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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전체보기'에 해당되는 글 459건

  1. 2012.08.16 결혼의 결정
  2. 2012.08.14 결혼 잘한 자랑
  3. 2012.08.09 안철수의 생각 아직 읽는 중 1
  4. 2012.07.27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2
  5. 2012.06.01 과학 혁명의 구조 - 내가 이해한 내용.
  6. 2012.06.01 과학 혁명의 구조 - 책 요약 2
  7. 2012.05.30 자녀교육법
  8. 2012.05.25 자각몽
  9. 2012.05.25 자각몽 기계
  10. 2012.05.22 인문학은 무엇인가? 1

대상을 고르고-관계를 만들고-결혼의 결정을 내리는 

'결혼할 상대방 고르기'는 이미 해결한 과제지만 자라날 우리 딸을 위해 이 해결한 과제를 재정리해둔다.

이전에 쓴 글 세개를 엮어서 대상 선정-관계 형성-결혼 결정에의 지침을 만들것이다.


http://longlive.tistory.com/entry/인품

http://longlive.tistory.com/entry/What-women-want

http://longlive.tistory.com/entry/결혼-잘한-자랑


1. 대상 선정의 지침(원문으로 충분하므로 요약만)

- 애증이 다 진정되고 난 후의 모습이 좋음으로 귀결될 때 배우자 감으로 적합하다. 

- 흔히들 예찬하는 사랑의 농도는 무의미하다. 


2. 관계 형성의 지침(원문과 논점이 다르나 내용은 충분하므로 요약만)

- 의사소통을 두려워하지 않는 관계 형성이 중요하다. 

필요한 건 '말하지 않은 내 마음을 알아주는 내 짝'을 찾는 게 아니라 '내 마음을 말하기에 편한 짝'을 찾는거다. 

의견을 얘기해서->거절 당하기도 해가며->조율하는 것이 불편하지 않은 관계를 상대방과 만들어야 한다. 


3. 결혼 결단의 지침(원문이 간략하므로 부연 포함)

- 이 고민은 이런 구조다. 

평가자의 관점에서 생각하기 시작 -> '이 선수가 평생 잘 뛸까?'를 고민 -> 찾아볼수록 이런 사례도 있고 저런 사례도 있어서 확신이 안 듬. 

사람은 자기 자신의 단일 행동의 결과도 확신하지 못한다. 하물며 다른 사람의 일생에 걸친 모든 행동의 미래를 종합해서 확신할 방법은 전혀 없다. 그래서 확신을 찾으려고 하면 불안감만 더해진다. 

이건 평가자의 관점에서 생각하기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돌아오는 결과다. 

상대방에 대한 평가로부터 확신을 찾으려고 하면 답은 나오지 않는다. 

결혼에 있어 나는 한 시점의 평가자가 아니라 지속적인 행동자임을 자각하라. 

행동자는 상대방으로부터 확신을 찾는게 아니라 '대상 선정과 관계 형성을 충분히 하였는지'를 검토한다.


결혼 상대를 결정하기까지의 일에는 수많은 편견이 존재한다. 

이는 결혼이 중요한 일이고, 또한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편견과 미신은 근본이 비슷하다.

중요한 일인데 어디로 가야할 지 모를때 편견과 미신이 생긴다.

본질을 볼 수 있게 되면 편견과 미신은 남아나지 않는다.


우리 딸이 이 얘길 참조할 때 쯤엔 부모의 삶이라는 결과물을 충분히 접한 상태이기 때문에 그걸 기반으로 이게 효과적인 얘기인지 시원찮은 얘기인지를 판단할거다. 즉 지침의 올바름 여부는 말이 아니라 결과로 증명할 것이다. 

내 소망은 딸이 자라는 과정에서 위에 써놓은 관점과 기술을 습득하여 이미 다 체화한 상태에서 이 말을 접하게 되는 것이다. 


'대상을 고르고-관계를 만들고-결혼의 결정을 내리는'의 앞에 '(유혹하고-넘어왔음을 감지하고-)'가 생략되어 있다.

아빠는 남자를 유혹해본 경험이 없어서 남자 꼬시는 방법은 아직 검토중이지만 넷카마가 남자는 더 잘 꼬신다. 

천하에 못 얻을 남자가 없도록 해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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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노크노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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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위를 하기엔 지금 만삭의 몸으로 출근한 마누라에게 미안할 뿐이다.

내 행복은 마누라의 노고 위에 서 있고 자랑하려면 한번 할때마다 마누라한테 더 잘해야 한다. 

더 잘할 자신 음스므로 자랑도 음슴.


결혼하자고 한 오년 징징대니까 결혼할 수 있었다.

결혼의 확신은 찾는게 아니라 심어주는 거다. 

결혼해서 살아갈 나는 행동자지 평가자가 아니니까.


'이 결혼 할만한가요' '나는 잘 골랐다네' 채점관 마인드 ㄴㄴ. 

나는 선수다. 채점관이 아니라. 


부인 

어제 설거지 안하고 쌓아놔서 미안하오.

일 충분히 쉬게 못해서 미안하오. 

무겁고 고된데 대신 낳아주지 못해 미안하오. 

내일은 휴일이니 하루종일 재미나게 놉시다. 

비오면 보려고 스쿨오브락이랑 어나더어스 빌려 놓았소. 

저녁 뭐먹나 궁리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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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노크노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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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의 생각을 읽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내용에 임펙트가 없다'라고들 말하는 것을 들었다.

동의하긴 동의한다. 책을 읽고 있으면 뭔가 무지 스무스하다. 

느낌상으로는 어째 원론적이고 당연한 얘기를 하는 것 같다.


왜 그런 느낌인가 좀 더 들여다봤다. 

내용상으로 임펙트 있는 지점이 없는게 아니라 임펙트 있는 지점에 할애하는 시간이 짧고 원론적인 이야기에 할애하는 시간이 길다.

시행할 제도에 대해 구체적이고 명료하고 짧게 말하고 있고

그 배경과 이유가 되는 원론적인 이야기에 대해 길고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가령 '제도적으로 징벌적 징세 제도를 시행할 것이다'라고 언급했다. 

그리고 이 징벌적 징세 제도에 대해서는 그리 길게 말하지 않았다. 

대신 그 다음장에 '형성 되어야 하는 사회 분위기는...'에 대해서 더 긴 시간을 들여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짧게 언급했다고 해서 추진 의지가 약한 것이냐 하면 그게 아니다.

징벌적 징세 제도에 대해 안철수가 이전 강연에서 말했던 동영상을 보면

"사회가 발달할수록 플래이어가 변칙을 개발하는 속도를 단속자가 따라가지 못한다.

또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단속 비용도 문제가 된다. 

그런데 범죄자가 범죄를 저지를 때 보면 

잡힐 확률과 처벌시 불이익을 곱한 후 얻는 이익과 비교해서 이익이 불이익보다 클 경우에 범죄를 저지른다. 

따라서 잡힐 확률을 높이는 데에 한계가 있다면 처벌을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

이게 징벌적 징세 제도다. 

다 잡지는 못할지언정 한번 걸리면 열배 백배 징수해서 반 죽여놔야 한다. 

사형 시키면 왜 안되요?"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그 말 부드럽게 하는 안철수가 반 죽여놔야 한다, 사형은 왜 안되냐 라고까지 했다.

이 동영상에 소감으로 달린 '가카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사형이래 ㅋㅋㅋㅋㅋ' 라는 리플이 생각난다.)

강한 추진의지를 가진 건 확실한데도 의미가 명료하면 부연을 별로 하지 않고 있다.


징벌적 징세 뒤에 이어서는 법인세 변경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구체적이고 명료하나, 길지 않게. 

한편 '형성되어야 하는 사회분위기'등의 의미가 명료하지 않은 방향에 대해서는 긴 시간을 들여서 소상하게 설명하고 있다.

책 전체적으로 이런식이다. 

 

징벌적 징세제도랑 법인세 변경 딱 두개만 안철수가 말한대로 때려도 그 파급 효과가 상상 이상이다.

이게 결코 하나마나한 물에 물탄 이야기가 아니다. 졸라 빡신 얘기를 웃으며 하고 있는 격이다.

아직 얼마 읽지 않았는데, 구체적으로 명시된 아이템들이 무엇 무엇이 있는지 리스트업을 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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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노크노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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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출이 천차만별이라고 하지만 자녀있는 가정의 수도권 보통 생활비라는 건 존재한다. 

이만하면 보통, 더 쓰면 사치, 덜 쓰면 알뜰. 

이건 거의 하한선에 가까운 개념이라서, 이거보다 적게 쓰고 살아야 한다고 하면 '공부 안하면 장래 거지된다'는 말을 들은 공부하기 싫은 학생처럼 발끈하기 일쑤다. 

가령 자취 월100, 2인 부부 월200, 3인 가족 월300, 4인 가족 월400 이라는 말을 보고 얘기를 꺼냈더니 대세는 '애 하나 월 100으로 못 키운다. 더 든다' 였다. 

3인가족 생활비로 월 320 든다고 치자. 


자식 하나 있는 가족은 평생 얼마를 생활비로 지출하게 될까?

<부모는 자식의 생활비를 30살까지 대신 내준다. 부모는 90살까지만 산다.>라고 모델화하면 

부모 나이 30~60 = 3인가족 = 월 320 * 12 * 30 = 11억5200

부모 나이 60~90 = 자녀 출가시키고 2인가족 = 월 200 * 12 * 30 = 7억2천

합 18억7200

부모는 평생동안 19억은 벌어야 한다.

이건 외벌이 기준이다. 맞벌이면 수입이 느는 대신 생활비가 더 드니까 값이 다르다.


특정 개인 기준이 아니라 '보통'의 생활비라는 걸 생각해보자.

외벌이집 보통 가장이 일생동안 19억 못번다. (보통 얼마 벌지? 한 10억 버나?)

그래서 이 말은 우리 세대 현시점 기준 보통 사람들은 모조리 '생활비>>소득' 이라는 뜻이 된다.

그리고 '생활비>>소득'인 사람은 거지or노예 둘 중 하나 밖에는 길이 없다.


이미 최악인데 아직 악조건이 상당히 배제된 상태다.

그 보통 사람이 자녀를 둘 낳을 수도 있다.

그 보통 사람이 100살까지 살수도 있다.

저 생활비에는 노후 병원비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저 생활비에는 자녀의 비싼 대학 등록금이나 결혼 비용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조건을 포함하면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나지만 

까짓거 늙어서 아프지 말고 자식은 니가 벌어서 대학가고 시집 장가가라고 하면 19억만 벌면 된다.


일생동안 적자나는게 보통인 시대라는게 유지가 되나? 

대체 지금 우리는 단체로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CF 카피로 끝날 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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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노크노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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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은 탐구의 협업과정이다.
따라서 학문은 본질적으로 개인의 탐구방식과 동일한 구조를 갖을 것이다.
개인이 갖는 인간 지성의 한계는 개인의 집합인 학계에게도 적용될 것이기 때문이다.

개인의 탐구는 어떤 형태를 취하는가 보면, 일반적인 학문의 이미지와는 다른 형태다.
학문-특히 과학-은 '가치중립적으로 검증된 지식을 논리적으로 치밀하게 쌓아 올리는 것'이라는 게 일반적 이미지인 반면 개인이 뭔가를 탐구할 때엔(그게 학문이든, 업무든, 인생이든간에) 그와 다른 형태를 취한다.
개인이 뭘 배울 때엔 처음에는 단편적 정보를 모은다.
아무 것도 모르는 처음에는 이 다음에 뭐가 올지 전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단편들을 어느 정도 익히고 나면 '이 일은 이런 건가?' 하는 감이 온다.
'감 잡았다'고 한 다음부턴 그 감에 맞추어 현상을 확인하고 나서 '이제야 뭘 좀 알겠다' 라고 한다.

여기서 '감을 잡는 작업'이란 '경험을 바탕으로 통찰을 통해 대상의 본질을 잡아내는 작업'이며 이때 경험은 불완전한 지식이고 통찰은 논리적으로 허술한 결론 도출 방식이다.


이런 개인의 방식이 학문의 방식과 본질적으로 동일할 거라고 생각한다는 건
학문 탐구의 과정이 일반적인 이미지와는 다른 것이라는 의미가 된다.
개인이 감을 잡는 형태를 보면 감이 논리적으로 치밀하게 형성 되는 게 아니다.
일단 논리적 치밀함은 등안시하고 통찰에 의지하여 개인적이고 귀납적인 접근으로 '이것은 이런 거다'라는 관점을 잡은 후, 그 다음부터는 자기가 감 잡은 내용이 옳은지 확인하기 위해 표적수사를 한다.
개인의 경우에 '감 잡는 것'으로 불리는 것이 과학에서는 '패러다임'으로 불리는 것 일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를 읽었다. (책 요약은 별도 글 참조.)

쿤이 말하는 학문에 있어서의 '패러다임'이 개인이 탐구하다가 '감을 잡는' 것과 똑같을 것이라는 처음 생각은 옳은 것으로 보인다.
학문 탐구의 구조도 개인의 탐구 작업의 구조와 마찬가지로 먼저 전체 골격을 세우는 감을 잡은 후 그 내부를 밝혀 나가는 형태로 이루어진다.
쿤이 미결 과제로 남겨놓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형성하는 과정'은 개인의 탐구 작업에서의 '감 잡는 과정'(통찰의 과정)과 동일하다.
개인이 낱낱의 경험을 통찰, 즉 전체로써 다루어 감 잡는 과정을 살펴 보면, 사람들은 세상이 유사성의 반복일 거라는 전제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공자의 학문을 보면 무관한 사물 간의 유사성을 찾아서 그 발견한 유사성을 기준으로 탐구하려는 대상의 원리를 찾는 작업이 두드러진다. 이때 서로 무관한 대상들 간에 유사성이 존재한다는 증명은 없다. 가령 식물인 나무랑 인간의 집합인 사회 간에 유사 관계가 있다는 근거는 없다.

개인적인 경험에 의존하여 논리적으로 치밀하지 않은 통찰로 먼저 대상의 본질에 대한 감을 잡고 그에 맞추어 다른 대상을 탐구하는 작업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의 이미지와 멀다. 그러나 학문은 개인의 탐구 과정을 나눠하는 협업일 뿐 본질적으로 동일한 것이므로 개인이 갖는 인간 지성의 한계는 개인의 집합인 학계에게도 적용되는 것이 당연하다.
결국 탐구자가 감을 잡는 작업을 대체할 수 있는 논리적인 방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렇게 볼 때 결국 패러다임이란 통찰을 통해 파악한 대상의 본질에 대한 관점이다.
그게 일부 대상, 가령 빛에 적용되는 거면 빛은 물질이다/빛은 횡파다 라는 빛에 대한 패러다임이 되고 세계 전체에 적용되는 거면 세계관이 된다.

이렇게 파악한 학문 탐구 과정을 학문에 대한 일반적 이미지와 비교하면 다음과 같은 차이가 난다. 일반적 이미지에서 학문은  '학문은 지식의 점증적 축적과정이며 가치중립적으로 검증된 지식을 축적함으로써 논리적으로 치밀하게 대상의 본질을 도출한다.'
그러나 실제 학문은 그렇지 않다. 통찰에 의해 파악한 대상의 본질, 즉 패러다임을 먼저 형성한 후, 그 통찰에 끼워 맞추는 표적 수사의 방식으로 탐구한다.

'학문'과 '개인의 일반적인 탐구'(=일상 생활 속에서 수행하게 되는 탐구를 의미한다)와의 공통점이 이렇다면 차이점은 다음과 같다.
개인 탐구/비과학학문/과학학문으로 구분하여 서로간의 차이를 분석해보면
개인의 탐구 : 불완전 경험과 통찰에 의존하여 본질을 도출한다.
비과학 학문 : 개인 탐구의 직렬 병렬적 산술합이다. 과학과의 경계는 패러다임 장악이 일어났는가 여부에 따라 구분된다. 병렬적으로 존재하는 각각의 통찰들 중 서로 간의 우열을 가릴 분명한 기준을 확보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패러다임 장악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과학 학문 : 과학의 방법론이 갖는 경험 명제에 대한 엄밀함은 병렬적으로 존재하는 패러다임 간의 우열을 가리는 데에 도움이 된다. 그 결과로서 패러다임 장악이 이루어진다. 그 분야의 사람들 절대 다수를 동의시키는 패러다임 장악이 이루어 질 수 있는 이유는 경험 명제 검증의 엄밀함 때문이다. 이는 통찰이 내포할 수 밖에 없는 오류를 경험 명제에 대한 엄밀함으로 보완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과학 경험 명제의 엄밀함은 올바른 통찰 결론을 도출하게 만들지는 못하나, 두 개의 통찰 결과가 병존할 때에 우열을 가리는 데에 도움이 된다.

과학의 방법론으로도 새로운 통찰을 완전히 올바르게 도출해내지는 못한다. 패러다임 전환이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할 수 있는 것은 두 개의 패러다임이 경쟁할 시에 어느 쪽이 우월한 지를 가리는 것 뿐이다. 이 우열 가름이 패러다임 장악을 가능하게 하고, 또한 장악 이후에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을 가능하게 한다. 따라서 과학 학문이 지속적인 발전을 할 수 있는 이유는 '두 개 이상의 통찰 결과가 병존 할 경우에 우열을 가릴 수 있는가'에 핵심이 있다는 게 내가 한 파악이다.
이는 쿤의 마지막 질문인
'과학의 방법론은 어떻게 지속적 발전으로 이끄는가?'에 대한 내 대답이 된다.
'진화가 목적한 생물체를 향해 변해가는 발전이 아니라
살아 남았기 때문에 발전으로 인식되는 것이듯
과학 발전은 목적한 절대 진리에 다가가는 것이 아니다'라는 쿤의 해석은 옳지 않다.
여타 학문과 달리 지속적 발전을 이루는 과학의 특징은 '연역된 것 중에 현실 확인 되거나 독립적 실험으로 재연되는 것 까지를 참으로 인정'하는 참 명제 검정 과정에 핵심이 있는 게 분명하며 패러다임 장악이 가능한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패러다임이 장악되면서 정상 과학이 시작되는 것은 사실이나, 패러다임 장악은 과학 특유의 참 명제 검정 방식의 결과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의 시기나 성리학적 이기론의 시대에 패러다임들이 끝나지 않는 쟁론을 계속했던 이유는 어느 것이 더 옳은지 우열을 가릴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종교의 경우에는 종교 전쟁등 상대파의 말살을 통해서 우열을 가리려 들곤 했는데 이는 그 이외의 방법으로 도저히 우열을 가릴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서로 얼마 씩은 옳은 면이 있는 두 개 이상의 통찰이 맞부딪칠 때 어느 쪽이 옳은지 우열을 가릴 수 있는가가 과학이 보여주는 발전을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남은 것은 패러다임 론의 기본적인 질문이다.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질문인데 패러다임 이론의 시초인 과학혁명의 구조 책에서는 아직 확실한 답을 보지 못했다.
- 우열을 가려내게 하는 요인은 무엇인가?
이는 최초로 우열이 가려지는 패러다임 통합의 시기에 열쇠가 있을 것이다.
운동연구는 아르키메데스에서 패러다임 통합. 광학은 뉴턴, 전기는 프랭클린, 열은 블랙, 화학은 보일과 부르하베에서 패러다임 통합.
아르키메데스는 지레와 물에 뜨는 물건의 실험으로써 역학 패러다임 통합을,
프랭클린은 전기에 대한 실험을 통해서 전기가 유체라는 패러다임 통합을 이룬다.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자기 패러다임의 설득력을 높이기 위한 실험의 존재다.
통찰을 현실에 응용하는 실험은 비록 그 실험이 해당 이론에 대한 완전한 검증은 되지 못하더라도 경쟁 이론과의 우열을 가리는 잣대가 되어주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바꿔 말하면 근거를 실험으로써 댈 수 없는 통찰들끼리 논쟁을 하는 것은 의미 있는 결과를 내기 어렵다는 뜻이 된다.
- 장기간에 걸쳐 발견되는 이상 현상은 언제 패러다임을 위기 상황으로 내모는 현상으로 기능하게 되는가? 이 질문에 대해 쿤은 '일반적인 법칙을 찾아내지 못했다'라고 말한다. 이는 이상현상이 위기상황을 만드는 것은 기존 패러다임 내부만을 관찰해선 답을 찾을 수 없는 문제라는 의미로 읽힌다. 그렇다면 경쟁 패러다임과의 설득력 문제로 연계해서 봐야 할 것이다.
패러다임 전환기의 특징은 모순에 빠지는 기존 패러다임이다. 즉 구 패러다임의 설득력 약화다. 이 상황에서 신 패러다임을 들고 나오는 것은 언제나 그 분야의 신참이다.
아직 구 패러다임을 습득하지 못한 '감 못잡은' 신참들에 의해 잠재적 경쟁 패러다임은 산발적으로 생성될 것이다. 패러다임의 안정기에는 이 신참들의 통찰을 잘못된 이해라고 하여 무마하고 올바른 이해로의 흡입력을 발휘한다. 그러나 위기 현상들이 누적되는 가운데에서는 신참이 들고 나온 새로운 이해를 잘못된 이해로 치부하는 것이 점점 흡입력을 잃어가므로, 산발되는 신참의 '잘못된 이해'들을 동력으로 위기 상황이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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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노크노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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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는 과학혁명의 구조 요약이다. 사례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예시로 소개된 사례들을 가급적 빼놓지 않고 정리했다.

~~~~~~~~~~ 과학혁명의 구조 요약 ~~~~~~~~~~~

패러다임을 기준으로 본 학문의 모습은 다음과 같다.
초기 - 무작위적 사실 수집으로 시작한다. 그러다가 다수의 패러다임들이 등장하여 서로 경쟁하고 수정하다가 통합 공유되는 패러다임이 출현한다. 패러다임 장악이 일어나는 시기 까지가 학문 발생의 초기다. 이러한 학문의 발생 과정은 수학처럼 최초의 패러다임이 계속 지속되거나, 생화학처럼 이미 성숙기인 학문들끼리 결합하여 발생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역사적으로 전형적인 방식이라고 쿤이 수집한 사례들은 말한다.
예시 : 운동연구는 아르키메데스에서 패러다임 통합. 광학은 뉴턴, 전기는 프랭클린, 열은 블랙, 화학은 보일과 부르하베에서 패러다임 통합. 유전학은 최초의 패러다임 장악이 근래에 나타났으며 사회과학은 어느 부분이 패러다임을 얼마나 장악했는지가 아직 미결과제로 남아있다. (쿤의 시대까지는 그랬다. 사회과학이 패러다임 통합이 일어나지 못한 상태라는 것이 주목할 만하다.)
비록 알려진 모든 현상을 다 설명하지는 못하더라도, 경쟁 패러다임들을 압도할 설득력을 갖추기만 하면 초기 패러다임 장악은 일어난다.

중기- 패러다임 장악이 된 상태의 학문 활동을 normal science 라고 부르며 정상과학이라고 번역한다. 이렇게 부르는 이유는 패러다임 장악이 일어난 후의 학문 활동이 우리가 인식하는 과학 활동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한 분야를 명백히 과학이라고 선언할 만한 기준은 패러다임의 통일이었다.'라는 게 쿤의 주장.
패러다임 장악 후의 단계인 normal science 활동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공유된 패러다임에 맞춰서 사실 수집 활동이 이루어지고, 이론 명료화 작업이 방향성이 뚜렷한 형태로 진행된다.
패러다임 장악 이후 사실 수집 활동은 크게 세 가지에 국한된다.
첫째, 패러다임의 토대가 된 사례를 최대한 정밀하게 재확인하기이다. 즉 '뭐뭐는 어떤 것이다'라는 패러다임을 탄생시킨 사례를 정밀하게 재확인해서  '뭐뭐가 정말 어떤 것이 맞나?' 확인하는 것이다. 이로서 패러다임은 무엇을 의미 있는 현상으로 치고 무엇을 별로 중요하지 않은 현상으로 칠 것 인지를 결정한다.
둘째, 그때까지는 알려져 있지 않았으나 패러다임을 통해 예측되는 사례를 찾아서 확인.
'뭐뭐가 어떤 것이라면, 저거는 이렇게 되겠네?'하는 추정을 확인하는 작업이다.
실재로는 이론이 그때까지 밝혀지지 않았던 사실의 예측 가능성을 제시하는 경우는 별로 많지 않다.
셋째, 이론의 명료화 작업이다. 패러다임을 더욱 더 명료화 하는 사례를 수집한다. 즉 중력 가속도나 줄의 계수등의 측정작업이 이에 해당한다. 이 작업은 정성적인 패러다임을 정량적인 것으로 만드는 실험의 고안등을 포함한다. '뭐뭐가 어떤 것이라는 건 분명하고 그 안의 계수 등이 정확히 어떤 값인지?'하는 작업이다.
이것들은 모두 퍼즐 풀이 작업의 형태를 갖는다. 퍼즐이란 '답이 있는 것으로 가정 되는 문제'를 뜻한다. 때문에 과학자의 학문 활동은 패러다임이 옳다는 가정 하에 답이 있을 것으로 추정 되는 문제들을 푸는 작업이라는 성격을 갖는다. normal science 단계에서는 '답은 있으나 여태까지 아무도 풀지 못했던 퍼즐을 풀어낸 뛰어난 퍼즐 풀이자'가 뛰어한 학자로 평가 받는다.
원래는 인간이 과학에 흥미를 느끼는 이유들은 퍼즐 풀이 외에도 여러가지가 있다.
가령 유용성에의 욕구나/새로운 영역을 탐사하는 경이감/질서를 찾아내려는 희망/이미 정립된 지식을 시험하려는 충동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정규 연구 활동에 종사하는 과학자의 경우 거의 모든 경우에 오로지 퍼즐 풀이 만이 가치를 갖는다. 과학 활동의 가치는 얼마나 어려운 퍼즐을 풀어낸 것이냐에 따라 학계의 평가를 받지 유용성 여부에 의해 평가받지 않는다. (라고 쿤은 주장.)
퍼즐 풀이의 성격을 갖는 normal science는 과학 지식의 범위와 정확성의 '꾸준한 확장'이라는 목표에 성공적인 활동이다. '검증된 앎을 치밀하게 쌓아 올라가는 것'이라는 학문 연구의 보편적인 이미지는 정확히 normal science 활동에 맞추어져 있다. (학문의 이미지가 normal science에 맞춰져 있을 때, 과학이야말로 가장 정확한 학문 중의 학문으로서 자리매김 된다.)
normal science 단계의 과학자들은 새로운 이론의 창안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또 패러다임에 안 맞는 종류의 새로운 현상에 주의를 환기시키려 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새로운 현상은 보이지 않는 셈치고 새로운 이론도 외면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단지 패러다임의 명료화를 지향한다.
정상 과학의 정확한 측정 작업이 패러다임을 명료화하는 작업으로서 수행되는 것이기 때문에 해당되는 패러다임의 기반 위에서 수행된 것이 아닌 측정은 수치 측정조차도 사실과 다른 값으로 기록되기 일쑤다. 이는 여러 패러다임의 경우에서 발견되는데 가령 돌턴의 배수비례법칙의 예시를 들면 이렇다.
배수비례법칙은 탄소무게1과 결합할 수 있는 산소무게는 1.3 또는 2.6 뿐이라는 것, 즉 탄소 한개와 산소 한개가 결합하거나 또는 탄소 한개와 산소 두개가 결합하는 것만이 가능하지 탄소 한개와 산소 1.5개가 결합하는 건 불가능 하다는 법칙이다.
돌턴이 처음 그의 이론을 확인할 데이터를 찾아 화학 문건들을 뒤질 때 그는 이론에 맞는 몇 가지와 이론에 맞지 않는 여러 기록들도 발견해야 했다.
심한 경우 구리의 산화물 두 가지에 대한 프루스트의 측정은 이론치인 2:1과 달리 1.47:1 이라는 값을 얻고 있었다. 프루스트는 당대의 충분히 훌륭한 실험학자 였으나, 어느 실험에나 상존하는 오차를 패러다임의 도움 없이 조절한다는 건 이런 결과를 가져온다. 돌턴의 배수비례법칙은 그 후 거의 한 세대에 걸쳐 재 실험을 통해 데이터 변경 작업을 거쳐야 했으며 이런 수치 데이터의 변화는 패러다임 전환 시에 전형적이다.

혁명기 - 패러다임에 들어맞지 않는 '이상 현상'을 발견하면서 혁명기가 시작된다. 이때 발견이란 개념 자체를 분명히 해야 한다. 발견은 보는 것과 다르다. 발견은 그게 무엇인지 알고 보는 것이다. 현상이 기록된다 해도 그것이 무엇인지 인식해야 현상이 발견되는 것이다. 패러다임에서 벗어나는 현상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는 때가 이상 현상이 발견되는 때이다. 이상 현상은 기존 패러다임이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이 확실한 현상이다. 패러다임에서 벗어난 현상이 확실한지는, 패러다임이 예측하는 결과를 정확히 알 때에야 비로소 확실해진다.
정상과학이 심화되고 정밀해질수록 이상 현상을 발견하는 지표도 민감해진다.
이로써, 비록 정상과학이 새로운 현상 발견을 지향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패러다임 수정을 유도해낸다.
패러다임의 위기는 퍼즐 풀이 활동의 붕괴가 핵심이다. 패러다임이 옳다면 답이 있기 마련인 퍼즐들이 답이 나오지 않는 것이 시작이다. 이러면 답이 안 나오는 이유를 해석하고 답을 내기 위해서 이론을 조금씩 수정하는데, 답이 안 나오는 상황이 여러가지 문제에서 나타나면 이상 현상을 여기서 막은 수정안이 저기서 막은 수정안과 상충하는 상황이 생긴다.
정상 과학의 위기 상황이다. 이런 상황을 코페르니쿠스는 '각기 서로 다른 화가가 모델의 각 부위를 제각각 그려서 손 발등은 뛰어나게 잘 그렸으나 합치면 도저히 한 사람이 될 수 없는 괴물'이라고 묘사했다.
실례로는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나오기 전 천동설의 상황/라부아지에의 산소 발견 이전의 프로지스톤 이론/ 맥스웰 전자기 이론이 나오기까지 뉴턴의 에테르 이론 등을 들 수 있다.
이제 위기에 대한 반응을 살펴보면, 비록 구 패러다임이 반증되는 현상이 발견된다 하더라도, 그것을 대체할 새로운 패러다임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절대로 구 패러다임은 폐기 되지 않는다.
(학문의 초기 패러다임 장악 시에 패러다임이 알려진 자연의 모든 문제를 설명하지 못해도 경쟁 패러다임을 압도하는 설득력만 가지면 채택된다는 것을 상기해보면, 패러다임의 선택은 패러다임 간의 싸움으로 이루어지지 자연 현상과의 싸움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구 패러다임이 자연과 일치하지 않는 것이 발견된다 하더라도 새 패러다임과의 비교를 통해 대신 선택할 이론이 마련되기 전까지는 역사적으로 한번도 구 패러다임은 폐기된 적이 없다.
이유는 대안 없는 패러다임 포기는 과학 자체를 포기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설령 몇몇 학자 개인이 '이 학문의 패러다임은 완전 엉망진창이다'라고 생각해서 대안 없이 패러다임을 폐기해버린다 해도, 그건 그가 그 학문에서 손을 뗀다는 의미가 되지 (포기하지 않는 학자가 남아 있는 한) 학문이 소멸한다는 의미가 되진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상 현상이 발견되어도 모든 학자가 그 학문을 다 포기해버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상 현상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
1, 기다리면 해결되는 경우.
2, 보다 진보된 도구를 지닌 다음 세대로 미뤄지는 경우.
3, 패러다임을 위기 상황으로 내모는 이상 현상.
1번 경우에 대해 예시하면 : 오차는 항상 있기 마련이고 때로는 확연한 오차조차도 기다리면 해결되기도 한다. 뉴턴의 원래 계산 이후 60년동안 달이 지구에 가장 가까워지는 근지점의 예측치가 관찰값의 절반뿐이었으나, 뉴턴의 역제곱 법칙의 수정에 대한 제안은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실제로 기다림 끝에 1750년 클레로에 의해서 그간의 수학적 적용이 잘못이었음이 증명되었다. 이런 상황은 '사소한 실수도 있을 법하지 않은' 경우에 조차도 나타난다. 그래서 관측이 어긋나는 것이 학계에서 심각한 반증 사례로 항상 인정되지는 않는다.
그럼 언제 이상 현상이 패러다임을 위협하는 3번의 것이 되는가?
이에 대해 쿤은 일반적인 법칙을 찾아내지 못했다고 말한다.

정상 과학의 이상 현상은 긴 시간에 걸쳐 관찰되고, 이상 현상은 계속 누적된다.
게다가 후에 대안이 되는 패러다임들은 완전히 새롭게 태어나는 게 아니라 과거에 존재했던 이론들의 수정 증보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시 : -상대성이론의 공간과 운동의 상대성은 라이프니츠등의 자연과학자들에게 논리적으로 알려져 있는 개념이었고 그들은 뉴턴주의를 상대론적으로 비판했었다.
-지동설은 기원전 3세기에 아리스타코스에 의해서 이미 제안 되었었다. 그러나 학설 중의 하나였을 뿐 천동설이 틀리고 지동설이 옳다는 실험적 근거를 마련할 수 없었던 시기였기 때문에 아리스타코스의 이론은 훗날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에 밀려야 했다.
-17세기 레,훅,메이오에 의해 진전된 '대기로부터의 흡수를 통한 연소 이론'도 당시 관심을 끌지 못했다. 훗날 플로지스톤 이론에 위기 상황이 오고 라부아지에에 의한 산소 흡수 설이 나온 후에야 과거에 저런 이론이 있었다는 걸 상기하게 된다.
패러다임 전환은 기존 패러다임의 위기 상황에서만 일어난다는 얘기다. 위기 이전에 구상되는 이론은 설령 옳다고 해도 무시된다. 구 패러다임으로 모두 설명이 되는 현상들을 분석하여 만든 새 패러다임은 설령 옳은 이론이더라도 선택되지 않는다.

어느 개인이 데이터에 질서를 부여하여 새로운 패러다임을 어떻게 고안하는 가의 문제는 불가해하다고 쿤은 말한다. 그리고 거의 예외 없이 이 새로운 패러다임의 창출자는 아주 젊거나 그 분야를 새롭게 접하여 기존 패러다임에 사고방식이 고정되지 않은 사람이다.
또한 아인슈타인의 사고 실험이나 슈뢰딩거의 고양이 같은 분석적 사고 실험은 위기 시기에 나타나는 특징이다.

마침내 양립 불가능한 신 패러다임에 의해 구 패러다임은 부정된다. 이를 과학 혁명이라고 한다. 이전의 패러다임이 부정된다는 사실은 '학문은 검증된 지식을 착실히 쌓아 올라온 것'이라는 일반적인 이미지와 다르다. 왜 패러다임 혁명은 과거의 지식을 부정했다는 자취를 남기지 않을까?
뉴턴역학은 상대성이론의 특수한 경우로서 여전히 가치를 갖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종종 뉴턴역학이 부정되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곤 한다.
그런데 만약 뉴턴 역학이 부정된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이때의 뉴턴역학은 강체의 속도가 빛보다 느린 경우에 대해서만 한정되어 정립된 이론이라는 말이 된다. 그러나 패러다임은 아직 관측되지 않은 전방위의 현상에 대해 적용된다는 전제 하에 기능한다. 뉴턴 역학이 상대성 이론에 의해 부정 되었다고 하는 이유는, 상대성 이론 이전에 모든 과학자들이 뉴턴 역학은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물체에 대해서도 옳다고 생각 했기 때문이다.
이는 모든 종류의 구 패러다임에 적용된다. 관측되지 않은 현상은 예외라고 한다면 패러다임은 관측된 적 없는 사실에 대해 새로운 퍼즐을 제공할 수 없고 과학은 더 이상 연구를 할 수 없다.
심지어 패러다임은 전혀 다른 분야에 까지 보편 적용 되는 것으로 다루어지는 경향이 있다.
이때 패러다임의 영향성은 해당 과학 뿐 아니라 세계를 보는 관점 자체를 바꾼다.
뉴턴 역학이 상대성 이론에 의해 부정된 이후에도 마치 부정된 적 없이 처음부터 '상대성 이론의 특수한 경우'로서의 가치를 갖고 탐구된 것처럼 보이듯이, 과학 혁명은 많은 경우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패러다임 전환이 한번 이루어지고 나면 모든 교과서가 새로운 패러다임에 의해 쓰이기 때문이다.
또한 과학의 '검증된 새로운 지식의 축적적 발전'이라는 이미지는 대다수의 학자가 normal science의 퍼즐 풀이 과정에 종사하고 패러다임 전환에 참여하는 인원은 극소수이기 때문이다.

과학 혁명이 지나가면 과학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가지고 또다시 normal science로서 기능한다.
과학은 여타 학문에 비해 '지속적인 발전'이라는 특징을 갖는다.
과학의 방법론은 어떻게 해서 그렇게 지속적 발전을 이루는가?
'패러다임 장악으로서 normal science가 되고 나면 normal science 중에는 퍼즐 풀이를 통해 축적적인 발전을 한다. 그러다가 패러다임 전환이 오면 과거의 패러다임이 부정 되는데, 이때 패러다임 간의 경쟁을 통해 구 패러다임을 이기고 새로운 것이 오는 것이므로 평가자들에게는 '발전'일 수 밖에 없는 것이 된다'고 쿤은 말한다. 그래서 '특정한 지고의 생물에 접근하는 것이 아닌 단지 환경에 더 잘 적용했을 뿐인 진화가 발전으로 보이듯, 학문도 절대 진리에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단지 <발전으로 보일 수 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에 발전이다>'라고 말한다.
쿤의 이 해석은 탐탁치 않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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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가 있는 사람들 간에 교육에 대한 문제는 특히 민감하다.

바야흐로 2차전인가.


부모가 공부를 잘 했으면 자녀가 공부를 잘할까?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저학력자 부모를 둔 천재 자녀'의 사례가 적지 않고

'고소득 전문직인데 자기 주위 전문직들 자녀들중 인서울 대학도 드물다'라는 증언도 종종 들린다.

하지만 논지를 분명히 해보면 정답은 상식으로 잘 알려진 문제다.

논지는, '지능이 유전되는가'/'성공이 선천팩터로 좌우되는가'이다.

정답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 지능은 유전된다. 그 구속력은 양친이 다 클 때 자녀가 클 확률 정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소수의 격세유전이 있을뿐이다.

- 성과는 선천 팩터만으로 좌우되지 않는다. 후천 팩터(교육, 노력, 운)에 크게 좌우된다. 

여기서 성과란 공부 성적~사회적 성공까지 모든 성과를 의미한다.


위 두 참인 명제하에서 '성공한 양친 아래 무능한 자식 많더라'는 말도 참이 되고 (양친의 성공이 후천 요인으로 인한 것일 경우와 자식의 무능이 역시 후천 요인으로 인한 것일 경우 발생)

'양친 머리 좋으면 자녀 머리 좋더라'라는 말도 참이 된다.

그러나 이건 이쪽도 저쪽도 다 옳다는 어중간한 말은 아니다. 

가령 '공부는 타고나는 건데(후천 팩터 무시) 머리는 부모 안 닮는다(유전 부정)' 라고 하면 전혀 틀리다.


후천 팩터는 크게 세가지다. 

-당사자의 몫인 노력

-타인의 몫인 교육

-하늘의 몫인 운

이중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은 교육이다. 

자식이 공부를 잘 하게 하려면 어떤 교육을 해야 할까?

그래서 내 자녀를 위한 학습력 강화 훈련 커리큘럼을 짜봤다.


학습력의 본질은 '배운 것을/이해해서/내면화하고/써먹는 능력'이다.

각각 집중/이해/사고/응용력으로 불린다.

최초의 훈련은 어린아이때 자체적으로 시작하기 마련이다.

어린아이의 '왜?' 연발은 학습 능력의 기초 훈련이며 

성심껏 답해주는 것은 강력한 훈련이 될 것이다. 

이 과정에는 집중해서 관찰하고-현상을 이해하고-생각해서-응용하는 과정이 모두 담겨 있다.


더 정형화된 훈련으로는 아이와 같은 책을 읽고 책에 대한 얘기를 나누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걔는 왜 그랬는데?','아이 잘했다'

아이가 어릴 경우 이런 대화를 나누는데 필요한건 부모의 특별히 뛰어난 지성이나 금력이 아니라 단지 관심인게 보통이다. 독서 토론의 훈련법은 아이가 부모의 지성을 추월하는 때까지 범용적으로 사용 가능하다.


다음으로는 도서관에 같이 가서 '주제선정-자료수집-학습-결과도출-다음 주제선정'의 연쇄과정을 가르쳐줄 수 있다면 최선의 교육일 것이다. 이건 학문의 방법과 배우는 즐거움을 가르쳐주는 것이며, 이때 이미 인생관 전수 규모의 훈련이 된다. 

(이건 내겐 인생관 전수의 로망 같은 거다. 학이시습지 불역열호야. 

공자가 제시한 최선의 인간상은 '완성된 상태'라기 보다는 '호학자=학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공자의 '배움'이 초월적 가치에 이르는 길을 의미하기 때문에 

'호학자'는 '초월적 가치 추구에서 인간으로서의 즐거움을 찾는 사람'이라는 뜻이며 

이는 자연히 불교적 가르침에 합치된다.)

이상이 학습력 강화훈련에서 인생관 전수까지의 로드맵 개괄이다. 

'배운 것을/이해해서/내면화하고/써먹는 능력'의 강화를 모토로 해서 다른 훈련법들은 좀 더 생각해볼 수는 있겠다.


현재 한국의 대세는 사교육투자 보습학원 뺑뺑이다. 

무의미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 학원 경험은 일천하지만 십수년전에 학원 수업에 들어갔던 경험은 이랬다.

강사가 안 졸릴 말을 하며 진도를 대충 훌훌 넘어가다가 

"자 여기서, 밑줄 쫙, 따봉~공식!" 외치면서 외워야 할 것들을 알려주더라.

쇼킹했다. 맥락을 무시한 단편 지식화 교육이라...

그때로부터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강의법이 크게 바뀌었으리라고는 생각치 않는다.

학습력의 본질을 훈련하는 것은 그 효과가 장기적인 관점에서야 드러나는 것이고,

그래서 오늘의 성적이 다음달 재계약을 결정하는 사교육(그 본질은 장기적인 책임을 지지 않는 '남'이 하는 교육)은 학습력보다는 단기 성과에 촛점을 맞출 수 밖에 없다.

그래서 학원은 최소 암기로 최대 효과를 내는 암기포인트를 찍어주는 곳이 될 터이다. 

이런 곳에 익숙한 아이일수록 자력으로 학습력을 키우지 못하므로 미래는 없고 

그래서 이들에겐 학습력을 키운 학생들의 '교과서 중심으로 공부했다'는 당연한 말이 신화가 된다. 교과서는 결코 맥락을 무시한 단편 지식의 암기로 구성될 수 없으니까. 

(교과서를 학원 수업처럼 못 쓰는 이유는 애초에 맥락을 무시한 단편 암기로 교육한다는게 얼토당토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이게 '올바른 교육법은 돈으로 결코 살 수 없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설령 올바른 교육법을 따르는 사교육이 있다 한들 그 비용이 월 일이백 하는 정도는 아닐거다. 단편 암기 방식처럼 다수명을 상대로 가르치긴 어려운 방식이니까.


'부모가 공부를 잘 했으면 자녀가 공부를 잘할까?'에서 시작해서 여기까지 왔다.

요는 이렇다. 

선천팩터는 랜덤이 아니다. 양친의 유전되는 형질은 높은 구속력을 가지고 유전된다.

후천팩터는 랜덤이 아니다. 학습력을 높이는 교육법은 존재한다.

랜덤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운 정도다. (그런데 운칠기삼)


여기서 말할 수 있는 것은 '기여도가 높은가 낮은가, 확률이 높은가 낮은가' 정도이고 

관심 있는 것은 '내 자식은 공부를 잘할까? 사회적으로 성공할까?'이니 

정작 관심 있는 것의 답은 확신할 수 없다. 

이는 단지 시간이 말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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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각몽

잡담 2012. 5. 25. 18:29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sid1=105&oid=001&aid=0005621589
최근 미국에서 자각몽 유도기 시연 성공해서 투자를 크게 받았다는 기사가 떴다.

요즘 내 관심사는 자각몽이다.
종교체험,미신,오컬트가 과학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재연성이 떨어진다는 데에 있다. 어떤 사람들은 경험했다고 말하고 종교적으로 간증하는데, 그게 타인에 의해 재연되지 않는게 문제다.
자각몽은 딱 이 경계에 있다.
누구나 가끔 꿈속에서 이게 꿈이라는 걸 안다.
어떤 사람은 훈련을 통해 의도대로 자각몽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하고 이를 실험을 통해 증명했다.
그런데 가능한 훈련방법으로 제시된 방법들을 일반이 따라해보면, 소수의 사람만이 성공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도하다가 '잠만 퍼잔다.'
의도대로 자각몽에 진입하는 것은 현재로선 딱 존재증명만 가능한 수준의 낮은 재연성을 갖고 있는 상태다.
그러다보니 일반의 입장에선 자각몽 진입 훈련이라는게 오컬트랑 별 다를게 없게 비친다. 오컬트는 성공률이 0이지만 자각몽 훈련은 0은 아니라는 정도의 작은 차이로 비치게 된다.
결국 일반이 훈련으로 도달하기 어렵기 때문인데, 적당한 장비의 도움을 받아 일반에의 재연성이 확보된다면 그 위상은 현재의 '준 오컬트'를 벗어나 크게 상승할 것이고 그 장비는 비행기보다 대단한 발명이 될 것이다. 산업혁명,정보화혁명을 잇는 현실혁명이 될 것.

링크된 기사의 기계는 꿈을 꾸는 상태에서 꿈이라는 걸 인지하면서 자각몽을 시작하는 방식, DILD를 보조하기 위한 기구로 보인다. 시연이 성공했다는 걸 보니 효과 좋았나보다. 이전까지의 자각몽 유도기는 대부분 깨어있는 상태에서 꿈꾸는 수면 상태의 뇌파로 유도하는 방식이었다. 학습보조기 엠씨스퀘어가 집중상태의 뇌파유도를 통해 학습능률을 높이는 방식이었던 것처럼. 깨어있는 상태에서 잠들어가는 것을 의식하면서 잠들어서 자각몽을 시작하는 방식을 WILD라고 부른다. 잠들기를 의식하면 잠이 안오고, 의식을 안하면 그냥 잠들기 때문에 그 미묘한 경계에 머무르기 어렵다는게 난점이다. 알려진 훈련법은 모두 마음을 점차로 가라앉히는 방식인데, 거의 모두 참선법의 변형이다. 뇌파유도 기계는 이걸 도와보겠다는 발상이다. 문제는 기기 사용자들에게서 부작용이 보고되곤 했다는 것. '너무나 생생한 악몽'이나 깬 후의 두통등의 부작용 증상을 호소한 사람이 많았다. 새로 제시된 방식은 그런 부작용이 없는 모양이다. 막연한 생각으로도 딜드 기반 장비는 좀 더 안전할 것 같기도 하다.
다만 기억의 문제는 어떻게 될까 궁금하다. 아무리 선명한 꿈도 잊혀지는 속도가 현실 기억에 비하면 훨씬 빠른데. 기억이 잘 날까?

자각몽 다음으로 연구할 게 공유몽이다. 타인과 꿈을 공유하는 것.
자각몽은 그나마 존재증명이나 되었지만 공유몽은 현재의 세계관하에선 불가능하다.
내 종교관념에서 공유몽은 가능할 것으로 추측하고,
그래서 공유몽 실험을 위해 자각몽에 관심을 두고 있다.
단지 재연될 가능성을 확보하지 못한채 맨땅에 헤딩하면
실패하면 오컬트 성공해도 간증이 될 뿐이라는 점에서
방법론에 신경써서 탐구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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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각몽 기계

잡담 2012. 5. 25. 17:32


꿈을 꾸는 도중에 꿈이라는 사실을 알게 함으로써 꿈을 조종할수 있는 수면 안대가 미국 뉴욕 브루클린의 두 젊은 과학자에 의해 개발됐다고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 인터넷판이 20일 보도했다.

이 눈가리개는 겉모습은 일반 수면 안대 같지만 착용자로 하여금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두뇌가 알도록 함으로써 꿈을 조종할수 있도록 특별히 렘(REM 급속한 안구운동)을 강화시켜준다고 해서 '레미'(Remee)라고 명명됐다.

이 제품의 목적은 경주용 차를 몬다든지 하늘을 날거나 애이브러험 링컨과 오찬을 함께 하는 것 등 마음대로 꿈을 꿀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미래 공상영화 '인셉션'에서나 가능했던 제품을 개발한 주인공은 올해 서른살 동갑나기인 던칸 프레이저와 스티브 맥기건이다.

비트뱅어 랩스라는 회사를 창업한 두 사람은 '레미'사업 자금 3만5천달러를 조달하기 위해 크라우드 펀딩 웹사이트 '킥스타터'에 사업내용을 올리자 이번주까지 6천550명이 몰려들어 57만2천891달러의 자금이 확보됐다.

레미의 안쪽에는 수면중인 착용자를 깨우지 않을 정도로 희미한, 그러나 뇌가 기억하기에는 충분한 6개의 적색 LED(발광 다이오드)가 빛을 내도록 장치되어 있다.

사용자는 빛을 내는 순서를 사전에 설정해놓을수 있다. 

수면단계는 논 렘(non-REM)과 렘(REM) 두개의 카테고리로 구분되며 사람들은 수면중 논 렘과 렘을 왔다갔다 하는데 렘 단계에서 빈번하게 꿈을 꾸고 가장 오래 지속된다.

레미는 렘 단계를 감지하고 점등상태로 착용자의 꿈속으로 들어간다. 4~5시간후 깊은 수면상태인 렘 단계에 이르면 적색등이 켜진다. 

아이디어는 간단하다.

당신이 멋진 골프경기를 즐기고 있는 꿈을 꾸고 있다고 하자. 그때 멀리서 일정한 패턴으로 적색등이 반복해서 반짝이는 것을 보게된다. 

특정한 순서에 따라 적색등이 반복됨으로써 골프경기가 꿈이라는 신호를 당신에게 보내게 된다.

꿈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 꿈속에서 다음에 무엇이 나타날지 당신이 결정할수 있다. 

남극대륙으로의 짧은 여행일수도 있고 시간 여행일수도 있다.

수면 안대에는 번거로운 버튼이나 조절장치가 없다.

개발자가 만들어놓은 사이트(sleepwithremee.com)에 들어가 빛의 점등 개시와 반복 시간, 강도 등에 관한 셋업을 조정할수 있다.

건강상의 문제에 대해 프레이저는 전화인터뷰에서 수면 안대와 관련한 어떤 문제도 접수한바 없다고 말했다.

그는 LED 광선이 발작(seizure)의 원인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프레이저는 자신이 레미를 한주에 수차례 사용한다면서 꿈속에서 꿈꾸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자각몽'(lucid dream) 상태에 도달하기는 어렵고 매번 일어나지도 않는다고 시인했다.

프레이저와 맥기건은 1980년대 스탠퍼드대학에서 있었던 자각몽에 관한 연구 보고서를 읽은뒤 작년 2월 수면 안대 개발을 시작했다.

레미 수면 안대는 가볍고 3볼트짜지 셀 배터리를 넣으면 수개월간 쓸수 있다.

가격은 개당 95달러이고 사전 주문이 가능하다.

프레이저는 7천건의 주문을 받았으며 호주, 이탈리아, 스페인으로 부터 주문이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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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노크노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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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humanities)은 '신학이 아닌 학문'으로서 '인간에 대한 학문'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한때 학문 그 자체였던 인문학의 정체성은 자연과학의 융성과 더불어 '자연과학이 아닌 학문'의 의미를 갖으며 분명해지다가, 근래에는 사회과학과도 구분되어 가는 중이다.
인문학의 범위에 대한 정의는 이견이 있으나 크게 문사철(문학 역사학 철학)을 주로 인문학으로 분류한다.
이상을 바탕으로 한 내 견해는 이렇다.
- 신학과 구분되는 인문학 : 신학, 즉 종교와 인문학은 같은 주제에 대한 다른 접근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가치관의 문제에 대해 신학은 하달된 진리를 이해하려 하는 형식을 취하고 인문학은 쌓아 올라가 도달하려는 형식을 취한다.
- 자연과학, 사회과학과 구분되는 인문학 : 인문학은 자연과학/사회과학이 분화되어 나간 후 '남은 학문'이다. 역설적으로 이는 인문학에 대한 비하가 아니다. 인문학의 가치는 그 분화되지 않았음에 있다.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이 분화될때 '지식 탐구에 대한 질문'만을 테마로 분화되었기 때문에, '가치 탐구에 대한 질문'은 아직 인문학으로부터 분화되지 않은 인문학의 과목들 속에 섞여 남아있게 되었다. 인문학의 가치는 인문학이 '가치 판단에 대한 질문'을 가진다는 점에 있다. '생은 어떤 의미를 갖으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즉 물리학부터 사회과학까지를 지식에 대한 질문만을 판단하는 학문이라고 할 때
인문학은 가치에 대한 질문을 내포하는 학문이라는 것이 내 견해다.
가치는 사실에 대한 지식으로부터 도출된다. 지식의 총체로부터 올바른 가치 판단이 가능하며, 일부분만 알면 가치 판단이 틀려진다. 즉 가치판단에 대한 질문에 답하려면 사실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끌어모아야 한다. 인문학이 가치에 대한 질문에 답하려 하는 학문이라고 할 때, 인문학을 '인간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정의하는 것은 (과거엔 신에 대응하는 개념이었지만)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 올바른 가치 판단을 위해선 인간 외적인 사실에 대한 지식만을 명확히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가치 판단의 주체인 인간에 대해서 또한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여타 학문들은 왜 지식 추구의 주제만을 가지고 분화했는가? 이를 알기 위해선 학문의 분화 과정을 살펴보아야 한다.
여러 방면에서 지식을 끌어 모으다 보면 통찰에 의해 '이건 이런 것일 거다'라는 감이 온다. 이 '감'은 인생이든 뭐든 '하다보면 감이 오는' 그 감과 완벽하게 똑같은 구조다. 그게 패러다임이다. (세상은 쪼개지지 않는 작은 요소들에 의해 이루어진 것 같다. 빛은 물질이 날라가는 것 같다. 전기는 유체같다.)
그 감이 제법 들어맞는 것 같다는 설득력을 얻게 되면, 패러다임이 한 분야를 장악하게 된다.
그때부터 학자들은 패러다임에 기반해서
1. 패러다임을 낳게 한 배경이 된 사실을 확인하고 (빛이 횡파라는 주장을 한 사람의 실험을 재연해보고)
2. 패러다임이 현실에 예측해주는 추정들을 확인하고 (빛이 물질이 날아가는 거라면 빛을 가했을 때 압력이 있겠지?)
3. 대략적인 감인 패러다임을 정밀화한다. (물질간 인력이 있는 듯하다. 그럼 인력의 비례상수는 얼마?)
이는 답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문제들, 즉 퍼즐이다. 패러다임 장악이 일어나면 그 분야는 이 퍼즐 풀이에 전력하게 되는데, 이를 normal science 라고 하며, 정상과학이라고 번역한다.
퍼즐 풀이의 단계가 노말 사이언스 라고 불리는 이유는 과학 탐구의 본질이 퍼즐 풀이이기 때문은 아니다. 다만 시간적으로 대부분의 학자는 퍼즐 풀이 단계에 일생을 바치며, 패러다임 변경의 단계, 즉 '새로운 감'을 내놓는 사람은 극소수이기 때문이다. 패러다임이 전환되는 단계를 과학 혁명이라고 부른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생성이 논리적 필연 보다는 지식 경험을 종합하는 통찰에 의한다는 것을 주의하라. 통찰에 의한 지식은 틀릴 수 있고, 그래서 매 패러다임은 완벽하게 옳지 못하여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될 여지를 남긴다.)
학문 분야는 패러다임 장악이 일어날 때 범주가 확정된다.
별의 움직임이 수학 법칙을 따른다는 패러다임이 장악하자 천문학과 점성학은 별개의 분야가 되었다. 금이 합성 불가능한 원소라는 패러다임이 장악할 때 화학과 연금술은 별개의 분야가 되었다. 생명활동이 화학적으로 이루어진다는 패러다임이 장악할 때 생물학과 화학은 생화학이라는 독립 분야를 낳았다.
즉 지식을 쌓는 활동을 하다가 '이거는 이런거 같다'라는 감이 올 때 그 감을 확인하고 심화하는 퍼즐 풀이 활동이 학문의 분화를 이뤘다.

가치 판단의 측면에서 볼 때 의미가 있는 것은 '이것은 이런거다' 라는 통찰, 즉 패러다임이다.
과학활동, 즉 퍼즐풀이과정에서 얻어지는 지식은 패러다임을 확인하고 정밀하게 할 뿐이지 그 패러다임을 기초로 하는 가치판단을 뒤집지는 못한다.
학문 분화를 이끌어 낸 패러다임들은 대상에 대한 통찰의 산물이다. 가치판단에는 대상에 대한 통찰과, 동시에 가치판단 주체에 대한 통찰이 모두 필요하다. 따라서 대상에 대한 통찰인 패러다임을 주제로 하여 분화된 학문들은 가치 판단에 대한 질문을 가지고 나갈 수가 없었다.
그 결과 가치 판단에 대한 질문은 인문학에서 분화되지 않고 남아있는 학문들 속에 뒤엉켜 남아 있다.

연역만으로 이루어진 수학, 연역과 현실확인으로 이루어지는 물리학, 연역되지 못하나 실험적으로 항상 재연되는 사실에 대한 화학, 가정 위에 출발하여 통계적으로 탐구하는 사회과학, 가정 위에 출발하여 사유만으로 탐구하는 인문학, 하달 진리인 종교.
향후 학문이 발전하면 학문 분야에도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인문학에 속해 있던 학문이 사회과학으로, 혹은 사회과학에 있던 학문이 자연과학으로 위치를 변경할 수도 있다.
그러나 최후까지 인문학이라 불릴 영역에는 가치 판단에 대한 질문이 남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인문학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본질적인 대답은 '가치관에 대한 아래로부터의 추구'가 될 것이다.

Posted by 노크노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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