌을까?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결정된 사항에 대해 눈꼽만한 시정 조치도 없었고 이후 행보에도 달라진 건 없었다.

지금 시대에 아무리 열심히 시위해봤자 과거 민주화투쟁하던 시절 시위와 같을 수는 없다.
그런데 그 시위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은 박정희 전두환 시대의 투쟁을 경험한 사람들이다.
그 경험이 고려대생으로서 시위자로 참여했던 경험이든, 왕궁에서 시위대의 위협을 받던 경험이든
그들이 경험한 시위는 훨씬 공격적이고 폭력적이며 격렬한 시위였다.
그런 경험을 한 사람에게 지금의 시위로 느끼는 게 있으라는 건 참전용사한테 어린애 장난감 칼들고 위협하는 꼴이다. 권력자 입장에서 보면 시위대 전혀 위협되지 않는다. 여기가 시위 진압 경험이 좀 화려한 나라인가.

박근혜가 두려워하는 건 집회니 시국선언이니 이런 것이 아니다. 실질적인 압력을 가진 절차 다 갖춘 국정조사다. 절차 다 갖춘 칼의 무서운 점은 맞으면 데미지가 들어온다는 것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한번 휘두르고 나면 두번 세번 휘두를 수 없다는 점에서 이번만 잘 피하면 된다. 국정조사가 집회나 시국선언처럼 여기서 한번 하고 안돼면 또 한번 하고 그런게 되는게 아니니까.

그래서 내게 박근혜정권이 지금 생각하는 건 이렇게 보인다.
'여태까지 경험해왔듯이, 피해야 하는 칼만 시간 끌면서 피하고 나면 반대여론은 어떻게든 무마된다.
이번만 잘 빠져나가면 미래는 걱정 없다.'
현재 국정조사 기간의 1/3이 허비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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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 단상

잡담 2013. 7. 9. 13:23
식품 연구도 연구비 지원 받아야 하는 거고 지원은 필요에 의해 주어질 거다.
한식의 우수성은 지원 받기 쉬워서 돈이 되는 연구일테지만
반대로 한식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연구비 대줄 사람이 없을것이다.
그 결과 한식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한식은 한국 밖에서 많은 사람들이 먹는 음식은 아니기 때문에
외국에서 딱히 그 위험성을 연구할 동기도 없다.
한국에서 연구 안하면 그걸로 끝,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 드러난 사실을 놓고 생각해보자.
한국의 위암 발병률은 세계 1위다.
그리고 맵고 짠 음식은 위암에 해롭다.
그냥 생각해봐도 한식이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일 수 있다.
가령 김치는 고춧가루와 소금에 절인 음식이다. 위험한 면이 있기 십상이다.
그 음식이 식문화에 자리잡도록 한 이점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지금도 유효할까?
겨울철에도 싱싱한 채소를 먹을 수 있다는 이점은 사철 야채를 먹을 수 있는 이제와서는 별 의미가 없고
발효식품의 이점을 취하기 위해서라면 다른 발효식품도 많다.
장점은 무효하고 김치에 위암 발병을 촉진하는 위험성이 있다면 이 시대에 김치는 먹을만한 음식이 아닐 수 있다.
위암만 관계 있으란 법도 없다.
여타 암, 고혈압과 심장병, 치매 질환과의 상관관계도 연구된 바 없으니 무관하다고 말 못한다.

햄버거나 피자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연구결과가 많이 있다.
서구 특유의 초고도 비만을 예방하고자 자국민이 많이 먹는 음식의 해로움을 연구한 결과다.
그런데 어떤 음식이 비만을 유발하여 해롭다는 것도 상대적인 거다.
비만에만 문제인 음식이면 비만 위험 없는 사람이 먹는 건 해롭지 않다.
중금속 누적되듯 패스트푸드가 절대적으로 해로운 게 아니라서
패스트푸드 대신 먹는 음식이 이로운 음식이 아니라면
결과에 따라선 패스트푸드가 해롭다는 말조차 허구가 된다.
비만률 낮고 위암률 높은 나라에서 '피자 몸에 안좋으니 집에서 밥먹자'는 말은 사실과 반대일 가능성이 있다.

어떤 사람이 건강을 위해 라면, 햄버거, 피자를 피해서 집에서 김치찌개에 닭도리탕을 먹었다.
이런 식단 선택은 매일 반복되고 장기적으로 보면 큰 노고와 비용을 지불하는 선택이다.
그런데 어쩌면 집에서 먹은 음식이 패스트푸드보다 몸에 해로울 수 있다는 건 심한 아이러니다.
결국 지금 확실한 것만 얘기하면, 집에서 먹는 한식은 패스트푸드보다 몸에 좋은게 아니라 좋은지 어떤지 모르는 것 뿐이다.
이는 한식이 어느 정도 해로운지를 아예 연구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의심스러운 정황도 있기 때문이다.
Posted by 노크노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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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느낌을 말하자면
박근혜 당선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을 느낀다.
아버지 박통은 지지율 100% 무시해도 정권 탈취할 수 있는 총칼의 방법으로 쿠데타를 일으켰다.
공주님 박통은 지지율 수% 정도 역행하여 대권 쥘 수 있는 인터넷 여론 조작의 방법으로 권력을 잡았다.
각각의 박통이 민주주의 눈치 보는 정도를 비교해 보면 장족의 발전을 느낄 수 있다.

쿠데타는 부정한 방법으로 권력을 탈취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나는 국정원 대선 개입을 쿠데타로 인식한다.
지난 대선은 최후까지 박빙이었고 승패를 가른 지지율 차이도 미미했다.
국가 정보기관이 조직적으로 관여한 여론 조작의 효과는 승패의 향방을 바꿨을 수도 있다.
또한 국정원을 수족으로 부릴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자가 민주주의의 대전제를 치고 들어가기로 마음먹었다면
오로지 인터넷 여론 조작만 하고 다른 수족은 쉬게 두었을 것이라고 보는 것도 부자연스럽다.
왼손이 범행을 걸렸으면 오른손과 양발은 뭘하고 있었을지 의심해야 한다.

국정원 대선 개입은 쿠데타라는 생각에 반론 될 근거가 있을까?
반대 입장이 어떤 감정 반응을 보일지는 너무나 선명하게 연상되는데 어떤 근거로 그런 감정을 일으킬지는 잘 모르겠다.
완벽한 민주주의 이상을 논하자는 게 아니다.
대선에 국가 정보 조직이 개입하여 여론을 조작하더라도 상관없이 일편단심 내 사랑이라고 할 근거가 없다는 얘기다.

본래는 발칵 뒤집혀야 마땅한 일이다.
그리고 지금 세상은 평온하다.
다들 한세대 사이에 이루어진 민주주의 발전에 가슴이 따듯해진 모양이다.

예전엔 군대가 막 밀고 오고 그랬어. 인터넷에 글 올리고 그런건 솔직히 큰일로 느껴지지 않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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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노크노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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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관의 균형

잡담 2013. 7. 1. 09:35
옳고 그름에 대해 논할때엔 편중된 결벽증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이것이 옳고 저건 틀리다는 류의 논쟁은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나 있었다. 그리고 이런 논쟁이 과열되면 예송논쟁처럼 쓸데없는 탁상공론이 된다.
논쟁에 빠져서 전체적인 시각을 잃고 편중된 사안 하나에 대해서만 결벽적인 시각을 갖게 되면 조금 더 옳은 것을 해 보겠다고 백날 논쟁하였으나 결국 남는 자신은 그만큼 대단히 선한 사람이 되지도 못하는 결과를 얻게 된다. 이건 언행일치하지 않으면 소용없다는 지적이 아니다. 하나의 사안에 대해서만 너무 높은 도덕 기준에 매달리면 마치 결벽강박증 환자가 손톱 밑에 때 끼는게 더럽다는 사실에만 집착한 나머지 죽어라 손톱 소제만 하는 것과 같아진다는 말이다. 청결은 중요하지만 손톱 소제에 집착한다고 그가 청결한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 깔끔한 사람이 되기 위해 중요한 건 편중된 결벽증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균형을 맞춘 청결이다. 가치관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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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노크노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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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딸은 나 닮았다. 난 아이 낳고 대체 왜 출생의 비밀이란 게 드라마 소재가 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딱 보면 쟤가 쟤 딸인데 그걸 어떻게 몰라.
큰 딸이 어릴 때 특히 아빠 닮는다는 속설이 있다.
이걸 진화생물학에 끼워 맞추면 나름 설명이 된다.
'체내에 처음 맞이하는 정자일 경우(체내 항체형성으로 판별할 수 있다) 수컷의 외양을 닮게 낳는 편이 수컷이 자기 새끼를 적극적으로 보살피도록 하는 요인이 되어 새끼의 생존에 유리하므로 자연선택 되었다. 수컷의 조력을 얻어내는 데엔 특히 새끼때 수컷을 닮는 것이 중요하므로 자라면서 암컷의 형질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라고 하면 설명 된다.
그런데 반대로 큰딸이 아빠 닮는게 허구였다고 밝혀지면 그게 진화론 기반 가설에 반례가 되지 않는다. 그냥 아니었네 하고 말 일이다.
그래서 진화론에 기반한 진화심리학이나 진화생물학 볼때마다 이런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인 가설들은 역사적으론 구라였다는 게 자꾸 떠오른다.
아직 대안을 모르겠는 상태에서 그저 그럴듯하다는 걸로 추앙받을 뿐이지 토대가 영 허전하다.
더불어 진화심리학 진화생물학을 추종하는 사람들 중에 유난히 질롯스런 사람들이 많은 것도 이 느낌을 부채질한다.
이건 아마도 종교적 설명(특히 기독교 창조론)에 대항하는 최전선에 위치한 가설이기 때문에 종교(특히 기독교)에 대한 증오를 담아 진화론에 몰입해서 그런 것으로 보이는데, 구종교를 가장 증오하는 건 신교 신도인 것처럼 종교의 또다른 버전처럼 동작하는 걸로 보인다.
진화론 기반 설명은 증명된 사실이 아니라 '설'이다. 이 설의 그럴듯함에 매료된 사람들이 설을 진리로 추앙하는 경향이 완연하다.
경쟁할 마땅한 대안을 모른다는 이유로 발밑 허전한 채로 추앙받는 진화설 기반 학문들을 보고 있으면 버전업된 시조 탄생 설화를 보는 것처럼 의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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